‘츤데레 민주당&왕따 될 줄 알았던 한국당’…교묘한 상임위 방정식


[스페셜경제=김은배 기자]20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에서 여야간 사랑의 작대기가 어긋나는 모양새다. 국민의당 분당과정에서 다수의 의원을 바른미래당으로 떠나보내며 사실상 캐스팅보터의 역할을 하기 힘들어진 평화당이 6·13 지방선거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여당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개혁입법연대’를 매개로 러브콜을 보냈으나 정작 민주당은 평화당의 바람과는 반대로 그간 티격태격하던 애증의 한국당의 입지를 넓혀주는 결과를 만들었다.


지방선거에서 대패한 한국당이 도리어 알짜 상임위를 싹쓸이한 모양새가 된 것. 일각에선 민주당이 ‘거대양당’이라는 한국당과의 공통분모와 향후 같은 진보진영인 평화와정의가 세를 확장할 시 발생할 지지층 이탈 등을 염두에 둔 판단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스페셜경제>는 민주당의 기묘한 밀당 연애방식을 한 발 더 들여다봤다.



예상 뒤엎은 ‘한국당 알짜 상임위’


평화당, 민주당 향한 러브콜 무색



여야 제20대 후반기 원구성 협상은 지난 10일에야 타결됐다. 역대 국회가 대체적으로 6월안에 원구성 협의를 마친 것에 비해 상당히 늦은 셈이다. 이러한 연유에는 야권이 6·13 지방선거 대패의 책임으로 지도부 사퇴 후 비대위 체제 혹은 조기 전대 방침을 선택하는 등 내부 정비시간이 길어진 부분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지방선거 이후 의석수 변동이 생기면서 정치지형 변화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공동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제4교섭단체의 지위를 획득한 ‘평화와정의의모임(이하 평정모)’이 있다. 지방선거 이전부터 민주당에게 범진보 연대필요성을 제시하며 군불을 떼던 민주평화당이 여당 더불어민주당이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130석을 획득하자 정의당과 함께 ‘개혁입법연대’를 맺자고 민주당에게 제안한 것.


개혁입법연대의 주요 골자는 민주당이 평정모와 손잡는 것만으로도 150석으로 국회 과반을 넘기고, 범진보진영을 끌어당기면 156석까지 확보할 수 있음으로 정부여당이 원하는 모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연대체가 탄생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천정배 의원은 입장자료를 내고 156석을 획득하게 되면 전반적인 상임위 인원배분을 ‘개혁입법연대’의원이 보수진영보다 1석씩 우위에 있게 만들어 국회쟁점법안에 대해 국회의원 정수의 3/5이상인 180석 이상을 확보해야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국회선진화법을 개혁입법연대 156석만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단순계산법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평정모는 이를 위해 통상 제1야당의 몫으로 돌아가는 법제사법위원장을 자유한국당에게 줘서는 안 되며 평정모에게 법사위원장을 준다면 민주당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프레임을 제시했다.


다만, 이는 국회 관례와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에 평화당은 이를 무마하기 위한 명분으로 “국회 관례는 관례일 뿐”이라며 관례 대신 국회법 본연의 규칙을 따를 것을 요구했다. 동시에 이를 협상카드로 내세워, 법사위원장을 한국당에게 넘기지 않는 것은 물론, 관례상 자신들에게 원구성 협상에서 돌아오는 상임위원장 1석 대신 ‘국회부의장1석+상임위원장1석’ 또는 ‘상임위원장2석’을 줄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보수진영과 협상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게 만들어주는 대신 자신들의 기반을 넓혀달라는 제안이었던 셈이다.


다만, 이같은 달콤한 제안에도 민주당은 ‘개혁입법연대를 만든다면 바른미래당 등에게도 길은 열려있다’며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국회 관례는 여당에게 가장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민주당이 스스로 국회 관례를 흔들면서 자신들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상황은 바라지 않았을 가능성이 컷다. 국회관례는 여당에게 직권상정을 비롯한 막강한 국회 운영권한이 있는 국회의원장직과 국회운영위원장 등을 보장한다.


보수진영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나왔음은 물론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에선 맞불카드로 ‘개헌연대’를 내놨고, 특히 국민의당 분당이후 평화당과 캐스팅보터 입지를 놓고 경쟁을 벌였던 바른미래당에서는 연일 “관례를 따르라”며 평정모를 질타했다.


한국당 진보진영 맹공 속에도 알짜 상임위 싹쓸이


이같은 혼란 속에 원구성 협상은 난항을 빚었다. 지난달 27일 교섭단체 원내대표간 첫 원구성 협상을 가진 이래 실무진인 원내수석부대표간 협상을 수시로 가졌으나 국회부의장직과 법사위원장 등을 비롯한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서로 좁혀지지 않는 이견차만 확인하다 번번히 회동이 무산되기 일쑤였다. 특히 법사위를 두고선 민주당도 평정모도 모두 한국당을 집중 타깃으로 잡았기 때문에 상임위원장 배분에서 한국당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모양새가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일부 제기됐다.


다만, 지난 10일 여야가 합의를 도출하고 나자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은 한국당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특히 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12일 의총에서 “우리 당에서 그렇게 (개혁입법연대를)강조 했지만 민주당은 결국 이번 원구성에서 다 죽어가던 한국당에 큰 승리를 안겨주었고, 김성태 원내대표가 축하받을 일을 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한국당은 입법통로의 한 축인 ▲법사위원장을 가져옴은 물론 운영위, 법사위와 더불어 가장 핵심 상임위로 꼽히는 ▲예산결산위원장을 가져왔다. 당초 예결위원장을 보유한 정당은 정부예산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협상력을 갖는 만큼 민주당이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상임위다. 또한 ▲외교통일위원장도 한국당의 몫이 됐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성공으로 꼽히는 대북정책 추진과 관련해 외통위를 한국당이 갖고 온다는 것은 한국당의 견제력 상승을 의미한다. 아울러 SOC(사회간접자본) 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노른자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원장도 한국당이 얻었으며, 산업구조 개편과 관련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등 국회관례에 맞춰 민주당(8석)에 다음가는 7석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꿰찼다.


최근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경제정당’을 기치로 내 건 바른미래당이 경제관련 상임위원장 없이 ▲교육위원장과 ▲정보위원장을 배분받은 것(+ ▲국회부의장1석)이나, 평정모가 선거구제 개편을 논의하는 정치개혁특위(비상설)를 가져가긴 했으나 당초 요구에 미치지 못하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1석만을 가져간 것에 비하면 한국당은 상당한 수확을 한 셈이다.


민주당도 전체적으로 보면 8석으로 가장 많은 상임위원장 자리를 가져갔고 여당의 상징인 ▲국회운영위원장을 비롯해 보수진영의 공세를 받기 쉬운 안보분야와 관련한 ▲국방위원장, 기업 개혁 등을 단행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위원회 등과 관련한 ▲정무위원장, 기획재정과 한국은행 등과 관련한 ▲기획재정위원장, 여성표심에 유리한 ▲여성가족위원장, 북한과의 문화교류 사업 추진과 관련한 ▲문화체육관광위원장 등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정책과 관련한 상임위원장 자리를 다수 획득했다.


다만,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것에 비하면 한국당에게 상당부분 협상력을 인정해준 모양새가 됐다. (+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행정안전위원장)


박지원 의원은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개혁과 정체성에 가장 역점이 되는 업무는 대북 관계, 4대강, 부동산 문제, 복지 문제, 노동 문제”라며 “그런데도 이러한 업무와 직결이 되는 외통위원장, 환노위원장, 국토위원장, 복지위원장, 여기에 예결위원장과 정보위원장을 내어 주고 특히 산업을 일으키고 산업 구조를 개편해야 할 산자위원장을 내어 주고 어떻게 개혁하고 경제를 살리자는 것인지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개혁입법연대, 되려 민주당 불리?


민주당, 정의당 지지층 이탈 우려


무산 된 개혁입법연대…민주당 중도·진보 지지층 이탈 우려?


이에 따라 사실상 개혁입법연대는 무산된 것으로 관측된다. 평화당 천정배 의원은 원구성 합의문이 나온 이틀 뒤인 12일 입장자료를 통해 “문재인 정부는 개혁입법에 관한 한, 자유한국당과도 일종의 대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며 “걱정했던 대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수뇌부는 기존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촛불혁명의 입법적 완성을 위해 자유한국당의 반발을 무릅쓸 정도의 의지와 배짱이 없었던 것이다. 매우 안타깝다”고 비난했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협상과정에서 한국당의 입지를 안배한 것은 평정모 등에 대한 견제성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평정모는 ‘개혁입법연대’를 만들면 정부여당의 정책추진에 도움이 되므로 진보진영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이 경우 민주당이 정책추진에 탄력을 받는 이득 이상으로 발생하는 손실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입법을 위해선 평정모의 요구조건에 지속적으로 응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 없이 특정 정당의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들에 대해서 여당이 일방적으로 옹호하기만 하면 반대여론이 일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정의당의 경우 진보진영 중에서도 가장 좌클릭을 하는 정당이므로 이들의 요구를 조건 없이 수용할 경우 중도지지층의 이탈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한국 정치 특성상 선거철이 되면 보수 대 진보구도로 판이 짜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자칫 보수진영과의 진영경쟁에서 밀리는 상황까지도 연출될 수 있다.


동시에 진보지지층은 좀더 진보성향이 강한 정의당쪽으로 흘러나갈 수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여당으로서 경제상황에 따라 노동·임금 문제와 관련해 일방적으로 노동계 등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반면, 국정운영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정의당은 민주당 보다 강경한 진보성향 정책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간 민주당 지지층 속에는 정의당을 지지하면서도 보수세력에게 정권을 뺏기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민주당을 지지했던 이들이 포함 돼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 만큼, 19대 대선과 지방선거 등을 거치며 보수가 몰락한 상황에서 안심하고 이탈할 여지가 생긴다.


실제로 지방선거 이후 나온 각종 여론지표 등은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 한다. 정의당 지지율은 최근 10% 선까지 치고 올라왔으며 이 지지율은 민주당 쪽의 이탈 지지층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7월 2주차 주중동향’에 따르면 7월 1주차에 비해 민주당은 3.2%p 감소했고 정의당은 2%p 상승했다. 리얼미터는 “‘지방선거 참패’ 보수야당 영향력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진보성향 중심 민주당 지지층의 충성도 약화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0.1%p 감소한 평화당의 지지층이 모두 정의당쪽으로 이동했다고 가정해도 정의당의 1.9%p는 민주당 쪽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한국당도 1.5%하락하긴 했으나 같은 보수성향인 바른미래당이 0.5% 상승하고 무당층이 2.3%증가한 것과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1주 전인 ‘7월 1주차 주중동향’의 경우를 보면 이같은 현상이 더욱 뚜렷하다. 한국당이 0.4%p오르고 바른미래당이 0.4%p 내리는 등 보수진영 이탈 지지층이 미미한 상황에서도 정의당 지지층이 1.0%p 오른 것. 이 조사에서 민주당은 2.1%p하락했고 평화당은 0.6%p 상승을 나타냈다.



민주당 2020년 총선 승리공식…정의당 이탈표심 방지


이러한 지표를 볼 때 민주당 입장에서 2020년 총선 이전까지 정의당으로의 이탈표심을 잡을 필요성이 제기된다. 아울러 정의당 지지율이 상승한 가운데, 향후 정치권의 개헌논의와 관련 ‘선거구제 개편’이 진행될 경우 민주당은 2020년 총선 이후 정의당의 도움 없이는 국정운영 자체를 이끌기 힘든 상황까지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른미래당과 평정모가 강하게 추진의사를 밝히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모두 소수정당의 의원 배출에 용이한 방식이다. 특히 정당득표율에 따른 비례성이 커지기 때문에 민주당이나 한국당 같은 거대정당의 강점인 지역구 조직관리가 의석수 확보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줄어든다. 이에 ‘거대양당’으로 불리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막상 선거구제 개편이 본격 논의될 시점에서는 호의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선거구제 개편의 피해를 최소화 하길 원하는 민주당이 이 부분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한국당의 입지 약화를 바라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실제로 민주당과 한국당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도 조례를 소수정당의 기초의회 진출에 유리한 ‘기초의원 4인 선거구’를 줄이고 거대정당에게 유리한 ‘2인 선거구’를 늘리는 방향으로 만들어 바른미래·평화당·정의당 등으로부터 ‘탐욕의 카르텔’, ‘기득권 담합’, ‘독과점’이라는 등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서울시의회는 지난 3월 20일 선거구 획정 개정안을 표결한 본회의에서 ‘2인 선거구 36개, 3인 선거구 51개, 4인 선거구 35개’로 배정해둔 원안 대신, ‘2인 선거구 111개, 3인 선거구 49개, 4인 선거구 0개’로 대폭 수정한 개정안을 찬반토론없이 처리했다. 서울시의회 전체 의석수(99석) 중 90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66석)과 한국당(24석)이 바른미래당(8석)과 평화당(1석)의 의사과 관계없이 처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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