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재벌가 혼맥분석]㉓로열패밀리 ‘삼양그룹(삼양사)’

박단비 / 기사승인 : 2014-08-18 10: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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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계·관계·학계·언론계·교육계 다잡은 거미줄 혼맥

[스페셜경제=박단비 기자]한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담당하며 국내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대기업 집단 재벌가. 이들은 서로 혼맥과 인맥을 통해 더 높은 권력을 누리기도 하고 서로를 잡아주고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면서 거대한 울타리를 형성했다.


한국 경제사의 이면에 숨어있는 그들만의 혼맥을 통해 재벌의 형성과 교착의 끈이 한국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스페셜 경제>가 한국의 대표적 재벌가의 혼맥과 경영 승계 과정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거물 정치인도 수두룩‥5공 시절 ‘거물’ 김진만도 사돈
축구 좋아했던 김상준 명예회장 덕에 스포츠계 인맥까지


삼양그룹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것이 ‘삼양설탕’이다. 비록 지금은 큐원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삼양그룹을 일으켜 세운 건 ‘설탕’이라 할 정도로 삼양에게는 각별한 제품이다. 하지만 삼양그룹의 이름과 연관 되는 건 ‘설탕’ 뿐이 아니다.


불편한 단어 ‘친일’이 항상 뒤따른다. 김영수 창업주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에 국가헌금을 납부하고 학병권유 연설까지 한 일이 밝혀진데다, 조선총독부와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며 친일 단체의 간부직까지 맡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삼양은 늘 사람들에게 ‘친일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설탕’으로 일군 그룹


삼양그룹 김연수 창업주는 1896년 10월 전라도 고부군 부안면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형의 호였던 인촌은 김 창업주와 형이 태어났던 지역의 ‘인촌리’에서 따 ‘인촌’으로 지었다.


김 창업주는 여느 창업주들과는 다르게 부유하게 살았다. 부친인 김경중씨가 1만 5000석지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호남지역에서는 내로라하는 집안이었다.


하지만 외로운 유년시절이었다. 김 창업주가 태어나기 전에 위로 있었던 세 명의 형과 한 명의 딸이 일찌감치 운명을 달리했다. 하나 뿐인 형은 큰아버지 댁에 양자로 보내지며 홀로 자라야했다.


김 창업주는 15세이던 1910년 12월 8일 두 살 위였던 박하진씨와 혼인을 맺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김 창업주는 특이한 이력을 쌓았다. 한국인 최초로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것.


1921년 한국에 돌아온 김 창업주는 바로 다음 해인 1922년 형 김성수씨의 권유로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전무와 상무에 취임하면서 경영인으로 써 첫 발을 디뎠다. 당시 고무신과 태극성표 광목으로 규모를 키웠다.


김 창업주는 사업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소작농을 협동농업 형태로 결합한 근대 영농을 시작했고, 1924년에는 삼수사를 설립해 소유 영토들에 대한 근대화 작업에 나섰다.
이후에는 간척사업에도 눈을 돌리는 등 다양한 사업에 관심을 쏟았다.


하지만 실패도 겪었다. 만주벌 개척에 나섰지만 1945년 해방하면서 만주의 사업장들을 고스란히 철수했다. 해방 이후 김 창업주는 반민특위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는 삼양사 재건에 나섰다. 김 창업주는 한 가지 선택으로 회사를 새롭게 일으켰다. 김 창업주는 제당업을 택했다. 당시 설탕은 수입에 의존했다. 김 창업주는 울산 바닷가를 메워 그 곳에 제당공장과 한천공장을 건설했다. 그는 1956년 삼양을 제당으로 키우면서 주식회사 삼양사를 출범시켰다. 이는 지금의 삼양을 만든 힘이나 다름이 없다. 여전히 ‘삼양사’하면 ‘설탕’이 떠오를 정도이다.


삼양사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김 창업주는 다양한 방면에 투자했다. 1962년에는 삼양수산을 설립해 어종을 가공하고 수출했다. 냉동선이 무려 21척일 정도로 수산업에도 애정을 가졌다.


이뿐 아니라 전주방직을 인수해 삼양모방을 설립하고, 1969년 전주에 폴리에스테르 공장을 건설하는 등 국내에서 손꼽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 창업주는 1975년 상홍-상하 형제에게 회사를 물려준 뒤 은퇴했다.


동아일보·매일경제 까지 휘어잡은 혼맥‥언론 파워 ‘눈길’
형 김성수家는 삼성그룹과의 혼인으로 막대한 혼맥구축



사회 전역에 걸친 혼맥


김 창업주는 박하진여사는 7남 6녀, 총 13명의 자녀를 뒀다. 장남 상준(작고), 차남 상협(작고), 3남 상홍(작고), 4남 상돈(작고),5 남 상하,6 남 상철 ,7남 상응(작고) 등 7남과 장녀 상경, 차녀 상민, 3녀 정애, 4녀 정유, 5녀 영숙, 막내 희경을 두었다.


삼양그룹의 혼맥은 보통 그룹들처럼 정재계에서 끝나지 않고, 관계·학계·언론계·교육계까지 걸치는 방대한 거미줄 혼맥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김 창업주는 강제로 혼맥을 늘리기 보다는, 무난한 결혼을 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창업주는 자녀들의 경우 중매결혼이 많았지만, 사위와 며느리들의 집안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때문에 직접적인 사돈관계에서 정관계재계의 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장남 김상준 삼양염업 명예회장은 평소 집안끼리 각별했던 이화여대 김활란 총장의 소개로 1943년 구영숙씨의 맏딸 구연성씨와 혼인을 맺었다. 이들 사이에 둔 세 딸은 정계·관계·재계 인맥을 넓혔다.


장녀 정원씨는 고려대와 국가대표 축구팀에서 활약했던 김선휘(現 삼양염업 회장)과 혼인했다. 이들의 사이는 김 명예회장이 이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축구를 좋아했던 김 명예회장은 모교인 고려대 축구팀을 지원했고, 당시 고려대에서 활약했던 김선휘 회장은 자연스레 김 명예회장의 집에 드나들었고, 혼인까지 이어지게 됐다.


차녀 정희씨는 5공시절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진만씨의 맏며느리가 됐다. 동부그룹의 회장인 김준기씨가 정희씨의 남편이다.


3녀 정림씨는 전 문화교육부장관 윤천주씨의 장남인 윤대근씨와 혼인을 맺었다. 윤대근씨는 현재 동부건설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장남인 병휘씨는 한양대 자연과학대 자연과학부 수학과 교수로 교직에 몸을 담고 있으며, 차남 범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인맥 꽉 잡았다?


김 창업주의 차남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고려대 부교수 시절 김준형씨의 맏딸 인숙씨와 연애결혼 했다. 이들은 맏딸 명신씨는 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과 혼인을 맺었다. 외아들인 김한씨는 현재 전북은행 은행장을 역임중이다.


3남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은 수원에서 소문난 부자였던 차준담씨의 딸 부영씨와 혼인을 맺었다.


김 명예회장과 차부영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은 전 서울신문 김종규 사장의 딸 김유희씨와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벽산그룹 김인득 회장과 한 다리를 건넌 사돈이 됐다. 차남 김량 삼양홀딩스 부회장은 전 공군참모총장이었던 장지량씨의 딸 영은씨와 혼인을 맺었다. 영은씨의 오빠 장대환씨는 매일경제 신문 창업주 정진기씨의 사위로 현재 매일경제의 회장이다.


장녀인 유주씨는 사업가 윤주탁씨의 2남인 윤영섭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윤주탁씨의 사돈은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 윤 명예교수의 동생은 박 전 위원의 장녀와 혼인을 맺었다.


4남 김상돈 삼양염업사 고문은 김유황 전 광장 부사장의 딸 용옥씨와 혼인했고, 장남인 병진씨는 김상준 명예회장의 중매로 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냈던 한흥기씨의 딸 혜승씨와 혼맥을 맺었다.


5남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은 1953년 아버지 친구의 중매로 박상례씨와 혼인했다. 외동딸인 영난씨가 송하철씨와 혼인을 하며 송남성 모나미 회장의 며느리가 됐다.


6남 상철씨는 우정명씨와 혼인했고, 7남 김상응씨는 권명자씨와 혼인을 맺었다.


장녀인 김상경씨는 아폴로박사 조경철씨와 결혼했지만, 이후 이혼해 조서봉, 조서만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차녀 김상민씨와 혼인을 맺은 이두종씨는 삼양사 과장으로 입사해 부사장자리까지 올랐고, 삼양사의 경영에 활발히 참여했다.


3녀 정애씨는 조종립씨의 아들 조석씨와 결혼했다. 두종씨와 마찬가지로 삼양사에 입사했고 대표이사와 부사장을 거쳐 상임고문까지 역임했다.


4녀 정유씨는 서울대 부총장을 역임했던 김영국씨와 혼인했다. 5녀인 영숙씨는 미국인 스테푸친과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막내딸 희경씨는 김종규씨의 아들 김성완씨와 혼인해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한편, 김 창업주의 형인 김성수씨도 9남 4녀로 13명의 자녀를 뒀다.


사실 김성수씨가 유명한 것은 비단 자녀들의 혼맥 뿐이 아니다. 김 창업주의 형 김성수씨는 1950년대 경성방직·보성전문학교(現 고려대학교)의 인수자이기도 하다. 때문에 고려대와 삼양 간의 인연도 깊다.


2011년에는 삼양그룹 김윤 회장이 고려대에 학교발전 기부금으로 30억원을 기부하는 등 꾸준히 인연을 함께하고 있다.


장남인 김상만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직계자손들도 화려한 혼맥을 자랑한다. 병관씨는 장남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를 이한동 전 총리의 차녀 정원씨와 혼약을 맺게 했고, 2남 재열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서현씨와 혼인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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