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혼맥 대신 택한 의리…‘오너리스크’는 오점

[스페셜경제=박단비 기자]한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담당하며 국내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대기업 집단 재벌가. 이들은 서로 혼맥과 인맥을 통해 더 높은 권력을 누리기도 하고 서로를 잡아주고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면서 거대한 울타리를 형성했다.


한국 경제사의 이면에 숨어있는 그들만의 혼맥을 통해 재벌의 형성과 교착의 끈이 한국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스페셜 경제>가 한국의 대표적 재벌가의 혼맥과 경영 승계 과정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운명 같은 결혼에 성공한 이 창업주…최초의 사위경영
2001년 분리된 동양과 오리온 독자경영의 시작 알려


동양그룹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위 경영’이라는 타이틀을 단 회사이자,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기도 한다. 지난 2001년 오리온그룹이 계열 분리를 했지만, 여전히 ‘CI’등은 함께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썩 달갑지 않은 일만 가득이다. 동양그룹과 오리온 그룹 모두 좋은 소식보다는 구설수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은 현 회장은 앞서 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옛 동양캐피탈) 등 상환능력이 없는 동양계열사의 CP 및 회사채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해 1조3032억여원을 가로채고 계열사 간 부당지원을 지시한 등 혐의로 지난 1월 재판에 넘겨으며, 5월에는 동양시멘트에 대한 시세조종을 통해 400억 원대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로 추가 기소됐다.


오리온 역시 표정이 밝지 못하다. 동양그룹처럼 큰 사고는 없지만, ‘오너 리스크’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담철곤 회장은 회사 돈 300억 원을 유용한 혐의를 받아 지난해 4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확정 받은 바 있다.


‘견실’하게 시작한 동양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는 업계에서 ‘신화’라고 불린다. 북한 함경도 출신인 이 창업주는 15살의 어린나이에 일본계 기업에 입사했다. 뛰어난 능력을 갖췄던 그는 9년 만에 간부 자리에 올라섰고, 23살의 나이에는 창업에 성공했다.


그의 학력은 ‘초졸’로 끝이지만, 시작부터가 범상치 않았던 셈이다. 이 창업주는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모두 버텨냈다.


이 창업주의 결혼 이야기는 재벌가 중에서도 특별하다. 이 창업주는 부인 이관희씨를 북한에서 처음 만났다. 34살 당시 교편을 잡고 있었던 이씨를 보고 약혼했지만, 중국군의 개입으로 인해 결혼을 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생이별을 했지만, 인연은 이어졌다.


부산으로 월남한 이 창업주가 거제도에서 이씨를 만나게 되면서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이관희 여사는 현재 서남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창업주와 이 여사는 두 딸을 뒀다.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과 이화경 오리온 사장이다. 이들 둘 모두 ‘강압적인’ 혼맥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혜경 부회장은 평소 집안끼리 알고 지냈던 故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의 중매로 1976년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혼인했다. 현 회장은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냈던 故 현상윤씨의 손자로, 아버지 故 현인섭씨는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바 있는 ‘학자 집안’이다.


현 회장의 형제들은 대부분 학계에 몸을 담고 있다. 첫째는 현재천 고려대 명예교수, 둘째는 현재민 KAIST 교수, 장녀는 현재희 세종대 음악과 교수, 차녀는 현재란 이화의원 원장이다.


결혼 당시 현 회장은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 중이었지만, 결혼 이후에는 경영에 뛰어들기 위해 스탠퍼드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전공했다.


현 회장의 자녀들도 ‘학자 기질’을 풍겼다. 1남 3녀가 모두 스탠퍼드 졸업했다. 장녀인 현정담 동양 상무는 동양매직 마테팅전략본부장은 스탠퍼드에서 심리한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고, 이후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졸업 이후 2006년 동양매직 차장으로 입사했다.


장남인 현승담 전 동양네트웍스 대표는 현정담 상무와 마찬가지로 복수 전공한 이후 경영학 석사과정을 받았다. 최근에는 가압류 절차 직전 고가의 미술품을 빼돌려 매각한 혐의로 조사받은 어머니 이혜경 부회장을 도운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은 바 있으며, 자금 상환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를 묵인하고 2조원대 기업어음을 발행해 수만명에게 피해를 입힌 혐의로 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동양시멘트의 주가조작혐의도 있다.


동생인 현경담(32) 동양 부장은 졸업 후 동양온라인에 입사했지만 현재는 동양 패션부문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창업주의 차녀 이화경 오리온 사장은 1980년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이들 사이에는 1남 1녀가 있다.



현 회장 ‘동양사태’로 재판·담 회장은 횡령 혐의 걸려
경영능력과 별개 된 기업들 발목 잡은 ‘불량 사위들’


최초의 사위경영


이 창업주가 1989년 눈을 감으며 자연스레 회사도 물려줬다. 창업주의 평소 의지대로 현재현 회장에게는 동양그룹을, 담철곤 회장에게는 동양제과를 승계했다.


이들은 독자적으로 경영을 하던 가운데, 2001년 9월 동양제과를 계열 분리했다. 당시 동양제과는 제과 및 엔터테이면트 계열의 16개사가 분리 됐다.


두 사위의 스타일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현 회장은 ‘금융’ 부분에 집중적인 투자를 했고, 담 회장은 엔터테이먼트에 투자를 했다.


초반에는 현 회장이 웃었다. 동양증권을 인수해 5년 만에 10대 증권사로 성장시키며 업계에서 ‘타고난 경영자’라며 극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과도한 욕심이 화를 부르게 됐다. 현 회장은 동양레저·동양인터내셔널(옛 동양캐피탈) 등 상환능력이 없는 동양계열사의 CP 및 회사채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해 1조3032억여원을 가로채고 계열사 간 부당지원을 지시한 등 혐의로 지난 1월 재판에 넘겨졌고, 5월에는 동양시멘트에 대한 시세조종을 통해 400억 원대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로 추가 기소됐다.


결국 지난 8월 21일 검찰로부터 15년 형을 구형 받으며 ‘동양사태’의 책임을 짊어지게 됐다.
담 회장의 오리온그룹은 엔터테이먼트 사업에 집중 투자했다. 오리온그룹은 2001년 동양그룹 계열 분리하고 나서 2003년 동양제과에서 오리온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2009년에는 해외매출 국내 매출 추월했고, 2012년에는 중국매출 1조를 돌파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오리온은 사업 다각화에 박차를 가한다. 1994년 영상사업 분야에 진출하면서 엔터터엔먼트사업 진출 발판을 마련했다. 1999년 미디어플렉스, 2000년 제미로, 2010년 메가박스 등의 계열사를 설립해 종합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쇼박스는 국내 3대 영화 배급사 이자 영화제작 투자사 중 하나로 성장했다.


영화투자 배급사 쇼박스는 설립 3년 만에 업계 1위로 올라섰고, 메가박스는 전국에 100개가 넘는 스크린을 확보하는 등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영화관으로 성장했다.


오리온은 이 쇼박스를 동양그룹에서 계열분리한 뒤 1년 만에 설립했다. 동양제과 사명도 변경했다. 2003년 동양제과 사명을 오리온으로 변경, 명실상부 ‘동양’ 흔적을 지웠다.


이러한 성장에는 이 사장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이 사장은 어렸을 때부터 회사 경영에 관심이 많았다. 동양제과 시절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근무 할 만큼 열정이 뛰어났다. 마케팅 담당 시절 ‘초코파이 정 시리즈’ 광고 아이디어로 유통업계에서도 주목 받는 인재였다.


담 회장 역시 일 열정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할 만큼 뛰어난 열정을 보여 회사를 키우는데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사업’ 외에서는 합격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담 회장은 고가 미술품을 법인자금으로 매입해 자택에 설치하고 람보르기니 등 고급 외제 승용차를 계열사 자금으로 리스해 개인용도로 사용하는 등 총 226억 원을 횡령하고 74억 원을 유용한 혐의로 2011년 6월 구속기소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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