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이어 혼맥까지 지배한 ‘숨은 진주’

[스페셜경제=박단비 기자]한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담당하며 국내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대기업 집단 재벌가. 이들은 서로 혼맥과 인맥을 통해 더 높은 권력을 누리기도 하고 서로를 잡아주고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면서 거대한 울타리를 형성했다.


한국 경제사의 이면에 숨어있는 그들만의 혼맥을 통해 재벌의 형성과 교착의 끈이 한국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스페셜 경제>가 한국의 대표적 재벌가의 혼맥과 경영 승계 과정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서울대 포기하고 탄 원양 어선‥‘동원수산’의 시초로
동원그룹 히트 상품 ‘동원참치캔’ 50위권 기업 ‘우뚝’


‘동원그룹.’


사람들에게는 ‘참치’로 익숙한 그룹이다. 무려 1년에 3조 4298억원(2013년 전자공시 기준)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지만, 친근한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원그룹은 매해 큰 성장을 하기 보다는 차근차근 성장 중인 그룹이다.


동원그룹은 현재 ‘제조업’으로 유명하지만 시작단계에는 원양어업이었다. 원양어업을 통해 그룹의 규모를 지금까지 키워낸 것이다. 창업주인 김재철 회장의 별명이 ‘장보고’인 이유도 직접 바다를 개척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타 창업주들이 ‘기초’가 튼실했다면 김 창업주는 ‘맨 땅에 헤딩’에 가까운 도전이었다.


맨손으로 일군 기업


김재철 회장은 1935년 전남 강진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의 분위기상 형제 중 일부만 교육을 받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김 회장 역시 홀로 학교를 다녔다. 성적이 뛰어났던 김 회장은 강진농고를 우등생으로 졸업하며 서울대 농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김 회장은 남다른 결정을 한다. 부산의 수산대로 진로를 결정했고, 이후의 결정도 파격적이었다. 평범한 학생들의 경우 수협 등 관계기관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김 회장은 원양어선을 타겠다고 선언했다. 당시만 해도 김 회장의 선택은 존중 받기보다는 ‘객기’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의 뜻은 완고했다.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면서 우리나라 첫 번째 원양어선인 ‘지남호’에 몸을 실었다. 1958년 배에 첫 발을 들인 김 회장은 이후 8년간 바다를 떠돌며 ‘참치 킬러’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김 회장은 1969년 자본금 1000만원으로 ‘동원산업’을 설립했다. 이후 동원산업은 바다에서 직접 잡은 참치를 미국의 참치캔 업체인 ‘스타키스트’에 판매했고,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였다.


당시에만 해도 파격적인 일이었다. 이렇게 자본금을 마련한 김 회장은 1981년 동원식품(현 동원F&B)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그룹을 알렸다. 동원식품은 동원산업이 잡은 참치를 캔으로 가공했고 이는 ‘히트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의 동원그룹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동원참치’이다.


이후 한신증권을 인수해 동원증권을 만들고 동원건설 등을 인수하며 대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2000년에는 식품사업부분을 동원 F&B로 분할했고, 2001년에는 지주사 동원엔터프라이즈를 설립했다.


‘짧고 굵은 혼맥’


김 창업주가 타 창업주에 비해 젊은 만큼 혼맥이 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부럽지 않은 혼맥을 자랑하고 있다. 김 회장은 부인인 조덕희 여사와 혼인해 2남 2녀를 뒀다. 네 자녀가 모두 결혼을 했고, 이들로 인해 이어진 ‘사돈’들의 집안이 남다르다. 장관부터 국가정보원장까지 폭 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의 경우 제 28대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낸 고병우씨의 딸 고소희씨와 1992년 결혼을 했다. 당시 결혼식에 국내외 정재계인사들이 대거로 참석해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고씨는 이화여대 전산학을 전공했고, 고병우 전 장관은 장관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동아건설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경영인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장녀인 이화여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김은자씨는 1989년 서울지검에 재직중이던 정택화 검사와 혼인했다. 정택화 검사는 현재 광주고등검찰청에서 검사로 재직중이며, 정 검사는 광주지검 부부장검사, 대구지검 안동지청장, 부산고검 부부장검사, 의정부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 대구고검 검사를 거친바 있다.


차녀인 김은지씨는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故 김택수 전 국회의원의 4남인 김중성 씨와 1992년 결혼했다. 이들은 김 회장과 평소 친분이 있었던 세종여행사 천신일 회장이 1988년 어린이들을 인솔해 외국으로 떠나는 프로그램의 대학생 리더로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났다는 것이 후문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김씨는 나라종합금융 상무이사를 지낸 후 2001년 미국 뉴저지로 건너가 투자관리회사인 세인투자관리를 설립해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의원은 공화당 원내총무를 지낸 바 있으며 1971년부터 8년간 대한체육회 회장을 맡는 등 활발한 외부활동을 했다. 김 전 의원은 김한수 한일그룹 창업주의 친동생이다.


차남인 김남정 부사장은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핵심 인물로 꼽히고 있다. 김 부사장은 열애결혼을 했다. 3년여의 열애 끝에 1998년 신수아씨와 혼인했다.


신씨는 33대 법무부 차관과 25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신건 전 국회의원의 셋째 딸로, 김 회장과 정계와의 인연을 이었다.


장관부터 국가정보원장까지‥폭 넓은 사돈가
경영인 협회 수장 고병우 회장까지 꽉 잡았다


강하게 키운 자녀들


김 회장은 자녀들에게도 특별한 혜택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밑바닥부터 차근히 경영수업을 시켰다.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역시 마찬가지였다. 김 대표는 1987년 동원산업의 사원으로 입사해 대리, 상무 등을 거쳤다.


그룹 오너의 자녀가 ‘사원’으로 시작하는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 진급을 거듭한 김 대표는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고, 2005년에는 자사보다 몸집 큰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해 1조원대의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설립했다.


차남인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사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1992년 고려대를 졸업했고 형인 김남구 대표와 마찬가지로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회장님’의 자녀가 창원의 참치 통조림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첫 발을 뗐고, 이후에 영업부 평사원으로 시내 백화점에 참치캔을 배달하는 일까지 해야 했다.


이는 김 회장의 신념이나 다름없었다. 장남인 김남구 대표의 경우에도 입사하기 전부터 혹독한 수업이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영 수업’이 아닌 진짜 ‘밑바닥 수업’이었다.


6개월 간 참치배에 올랐고, 하루 16시간 가까이 중노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영의 일선에서 일을 배운 것이 아니라 참치를 잡고, 삶고, 냉동시키는 과정이나 갑판에서의 허드렛일 등 온갖 일을 도맡아 했다는 것이 후문이다.


아들들을 혹독하게 가르친 덕인지 두 형제 모두 뛰어난 경영능력을 갖고 이끌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동원그룹은 업계에서도 ‘조용한’ 그룹으로 꼽힌다. 그룹 규모에 비해 큰 사건 사고가 많지 않은 편이었고, 꾸준히 기업의 몸집을 늘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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