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까지 휩쓴 ‘조용하고 강한’ 혼맥

[스페셜경제=박단비 기자]아모레퍼시픽은 우후죽순으로 늘어가고 있는 화장품 업계에서도 단연 한 손에 꼽히는 업체이다. 가장 오래된 역사와 탄탄한 기반을 자랑한다. 경제 불황 속에서도 ‘질주’ 중인 아모레퍼시픽은 2013년도에 매출 3조 8954억원을 기록했다. 2012년과 비교해 무려 13.5%나 늘어난 매출액이었다. 뿐만 아니라 영업이익 역시 4.3%가 증가해 4698억원을 기록했다.


아모레퍼시픽은 화려한 혼맥으로 이목을 끌었다. 가족 숫자 자체는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언론과 정관계를 모두 휘어잡으며 ‘조용한 강자’로 자리 잡았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아모레퍼시픽의 혼맥을 살펴봤다.


1932년부터 시작된 ‘화장품 신화’‥서 창업주 어머니부터 대물림
회사 물려받은 서경배 회장‥태평양그룹의 제2 성장 신화 밑바탕


아모레퍼시픽의 모태는 널리 알려지듯 태평양 그룹이다. ‘화장품 업계의 신화’로도 불리는 故서성환 창업주로부터 시작됐다. 창업주인 故 서성환 회장으로부터 이어진 아모레퍼시픽의 전통은 현재 아모레퍼시픽의 회장인 서경배 회장까지 이어지며 화장품 업계를 주름잡는 거물로 자리 잡고 있다.


윤독정 여사로부터 시작된 사업


故서성환 창업주는 1924년 7월 부친 서대근씨와 모친 윤독정 여사의 3남 3녀 가운데 차남으로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에서 태어났다. 이후 소학교 시절 개성으로 이사하면서 ‘화장품’과의 첫 만남이 시작됐다.


윤독정 여사는 조그만 상점을 열어 장사를 하던 중 화장품 제조에 눈을 돌리게 됐다. 여성들이 머릿결에 관심이 많은 것을 간파했고, 1932년부터 동백기름을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판매가 늘자 미안수, 구리수 등을 차례로 제조 판매 하며 영역을 점차 넓혀갔다.


당시 지금처럼 큰 공장도 없었기에 모든 작업은 수작업으로 진행됐지만, 찾는 이가 많아지면서 수요가 모자를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후 윤 여사는 ‘창성상점’이라는 생산자 명칭을 표기하기도 했다.


서성환 창업주는 1039년 중경보통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어머니와 함께 사업에 뛰어 들었다. 남성에게는 생소한 ‘화장품’이었지만,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서 창업주는 원료를 구하기 위해 개성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물건을 싣고 다니는 등 엄청난 열정을 보였다.


어머니와 함께 사업을 시작한 이후 사업은 승승 장구였다. 1941년 개성 최초의 백화점인 김재현 백화점에 판매대를 놓고 물건을 직접 팔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됐다.


하지만 이후 1944년 강제징용을 당하며 잠시 일에서 손을 떼기도 했다. 이후 1945년 광복이 되면서 1945년 9월 다시 개성으로 돌아오며 화장품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서 창업주는 창성상점을 태평양상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태평양만큼 큰 기업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름이었다.


본격적인 사업 확장 시작


서 창업주는 1947년 개성에서 서울로 터를 옮겼다. 이즈음 부인인 변금주 여사를 만나 혼약을 맺었다. 이후 1948년 당시에는 보기 힘들었던 ‘고급화 전략’으로 메로디 크림을 시장에 내놓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메로디 크림은 태평양의 1호 제품이었다.


이후 6․25가 터졌지만 서 창업주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부산으로 화장품 원료를 싣고 내려가 ABC포마드를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 바르면 뻣뻣해졌던 다른 포마드와는 다른 제품이었기 때문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은 60년대까지 인기를 끌었고, 이후 ABC 100번크림, ABC향수 포마드 등의 출시가 이어졌다. 이는 성장에 기틀이 됐고, 1954년 후암동에 국내화장품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개설했다.


1956년 8월 태평양은 지금의 본사 사옥이 있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로 본사와 공장을 옮겼다. 이후 기술자들을 독일 일본에 유학시키는 등 회사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고, 미용정보지를 국내 최초로 창간하는 등 태평양 알리기에 앞장섰다.


이후 1989년 9월 태평양화학공업사는 1959년에 태평양화학공업주식회사로 거듭났다. 당시 규모는 자본금 5천만환, 발행주식은 5000주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서히 시장을 넓혀간 서 창업주는 1964년 국내 최초로 화장품을 수출 했다. 이디오피아에 수출을 한 것을 시작으로 1970년에는 태국까지 발길이 이어졌다.
이후 성장을 거듭한 태평양화학공업주식회사는은 1993년 상호를 태평양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2006년 6월 투자부분 ‘태평양’과 사업부분 ‘아모레퍼시픽으로 분류해 새 출발을 하게 됐다.


정관계를 휘어잡은 ‘누나 파워’‥서 회장은 농심과도 혼맥
자녀들 대부분이 아모레퍼시픽과 별개로‥‘3세 경영 아직’



‘화려한 혼맥’ 한몫 한 ‘누나들’


서 창업주와 변금주 여사는 슬하에 장녀 서송숙, 차녀 서혜숙, 삼녀 서은숙, 사녀 서미숙씨 등 네 딸과 장남 서영배, 차남 서경배씨 등 육남매를 뒀다.


경영에 참가했던 장남과 차남 외에도 서 창업주의 딸들도 화려한 혼맥을 자랑한다.


차녀인 서혜숙씨는 이화여대 출신으로 김일환씨의 상남인 김의광씨와 혼인을 맺었다. 김일환씨는 6.25전쟁 당시 국방차관을 역임한 이로, 여러 가지 요직들을 주로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의광씨는 사위들 가운데 유일하게 회사 경영에 참가했다. 의광씨는 태평양 계열사의 장원산업의 회장으로 활동한 적도 있지만, 현재는 인사동에 위치한 목인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서는 2남을 두고 있다.


3녀 서은숙씨는 국회 건설위원장을 지낸 최두고씨의 차남인 최상용씨와 1977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최상용씨는 고려대 의과대학장으로 재직한 바 있었다. 이들은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확실히 자리 잡은 2세 경영


서 창업주는 1982년에는 장남인 서영배씨를, 차남인 서경배 회장을 입사시키면서 2세 경영을 준비했다. 서영배씨는 태평양화학에 입사해 태평양증권 부사장, 태평양종합산업의 회장을 지냈다. 이후 태평양개발 회장직을 지낸 이후 현재는 공익재단인 태평양학원의 대표를 맡고 있다.


차남인 서경배 회장은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을 만든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경본부를 시작으로 그룹조정실장을 맡았고, 이후 태평양증권, 태평양패션, 프로야구단 돌핀스 등 계열사들을 과감히 정리했다. 이후 1997년 3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2세 경영을 시작했다.


2세 경영을 시작한 이후 관심을 끈 것이 이들의 혼사문제였다. 장남인 서영배 대표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기도 전에 그룹 경영에 참여한 상황이었기 때문. 서영배 대표는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의 1남 3녀 가운데 장녀인 방혜성씨와 1983년 혼례를 올렸다. 방혜성씨는 태평양학원의 상임이사로 활동했다. 이들은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서경배 회장의 결혼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서 회장은 지난 1990년 농심 신춘호 회장의 막내딸인 신윤경씨와 화촉을 밝혔다. 이 혼인에는 서 창업주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 회장과 서 창업주가 같은 지역에 살며 평소 자주 만나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사이에서는 2녀를 두었다.


장녀인 서민정씨는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는 어린편이지만 2006년부터 차근차근 경영권 승계를 준비했다. 지주회사 전환을 앞두고 경영권 승계를 표상하는 지분을 증여받은 것. 서민정씨는 지주회사 아모레퍼시픽그룹의 2대주주일 뿐만 아니라 우량 비상장 자회사 에뛰드와 이니스프리의 2대주주인 동시에 어머니 신윤경 여사를 통해 농심홀딩의 지분도 일부 보유하고 있다.


현재 학생으로 알려진 차녀 서호정 씨는 아모레퍼시픽그룹과 아모레퍼시픽의 관련 주식을 단 한주도 갖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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