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애니멀

[스페셜경제=김미희 기자]“인간을 웃기고 울리는 스토리텔링의 정체는 무엇인가?”


소설을 많이 읽는 사람일수록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아이들은 배고플 때도, 무서울 때도 본능적으로 이야기를 가지고 논다는 사실은? 이야기가 인간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가장 깊숙한 신념까지 바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과학적 인문학 운동의 선두 주자인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진화 생물학, 심리학, 신경 과학의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능을 밝혀낸다.

한 흥미로운 실험에 따르면 픽션 독자는 논픽션 독자에 비해 높은 공감 능력과 사회적 능력을 보였다. 이야기는 재미와 쾌감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적 삶을 헤쳐 나가도록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은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진화한 기술이다.

이야기는 인간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꾼다. 이 책은 오늘날 소설, 영화, 드라마뿐 아니라 광고, 게임, 교육에서도 위력을 떨치고 있는 스토리텔링이 인간을 어떻게 빚어내는지, 그리고 우리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어떤 이야기보다도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인류의 오래된 생존 기술, 스토리텔링


수만 년 전, 들소를 때려잡고 조개를 긁어모으던 호모 사피엔스는 짬이 나면 모여 앉아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늘날 우리는 여가 시간에 영화관에 가 고전에서 걸어 나온 비극적 인물의 이야기에, 하늘을 나는 액션 히어로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인류 역사 이래로 인간이 이토록 오래 이야기를 좋아해 온 까닭은 보통 이렇게 설명된다.

“재미있으니까!”

신기한 점은 현실에서는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말썽’이 우리를 사로잡는 이야기의 필수 요소라는 사실이다.

이야기가 갈등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래로 서사 연구와 스토리텔링 교재의 핵심 원리이다. 관객은 영화 속에서 말썽이 일어나면 심장이 벌렁벌렁 뛰며 등장인물이 겪는 끔찍한 수난에 눈을 가리지만, 만약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대부분 잠이 들 것이다.

저자는 이 점에 착안해 이야기의 쓸모가 무엇인가를 밝혀낸다. 바다 위에 떠 있는 항공모함에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고난이도의 임무를 맡은 조종사가 모의 비행 장치를 이용해 연습하듯, 인간은 바로 이야기로부터 삶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는다.

이러한 ‘시뮬레이터 이론’은 특정 기술을 예행연습 할 때 우리의 마음이 실제 반응을 조절하는 신경 회로를 발화(發火)한다는 뇌 과학의 연구를 근거로 삼는다.


활용하되, 필요하다면 저항하라

인간은 이야기에 탐닉하도록 진화했다. 개인의 신념을 형성하고 사회에 공통의 가치를 부여하는 이야기는 인간에게 귀중한 기술이다.

그런데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언제 어디에서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이야기를 과식할 위험이 따르는 현재, 이야기는 인간에게 해로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직접적인 참여와 몰입을 유도하는 ‘쌍방향 이야기’인 게임이 문화 산업의 첨병으로 떠오른 동시에 게임 중독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그 단적인 사례이다.

이 책은 이야기의 미래를 마냥 낙관적으로 보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대신, 미래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의 힘을 활용하되, 필요에 따라서는 그에 저항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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