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사업 외길’…그러나 형제 간 경영권 분쟁 오점

[스페셜경제=박단비 기자]한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담당하며 국내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대기업 집단 재벌가. 이들은 서로 혼맥과 인맥을 통해 더 높은 권력을 누리기도 하고 서로를 잡아주고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면서 거대한 울타리를 형성했다.


한국 경제사의 이면에 숨어있는 그들만의 혼맥을 통해 재벌의 형성과 교착의 끈이 한국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스페셜 경제>가 한국의 대표적 재벌가의 혼맥과 경영 승계 과정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비교적 조용한 혼인관계‥정재계 인맥 ‘드문드문’
강압적인 ‘거미줄 혼맥’보다는…가문간의 인연


대성그룹은 1947년 창업주 해강 김수근 회장에 의해 설립되어, 연탄사업을 시작으로 석유, 도시가스, 신재생에너지(태양열,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등), 환경에너지(LFG, RDF, 바이오가스) 사업 등 에너지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에너지기업이다.


종업원 3명으로 시작했을 정도로 단출한 회사였지만, 1959년 서울에서 연탄 생산·판매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자신들의 입지를 넓혀 나갔다.


1966년 대성탄좌개발(주)을 세운 이후 2년 뒤인 1968년에는 대성산업(주)을 세웠다. 이듬해에는 대성와사공업(주)을 세워 LPG 사업을 분리 한 이후 대성산업에 대성와사공업을 합병시켰다. 이후 대성연탄, 대성산업공사도 합병했다.


대성산업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것은 1976년 12월이었다. 198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에 발을 들였다. 1980년 호주현지법인을 시작으로 홍콩과 미국현지법인, 대구도시가스㈜와 서울도시가스㈜, 1985년 한국캠브리지필터㈜, 대성쎌틱㈜, 문경새재관광㈜을 세웠다. 1987년 대성계전㈜, 1988년 대성타코㈜, 한국물류용역㈜ 등을 연이어 설립했다.


에너지 외길로 일군사업


故 김수근 명예회장은 1916년 대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유가 있었던 유년시절과 달리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면서 급격히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가세가 기울어 대구상고 3학년때 중퇴를 했다.


이후에는 곧바로 일본인이 경영하던 연탄공장에 점원으로 취직했고, 점원으로 들어온 김 명예회장이었지만 남다른 성실성을 보이며 정직원 자리를 얻어냈다. 이후 경제적 여유가 생긴 김 명예회장은 1940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못 다한 학문을 마쳤다.


이후 1947년 한국에 돌아와 대성산업공사를 설립했다. 지금의 대성그룹의 모태가 된 회사이다. 대성산업공사는 종업원이 3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규모가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김수근 명예회장 특유의 청렴한 습관은 회사를 키워내기에 충분했다.
사장직임에도 경비가 남으면 회사에 반납하는 등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당시 이러한 모습 때문에 정치권에서 돈 문제로 부탁이 많았지만, 이를 모두 거절했다는 후문도 있다.


그리고 1942년에는 혼인도 맺었다. 세계기독교여자절제회 한국지부 회장인 연귀옥씨와 백년가약을 맺은 것. 덕분에 대성그룹은 종교계와도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조촐한 결혼식을 했다. 양가의 어머니가 모두 신도였기 때문에 대구 남산교회에서 혼인을 맺었다.


연 여사와 김 명예 회장 사이에서는 4남 3녀를 뒀다. 영대씨, 영민씨, 영훈씨, 영주씨, 정주씨, 성주씨 등을 뒀지만, 4남 영철씨는 1973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


이들은 김 명예회장의 ‘자랑’이나 다름없었다. 장남인 영대씨와 차남 영민씨, 3남 영훈씨, 장녀 영주씨까지 모두 서울대를 졸업한 ‘초 엘리트’이다.


차녀 정주씨와 3녀 성주씨도 각각 이화여대와 연세대를 졸업한 지성인이다.


대성산업, 누구 품으로?


장남인 김영대 대성(주) 회장은 경북사대부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후에는 서울대 대학원을 거쳤다. 김 회장은 혁명재판소시절 검사를 지낸 법조인 차영조씨의 딸 차정현씨와 1971년 혼인을 맺었다.


당시 김 회장은 대성산업의 관리이사 겸 영등포공장의 건설 책임자로 입사했다. 김회장과 차정현 여사 사이에서는 정한, 인한, 신한 등 3형제가 있으며, 이 중 장남 정한씨는 대성산업에서 부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차남인 김인한씨는 유학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막내인 김신한씨는 현재 대성산업의 사장이다.


김정한 부사장은 1997년 서울 덕수교회에서 대원외고 동창인 전성은씨와 혼인했다. 성은씨의 부친은 전경호 서한모방 회장으로 김 회장과 경북사대부고 동기동창이다.

차남 인한씨는 2002년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후배인 이내리씨와 결혼했다.


김신한 대성산업 사장은 유학파이다. 미시간대 컴퓨터공학 석사출신인 그의 첫 직장은 대성그룹이 아닌 삼성전자였다. 2012년에는 대성산업 유통사업부 총괄 부사장 자리를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막내이지만 집안에서는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다. 2013년 대성산업의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며 본격적인 ‘후계자’경쟁에 돌입했다.


차남 김영민 서울도시가스그룹 회장은 소개 결혼을 했다. 1970년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민명옥씨와 혼인을 맺었다. 김 회장은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명옥씨의 부친은 유화증권 사장을 지낸 민유봉씨이다. 이들의 사이에서는 은혜-요한-종한 등을 뒀다.


장녀 은혜씨와 장남 요한씨는 2011년부터 각각 사내이사와 기획실장으로 있었던 굿캠퍼스가 최근 문을 닫았다. 굿캠퍼스는 서울도시가스의 교육학원으로, 2008년 50억을 출자해 설립한 영어학원이었다.


3남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은 1993년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차녀인 김정윤씨와 혼례를 올리며 종교계를 껴안았다. 이들 사이에서는 의한-은진-익진 씨를 뒀다.


김 회장이 지나온 길은 탄탄하다. ‘2013 세계에너지총회’에서 세계에너지협의회 공동의장에 취임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장녀인 김영주 대성그룹 부회장은 1975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신현정씨와 결혼했다. 개인병원을 운영했지만 최근에는 도시가스설비회사인 알파서비스를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사이에는 정희-명철 등 1남 1녀가 있다.


차녀 김정주씨는 대성홀딩스 공동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막내딸인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하버드 동창생이었던 딘 고달드와 결혼해 딸 지혜씨를 뒀다.


유일한 오점 ‘형제간 사이’, 故김 명예회장도 고민
‘대성’이름 둘러싼 형제들 간의 싸움‥14년간 지속


형제간 싸움 격화


잠잠할 것이라 예상했던 대성그룹은 2001년 창업주 김수근 명예회장이 노환으로 별세한 뒤 장남인 김영대 회장이 대성산업을 기반으로 대성그룹을 물려받았다. 이후 ‘대성’이라는 그룹 명칭을 사용하여 경영하고 있다.


창업자인 고 김수근 회장이 별세한 2001년 이후 대성家는 격동의 세월을 이어가고 있다. ‘대성’ 브랜드를 차지하기 위해 장남과 삼남이 특히 14년간 이어진 법정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고 김수근 회장은 장남 김영대 회장에게 대성산업을 차남 김영민 회장에게는 서울도시가스를, 삼남 김영훈 회장에게 대구도시가스를 각각 경영토록 했지만 이가 온전히 정리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다. 과거 지역 사업권역이 확실한 도시가스 사업이 주력일 때에는 사업간 영역이 겹치지 않아 충돌을 피할 수 있었으나 해외자원개발 등 신사업 비중이 커지면서 충돌이 잦아졌다는 것이 화근으로 분석된다.


또 완전히 계열이 분리, 복립 된 것이 아닌 대성가 한지붕 아래에서 각각 다른 경영을 하면서 가족에서 ‘적’이 됐다는 것.


특히 사명을 두고는 모두 유독 예민한 행보를 보인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2일 서울고법 민사4부(부장판사 이균용)는 장남 김영대 회장이 대표로 있는 대성산업 등 4곳이 삼남인 김영훈 회장의 대성홀딩스를 상대로 낸 부정경쟁행위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성가 사명을 둘러싼 소송이 3심까지 간 상황에서 장남 대신 삼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같은 사명 전쟁은 지난 2010년 장남 김영대 회장의 대성 측이 ‘(주)대성지주’라는 명칭으로 대성산업을 증시에 상장하면서 시작됐다. 삼남 김영훈 회장이 있는 대성그룹 측이 이 보다 8개월 앞서 ‘대성홀딩스’를 상장한 만큼 ‘대성지주’라는 상호를 사용하지 말라며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고 나선 것.


대성산업이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하면서 지주사인 대성지주와 사업회사인 대성산업으로 인적분할 되고 대성지주로 변경 상장을 추진하면서 이 같은 형제간 법적 공방이 발생하게 됐다.
대성산업을 맡고 있던 김영대 회장이 ‘대성지주’라는 이름으로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려고 하자 그간 대성그룹이라는 사명을 써왔던 김영훈 회장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이 법적공방은 재판부가 김영훈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단락됐다. 김영대 회장의 대성지주는 대성합동지주로 회사명을 바꿨다. 하지만 2012년 또 다시 본안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먼저 상장한 삼남 김영훈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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