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재벌가 혼맥분석]⑮ 로열패밀리 ‘동국제강’

박단비 / 기사승인 : 2014-05-26 09:58:51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60년 철강 외골수‥혼맥은 ‘두루두루’

[스페셜경제=박단비 기자]동국제강은 창립 이후부터 철강 분야 외에는 다른 곳을 보지 않았던 ‘철강 외골수’이다. 1949년 故장경호 창업회장부터 장세주 회장까지. 3대가 철강에만 매진하며 ‘외길 경영’을 달리고 있다.


동국제강은 다른 대기업들처럼 여타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대신 수수하면서도 재계와 학계로 혼맥이 넓게 퍼져 있어 ‘넓은 발’로는 타 기업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동국제강의 혼맥을 살펴봤다.


자녀들 대부분 ‘후계자 수업’‥하지만 일찌감치 유명 달리해
2남 故장상문 전 UN대표부 대사는 회사 경영에는 무관심


동국제강은 2013년을 기준으로 해 자산총액 10조 730억원, 매출액 6조 9210억원을 기록하는 철강계의 ‘소나무’이다. 오래된 역사와 탄탄한 기업뿌리를 앞세운 동국제강은 우리나라 철강업계에서는 확고한 위치를 자랑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국제강은 최근 주요주주로 있는 브라질 철강생산 업체인 CSP사에 9480억 원 규모의 채무보증을 결정하면서 오는 9월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신용경색 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등 위기상황도 만만치 않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동국제강의 유동성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신용등급이 Ao 등급으로 떨어진 상태이고,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악재들에도, 동국제강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60년간 쌓은 탄탄한 기업인 동시에 탄탄한 혼맥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 외골수


동국제강은 1954년 7월 설립됐지만, 실질적인 모태는 1949년 故장경호 창업회장이 세운 조선선재이다. 당시 조선선재는 못과 나사 등을 생산했다.


장경호 창업주는 1899년 동래군 사중면 초량동에서 부농인 부친 장윤식씨와 모친 문염이씨 사이의 4남 2녀 중 가운데 3남으로 태어났다.


유년시절을 보낸 장 창업주는 1913년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서울로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이후 명문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한 장 창업주는 15세에 동향출신인 故추명순 여사와 결혼했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장 창업주는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장 회장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맏형 장경택씨가 운영하던 목재소 일을 돕고 농사를 크게 짓고 있던 두 형에게 가마니를 공급하는 일로 사업을 시작했다.


첫 시작은 철강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지만, 일본에서 여러 가지 사업구상을 했던 덕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 됐다. 장 창업주가 30세 되던 해인 1929년 대궁양향을 설립, 본격적인 가마니 장사에 나서면서 사업인생을 시작했다. 1935년에는 남선물산을 세워 수산물 도매업, 미곡사업, 창고업 등으로 사업의 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우연치 않게 ‘철강 사업’과 만나게 됐다. 1949년, 남선물산 창고에서 ‘신선기’로 철사와 못을 생산하던 재일교포가 창고에서 화재가 난 뒤 장 창업주에게 이 기계를 넘기면서 장 회장은 ‘철강’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후 동국제강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엄청난 도약을 이루었다. 철사와 못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 1957년 압연공장을 건설한 동국제강은, 1959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선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도 비약적인 발전은 계속됐다. 1963년에는 민간 기업 최초로 부산에 대규모 철강공장을 건설했고, 3년 뒤인 1966년에는 국내 업계 최초로 제강공장을 준공하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다.


197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렸다. 빌릿 연속주조기를 완공하면서부터였다. 1998년에는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화려’ 대신 ‘수수함’ 택한 내력


장경호 창업주는 15세 때 만나 결혼을 한 추명순 여사와의 슬하에 6남 5녀를 두었다. 2세들은 장 창업주의 뜻에 따라 현장에서 사업을 익히고 배워나갔다. 자녀들의 대부분이 조선선재 전무와 사장 등을 맡으며 가업을 이어가는 듯 했지만 일찌감치 유명을 달리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주로 화려함보다는 수수함을 택했다. 기업 간의 결혼 보다는 학자와 사업가 집안의 자녀와 부부의 연을 맺었고, 재계와 이어진 자녀들 역시도 다른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평범한 결혼식을 치룬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남으로 동국제강 회장을 지낸 故 장상준 회장은 부산에서 큰 사업을 하던 박상선씨의 딸 박명년 여사와 혼인해 슬하에 4남 2녀를 낳았고, 장 회장의 장녀 장옥자 여사는 부산세무서장을 역임한 송귀범씨와 혼인을 치뤘다.


장남인 故 장세창씨는 故남상옥 타워호텔 회장의 딸이자 남충우 타워호텔 회장의 누이로 故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사촌동생인 남덕자 여사와 결혼했다.


차녀 장옥빈 여사는 태광산업 이임룡 창업주의 둘째아들인 故이영진씨와 혼인했다. 이임룡 태광산업 창업주는 양택식 전 서울시장을 사돈으로 두고 있는데 이를 통해 김한수 전 한일합섬그룹 회장 일가와도 사돈관계로 연결됐다.


가업보다는 공직자로


자녀들 모두가 장 창업주의 뜻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장 창업주의 차남인 故장상문 전 UN대표부 대사는 회사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장 대사는 부산의 대표기업이었던 동명목재 창업주인 故강석진 회장의 딸 강정자 여사와 혼인했다. 장경호 창업주와 강 회장은 불교 신자로서 친분이 두터웠다.


이후에도 장상문 씨는 형제들과는 다른 행보를 걸었다. 외교부 차관보, 스웨덴·멕시코 대사, 유엔대사 등을 역임한 장상문 대사는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선친의 뜻을 이어 받어 1989년 사재 10억원을 출연해 전통문화 전문 출판사인 대원사와 불교방송을 여는 등 종교 활동에 여념했다.


동국제강 장씨 일가를 이야기하면서 불교와의 인연을 빼놓기 어렵다. 창업주인 故장경호 회장의 묘비에는 ‘대원거사(大圓居士)’라고 새겨져 있다. 부인 故추명순 여사도 적선화라는 법명으로 통했다. 장 회장이 건립한 불사(佛寺)는 이후 불서보급사 설립, 대중포교당인 대원정사 설립 등으로 국내 불교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장남인 장상준 회장이 일찍이 타계했지만, 차남인 장상문 씨가 회사 경영에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동국제강은 3남인 故장상태 회장이 물려받았다.


장상태 회장은 부산 동래고와 서울대를 졸업해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석사를 마쳤다. 장상문씨와 마찬가지로 공직생활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지만, 1956년 동국제강에 전무로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장 회장은 부산에서 무역업을 하던 김영희씨의 외동딸인 김숙자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2남 3녀를 뒀다.


창업주부터 이어져온 불교·부산 지역과의 남다른 인연
장상돈 한국철강회장 ‘압도적 인맥’‥정관계 주름 잡다


본격적인 기틀 다지기


장 창업주의 3남인 장상태 회장이 회사를 맡으면서 이후 장상태 회장의 장남인 장세주 회장이 동국제강을, 차남인 장세욱 사장은 유니온스틸을 각각 키워나가게 됐다. 장상태 회장은 창업주가 그러했듯 자녀들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확실한 ‘승계교육’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세주 회장은 상명대 교수를 지낸 남희정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2남을 뒀으며, 차남인 장세욱 사장은 육사 41기생으로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1996년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장 사장은 군인 시절 친구 소개로 경제기획원 차관과 산업은행 총재,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지낸 故김흥기 회장의 딸 김남연 여사와 결혼했다.


장상태 회장의 장녀인 장영빈 여사는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차녀인 장문경 여사는 울산대 의대교수로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윤준오 교수와 혼인했다. 이들 역시 조용히 결혼을 치루며 화려함과는 다소의 거리를 보였다.


장세주 회장의 3녀인 장윤희 여사는 부산지역의 실업가이자 8대 국회의원을 지낸 故이학만 화양실업 회장의 아들인 이철 세광스틸 사장과 결혼했다. 이학만 회장은 주영복 전 국방부장관, 박두병 전 두산그룹 회장, 이건 대호그룹 회장 등 정관계의 집안과 두루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혈연만큼 진한 지연


장경호 창업주는 지금으로 치면 부산시 초량동 중앙시장 근처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때문인지 부산 지역에 혼맥이 밀집되어 있다.


정 창업주의 4남 故장상철 동국제강 전 사장은 이정옥여사와 혼인했다. 회사 경영에 활발히 참가했던 장 사장은 1991년 사망했고,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기려 세연문화재단을 2000년 충북 음성에 설립했다. 장녀 장인경 여사가 관장을 맡고 있다.


장 사장의 두 아들은 모두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철강업계에서 몸을 담고 있다. 장남인 장세훈씨는 동국제강 계열사인 국제종합기계 전무로 일하고 있으며 차남인 장세한씨는 철강판매사인 동산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2녀 장은주 여사의 남편은 현재 주튀니지 대사이자 외교통상부 국제안보대사로 재직하고 있는 송봉헌씨다.


장 창업주의 5남인 장상건 동국산업 회장은 부산지역의 사업가 김대성씨의 장녀 김명자 여사와 혼인해 슬하에 1남 3녀를 뒀다. 장상건 회장은 부산상고와 동국대 임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동국제강에 입사했다. 이후 동국제강 부사장, 동국제강 사장을 지낸 후 1977년부터 동국산업을 창립했다.


장경호 창업주가 1967년 설립한 대원사가 전신인 동국산업은 2001년 동국제강에서 계열분리됐고 현재 동국S&C, 대원스틸, 신안풍력발전, 남원태양광발전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동국산업은 현재 장상건 회장의 외아들인 장세희 대표가 이끌고 있다.


장세희 대표의 부인은 동방그룹의 창업주인 김용대 회장의 차녀 김유경 여사다. 차녀인 장혜경 여사는 김장리 법률사무소(현 김앤장 법률사무소)설립자인 故김흥한 변호사의 아들 김유동와 혼인했다.


정관계에도 이어진 인연


장경호 창업주의 막내아들인 장상돈 한국철강회장은 ‘수수함’이 엿보였던 다른 가족들과는 다르게 화려한 인맥을 자랑한다. 경북고와 동국대를 거쳐 1962년 조선선재에 입사한 장 회장은 동국제강 상무와 전무를 거쳐 1982년 한국철강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1998년까지 동국제강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01년 한국철강을 분리해 독립했다.


장상돈 회장은 부인 심금순씨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인 장세현 한국특수형강 대표는 뉴욕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한국철강에 입사했다.


2남인 장세홍 한국철강대표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화학과와 일본 와세다 대학원을 나온 뒤 故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차녀인 박은경 여사와 결혼했다.


박 전 회장의 맏사위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아들인 김선협, 셋째 사위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 허재명 일진소재산업 사장이다. 3남인 장세일씨는 현재 영흥철강 대표를 맡고 있다.


장녀인 장인혜씨는 사업가인 조준봉씨와 결혼했고 차녀인 장인영씨는 故 구두회 예스코 회장의 장남인 구자은 LS전선 사장과 혼인하는 등 재계의 화려한 혼맥을 형성하게 됐다.




[저작권자ⓒ 스페셜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스페셜 기획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