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런던, 매혹적인 추리극이 시작된다

[스페셜경제=현유진 기자]<열게 되어 영광입니다>는 마스터리계의 대모로 인정받고 있는 미나가와 히로코의 작품으로 18세기 런던 빈민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로테스크한 묘사, 지적인 유머, 고전적 추리극의 절묘한 조합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는 산업화라는 시대의 아픔에 감춰진 서글픈 진실을 말하고 있다.


미나가와 히로코는 1930년 한국 서울(당시 경성) 출생으로 1972년 소설가 데뷔해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역사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며 나오키 상,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시바타 렌자부로 상, 일본추리소설협회상 등을 휩쓴 이야기의 귀재이다.


2013년에는 추리소설 발전에 공헌한 작가와 평론가에게 수여하는 일본미스터리문학대상을 받으며 80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환상성이 가미된 탐미적인 작품세계와 폭넓은 지식과 연구를 바탕에 둔 치밀한 집필방식으로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며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를 통해 본격 미스터리라는 큰 틀 안에서 미나가와 히로코만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혼돈의 도시’ 그리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중이던 1770년대의 런던은 빈곤, 실업문제, 생활환경과 노동환경의 악화 속에서 향락과 퇴폐, 그리고 범죄가 공존하던 도시였다. 당시 런던은 미신과 신식 의학이 충돌하고 사치스러운 상류계층과 밑바닥 하층민의 대비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등 혼돈의 상태였다.


이로 인해 <열게 되어 영광입니다>는 산업화로 물든 런던을 바탕으로 훼손된 시체, 연쇄살인, 밀실, 암거래, 다잉 메시지 등의 익숙한 고전적 미스터리 요소를 가미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한 살인사건을 추리하는 현재와 죽은 소년의 과거 이야기가 번갈아 등장하는 구성을 통해 정밀한 서술트릭을 떠올리게 하며 후반에는 법정극의 긴박감과 놀라운 반전까지 맛보게 만든다.


현실과 허구의 콜라보


미나가와 히로코는 2차 세계대전 후 나치 독일을 소재로 삼은 장편소설 <죽음의 샘>에서 이미 역사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작가는 이번에도 현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뒤섞으며 시대의 빛과 어둠을 미스터리 소설의 틀 안에 녹여내는 특유의 장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찌푸린 하늘 아래 구정물을 뒤지며 생계를 잇는 빈민들의 생활상, 상인 무리와 귀족의 마차가 뒤엉킨 소란스러운 거리, 수감자의 인권이 철저하게 무시되었던 감옥 등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자세한 묘사는 마치 찰스 디킨스 같은 동시대 작가의 소설을 읽는 듯 생생하다.


더불어 작품속에서 끈끈한 신뢰를 바탕으로 젊은이 특유의 치기와 유머감각을 발휘해 각종 난국을 헤쳐 나가는 청년들의 모습은 작품 전체에 깔린 아련하고 탐미적인 분위기와 함께 애틋한 애정을 자아내게 만들기도 한다. 본편이 끝난 후에도 이들의 첫 만남에 얽힌 작은 사건을 그린 단편 ‘찰리의 수난’이 보너스트랙처럼 덧붙어 있어 흥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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