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대전환 이끈 베를린 구상…문공이북(文公移北)의 결실

[스페셜경제=박고은 기자]한국이 ‘운전석’에 앉아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꽉 막혔던 남북관계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 채널이 복원되고 북한의 올림픽 참석이 확정되면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조성됐다. 더욱이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하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 천명을 이끌어낸 데 이어서 주변국과 긴밀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등 ‘한반도 운전자론’에 기반한 주도적 역할이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우공보다 더한 인내와 끈기로 산보다 더 움직일 수 없어보였던 북한을 대화 테이블까지 이끈 것이다. 가히 우공이산(愚公移山)이 아닌 문공이북(文公移北)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대화 분위기 속에서도 북한군 지휘부를 궤멸시킬 화력여단을 신설하는 등 압박과 대화라는 투트랙 전략을 이어가는 문 대통령의 꼼꼼한 셈법은 보수까지 수긍할 대목이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한반도에 전쟁의 그림자를 완전히 물러내려는 한반도 운전자 문 대통령의 그간의 여정에 대해 되짚어보고 대화 테이블이 깨져도 북한에 대응할 수 있는 전력에 대해 살펴봤다.


분단史 60년 이래 최대 사건 이끈 文 대통령

삐끗하면 터지는 화약고…돌발 변수 ‘관리’도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구상’, 즉 이른바 ‘베를린 구상’을 밝혔을 때만해도 ‘순진한 발상’, ‘한반도 왕따론’이라는 비아냥을 받았다.


당시 문 대통령이 밝힌 베를린 구상은 ‘평화’로 요약된다. 한반도 냉전을 끝내고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평화로운 한반도 실현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하는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 ▲남북 간 새로운 경제협력 ▲비정치적 교류협력 사업 추진 등 ‘평화 5대 원칙’을 제시했다.


눈여겨 볼 것은 이날 통일을 배제하고 ‘평화’를 목적으로 북한에 체제안정을 제안했다.


흔들리는 ‘베를린 구상’…사드배치는 신의 한수

하지만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 제안에 아무 응답도 하지 않던 북한이 7월 28일 화성-14형 발사, 8월 29일 일본열도를 넘어 화성-12형 미사일, 급기야 9월 3일 6차 핵실험까지 감행했다.


이에 당시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는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애초에 허상임을 하루 빨리 깨닫고 베를린 선언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특히 핵실험으로 인한 사드 임시 배치는 베를린 구상의 잠정적 폐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정부의 사드 임시배치 결정 등은 북한 압박과 한미동맹 차원에서 적절하고 불가피한 조치”라면서 대북 정책에 대한 근본적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당시 상황에 대해 지난 12일 미국 시사 잡지 애틀랜틱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가 지금 상황을 도출하게 한 신의 한수였던 것으로 묘사한다.


애틀랜틱은 이를 바탕으로 한국이 미국의 신뢰를 얻는데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 한미연합군사훈련 연기 합의를 미국 측으로부터 이끌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은 100% 문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등의 지지 발언을 하게 된 계기라는 것이다.


강대강 말폭탄…죽지 않고 살아난 한반도 운전자론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말싸움이 냉전 이후 전쟁 불안을 극도로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베를린 구상의 모멘텀을 이어가면서 남북관계 주도권을 쥐겠다는 구상 자체가 옹색해진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국제 평화와 안전을 모토로 한 유엔총회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며 대화보다 군사 옵션에 무게가 더 실린 발언을 했다.


더욱이 북한 리용호 외무상도 트럼프를 겨냥 ‘악마 대통령’, ‘거짓말 대왕’ 등으로 비하하고 “미국과 그 추종세력이 공화국 지도부에 대한 참수나 군사적 기미를 보일 땐 가차 없는 선제 행동으로 예방조치 취할 것”이라고 군사 위협 발언까지 불사했다.


북한과 미국 지도자가 말 폭탄을 주고받고 마치 전쟁을 시사하는 발언까지 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오히려 한반도 운전자론에 다시금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초청 간담회에서 “평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남북관계에 대한 주도권을 갖고 북핵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한반도 운전자론에 다시 힘을 실었다.


특히나 미국의 군사옵션을 경계하듯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강도 높고 단호하게 제재와 압박을 해야한다”면서 “북한의 핵문제 해결은 반드시 평화적으로 달성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지난해 12월에는 “우리의 동의 없이 한반도 군사행동은 있을 수 없다고 미국에 단호히 밝혔다”고 미국의 선제타격 가능성을 차단하는 등 전쟁불가론 입장을 명확히 드러냈다.


이어 “지금 긴장이 최고로 고조되고 있지만 결국 시기의 문제이고 풀릴 것”이라고 베를린 구상의 동력을 관리해 나갔다.


분단史 60년 이래 최대 사건

전쟁의 그림자가 걷혀간 계기는 바로 한미연합훈련 연기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말 미국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연합훈련 시기를 미뤄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촉구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훈련 ‘연기’ 제안 이후인 1월 1일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것을 밝히고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면서 남북간 대화국면에 급물살을 탔다.


심지어 김 위원장의 유일한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는 등 북한도 나름의 변화의 시그널을 보내왔다. 특히 방남한 김 부부장의 남북정상회담 제안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북미대화 용의를 밝히면서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대화모드로 전환됐다.


하이라이트는 지난 5~6일 김 위원장과 접견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등 대북 특사단이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북한의 비핵화 및 북미관계 정상화 용의 등 예상보다 파격적인 합의 결과를 가져왔던 때였다.


대화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의 전략도발을 중단하고, 우리나라에 대한 적대적인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확약한 것은 향후 한반도 평화를 향한 기대감을 더욱 드높이는 지점이다.


파격적인 건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대미특사 수석인 정 실장이 방북 성과를 전달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접견한지 45분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항구적인 비핵화를 위해 5월까지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이로써 문 대통령은 현재 진행 중인 비핵화 논의를 제외하면 평창올림픽 북한 선수단 참가와 적대행위 중단, 남북대화 재개라는 ‘베를린 구상’ 중 4대 실천과제를 실현한 것이다.


삐끗하면 동북아 화약고 터져…대응 능력

이처럼 한반도 긴장의 최고점에서 대화와 평화 국면으로 극적 반전을 이뤄낸 문 대통령은 운전대를 꽉 잡고 최종 목적지인 비핵화로 향해가고 있다.


하지만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회담 결렬 시 대비책도 강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일 육사 제74기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한 문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해야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북핵과 미사일 대응능력을 조속히 실효적으로 구축하는데 총력을 기울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나는 한미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견고하게 발전시켜 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대화를 위한 논의를 진행하는 동시에 북한의 현실적인 위협에 대응할 군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현재 한미군사훈련을 축소, 핵항공모함·핵추진 잠수함·전략폭격기 등 미군 3대 전략자산이 불참하고 훈련 내용도 언론 노출을 최소화했다. 이렇듯 과시용 무력 동원을 줄이는 것은 북한을 배려하는 차원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군사 전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도 보인다. 적 방공망을 뚫고 평양 주석궁을 초정밀 공략 가능한 F-35 1호기를 도입하는 우리 공군은 오는 28일 미국 텍사스주 록히드마틴 공장에서 출고, 한국에 들여올 예정이다.


특히 급변 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이하 작계)은 이전보다 더욱 공세적인 성격을 강화한 신작계를 수립한 것으로 알려진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국방부는 신형 전술지대지유도탄(KTSSM)과 다연장로켓 천무2가 주축으로 배치, 전쟁 시 우리 측 수도권을 사정권에 두고 있는 북한 장사정포와 평양 핵심 군사시설을 초토화할 수 있는 화력여단 창설을 골자로 한 ‘국방개혁 2.0’을 4월 중 완성해 문 대통령에게 보고할 계획이다.


또한 이라크 정권을 붕괴시킬 당시 ‘바그다드 함락’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미 3사단이 최근 주한미군에 배치됐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대화 분위기에도 안보 대비에 만전을 기하고, 실전 배치를 가능한 전력화의 차질 없는 추진을 통해 대북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文 대통령이 가꾸는 동북아 평화

4월말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까지 이제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이다. 현재 문 대통령이 동북아 운전석에 앉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나아가 남북미 3자간의 정상회담을 꺼낸 것도 남북, 북미 정상회담의 높은 성공 가능성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문 대통령-트럼프 대통령 3자가 한 테이블에 앉아 6.25 전쟁의 종전 선언, 불가역한 평화체제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결과가 도출된다면 동북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대전환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특히 3자 회담을 통해 북-미간 경제협력까지 이뤄진다면 한반도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에서 내세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계 구축과 경제적 번영의 시험대가 당장 다음 달 남북 정상회담에서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한반도에서 시작된 평화가 동북아 평화로 이어지고, 공동번영을 위한 전략적 논의의 장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사진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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