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VS 호헌 프레임’ 음모설 모락모락


[스페셜경제=김은배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5일부터 시작되는 추석 밥상머리에 개헌 도시락을 투척하려는 모양새다. 도시락 안에 놓인 것은 ‘개헌세력 대 호헌세력’ 프레임이다. 여론을 불붙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이 시한장치의 타임리미트(Time limit. 제한시간)는 6·13 지방선거일 것으로 야권은 추정하고 있다. 개헌의 성사여부보다 이를 통한 ‘지방선거 우위 점하기’를 우선한 전략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정부여당은 개헌안을 단독 발의라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로 ‘대통령 개헌안’까지 준비하고 있지만 실제로 단독 발의에 나설 경우 야권의 반발로 ‘개헌’ 자체가 불발 될 우려가 있어 선택하기 어려운 수라는 분석이다. 위협사격은 상대방을 저지시키려는 제약의 의도이지 사살이 목적이 아니라는 식의 논리다. <스페셜경제>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개헌 노림수 진의(眞意)를 분석해 봤다.


개헌시기냐 내용이냐 與-野 평행선


與, 단독 발의는 ‘지선 헐리웃 액션?’


‘정부주도 개헌’을 지난달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시사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5일엔 “청와대 수석보좌관-비서관 회의에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정해구)를 향해 “대통령 개헌안을 준비해 달라”고 한 차례 더 국회를 압박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서 정부가 개헌 추진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국회에서 2월말까지 개헌안에 대해 합의 할 것’을 제시했고, 여당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대표는 지난 1일 “각 당은 늦어도 2월 중순까지 각자 개헌안을 내야 한다”고 한 템포 더 빠른 개헌안 요구로 야권을 독촉했다. 정부와 여당이 개헌이라는 공을 리드미컬하게 패스해가면서 야당의 골문 앞까지 진격하고 있는 모양새다.


시기적인 압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달 16일 당대표 신년기자회견에서 “개헌이 사회적 합의인데 호헌을 하겠다는 것은 전두환 신군부 호헌 세력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권력구조 개편’이 포함되지 않은 개헌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개헌시기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한국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을 아예 개헌자체에 반대하는 세력을 의미하는 ‘호헌 세력’으로 규정한 것이다.


현재 정부여당은 ▲투표율▲선거비용▲대선후보 약속 등을 이유로 내세우며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의 개헌 동시투표’를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2월 말까지 국회가 개헌안에 대해 합의해야 하는 상황인데 시간은 이미 2월 중순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다소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추 대표는 ‘개헌안에 합의하지 않으면 호헌 세력’이 되는 2지선다형 문제를 야권에 제시하고, 문 대통령은 국회 합의가 불발되면 정부 주도 개헌에 나설 수 있다는 압박에 나서는 쓰리쿠션이 깔끔하게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or 여당 단독발의 가능할까?


다만, 이러한 정부여당의 공세가 ‘사살’ 보단 ‘위협사격’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개헌을 대통령 발의나 여당 단독발의로 한다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분석인데 이는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도 감지하고 있는 모양새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5일 여당 단독 헌법개정안 발의 추진과 관련해 “헌법개정안 발의는 국회 재적과반수에 의해서 발의되는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이 121석인데 단독발의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우상호 전 원내대표도 이에 대해 6일 “그건 결국 개헌을 포기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우 전 원내대표는 “저는 아무리 야당이 논의에 응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단독 발의는 좀 정국을 얼어붙게 만들기 때문에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헌법 개정 절차는 ▲개헌안 발의→▲헌법개정안 공고→▲국회 의결→▲국민 투표 순으로 이어진다.


국회가 개헌안을 발의하기 위해서는 헌법 제89조 제3항에 따라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가 필요하다. 우 원내대표의 말처럼 여당 단독 발의는 사실상 그 자체가 현실성이 부족하다.


또 하나의 개헌안 발의 주체인 대통령은 직접 발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강압적인 방식으로 정국을 냉각시킬 경우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 국회 의결단계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질적으로 대통령 발의 또는 여당 단독 발의는 자칫 개헌 자체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방식이란 얘기다. 이에 야권에서는 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과 수보회의 등에서 지속적으로 이를 압박하고, 민주당이 국회에서 호응하는 형태를 취하는 것은 실질적인 개헌의 성사보다 야당을 개헌에 동의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호헌세력’으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지방선거에서의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당과 국민의당 등은 일부러 개헌을 무산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野, “文 대통령 개헌 생각 없다?”


한국당은 5일 문 대통령의 ‘대통령 개헌안 준비’ 발언에 대해 “지지율 급락에 초조한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지방선거에서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려는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단독으로 개헌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토록 개헌을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상 개헌을 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라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국민의당도 “야당은 대통령의 ‘권력구조 개편’이 개헌의 핵심이라고 말하는데, 대통령은 ‘4년 중임제’를 받으려면 받고 말라면 말라는 것 아닌가?”라며 “개헌이 부결되면 야당을 호헌 세력으로 몰고 가려는 문대통령과 여당은 정신차리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실제로도 여권에서는 지속적으로 ‘개헌세력 대 호헌세력’ 프레임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선 개헌 동시투표는) 촛불 혁명의 연장선에 있다. 30년 전 호헌, 개헌 대결 구도로 가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5일도 한국당을 겨냥해 “결국 국민은 자유한국당을 향해 30년전 1987년 호헌세력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있다는 점을 엄중하게 받아드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개헌 대 호헌 프레임을 확장시켜나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르면 개헌세력인가 호헌세력인가를 나누는 기준은 개헌을 6월에 하느냐 유보하느냐의 차이다. 민주당은 6·13 지방선거에서의 개헌 동시 투표를 ‘개헌 골든타임’으로 명명하고 있다. ‘6월 종착역 개헌열차’라는 표현도 사용하고 있다. 방점이 개헌에 있는 것이 아니라 6월이라는 지방선거시기에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권력 분산의 개념이 포함되도록 국회 논의를 더 거쳐야 한다며 ‘개헌시기 유보’를 주장하는 야권이 ‘개헌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호헌세력으로 규정되면 국민들은 지방선거 혹은 2020년 총선에서 이들을 투표로 심판할 것이라는 심리가 생길 것이란 주장이다.


물론 야권이 지방선거에서의 심판이 두려워 개헌안에 찬성할 경우 이 같은 효과를 볼 수는 없다. 다만, 이 경우 정부여당은 자신들의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을 담은 ‘개헌’을 성사시키게 되므로 어느 쪽이든 남는 장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진로와 퇴로를 모두 막는 묘수인 셈이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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