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넘어 세계로‥글로벌 리더 향한 도전


[스페셜경제=구경모 기자]지난 9일 업계에 따르면 2012년 최태원 회장이 인수했던 SK하이닉스가 지난해 매출액 14조1천650억원, 영업이익 3조3천8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SK그룹 내에서도 단연 최고 성적이다.


SK하이닉스 인수에는 그룹의 성장 동력을 업그레이드하고자 하는 최 회장의 강한 의지가 작용했다. 즉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의 내수 위주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리더로 도약 할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


이 같은 전략은 현재까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 편입 후 SK그룹은 수출 규모가 2년 연속 600억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수출액은 614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5천597억달러)의 11%에 달한다. 이처럼 국내굴지의 대기업을 넘어 글로벌 리더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SK. 이에 <스페셜경제>는 SK그룹의 형성과 혼맥에 대해 살펴봤다.


적수공권 창업자 최종건, 제2창업자 아우 최종현
재계 서열 4위·자산총액 47조‥국내 굴지 대기업


<본문>SK그룹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선경직물은 1940년 10월에 수원시 평동4에서 설립된 직물제조회사였다. 일본인이 경영하던 선만주단(鮮滿綢緞)과 경도직물(京都織物)이 공동으로 투자하여 설립한 선경의 상호는 선만주단과 경도직물의 머리글자에서 각각 따온 것이다.


선경직물은 1944년 8월에 공포된 ‘전시기업 정비령’에 의해 조선직물로 흡수됐다. 당시 조선직물은 수원에 있는 직물공장들을 전부 흡수했다. 이 때 최종건 창업주는 직포반 제2조장으로 일하게 된다. 조장으로서 최 창업주는 백여 명의 여공들을 통솔하며 교대작업반을 편성·운용해야 했고, 생산계획을 차질 없이 수행해야 했으며 품질관리에 대한 책임도 졌다. 이 일을 통해 최 창업주는 제직기술·인력관리·경영현장에 관한 전반적인 것을 공부할 수 있었다.



직물회사 선경‥복합기업으로 발전


1949년 여름에 최종건 창업주는 선경직물을 퇴직하고 원사(原絲)거래로 재미를 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마산으로 피난했다. 그 후 수원으로 돌아와 폐허가 된 선경직물을 1953년 8월에 인수하게 된다. 1956년 3월 24일엔 선경직물주식회사를 설립해 등기했다.


선경이 재벌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1960년대 군사정권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 때문이었다. 선경은 1962년 4월에 ‘닭표’안감 10만마를 홍콩에 처음 수출했다. 이후 해외수출에 주력하기 위해 최 창업주는 선경산업주식회사를 설립했고 이 때 최 창업주의 아우 최종현씨가 경영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최종현씨는 수원농고와 서울농대를 거쳐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았다. 귀국 후 1962년 11월 선경직물 부사장에 취임했다.


선경이 재벌그룹으로 도약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65년 화섬산업에 진출하면서부터다. 1966년 6월에 자본금 1억원으로 설립된 선경화섬주식회사는 일본 데이진(帝人)과 합작으로 건설한 아세테이트원사공장의 본사였다. 1969년 7월엔 선경합섬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선경의 발전은 섬유중심의 수직다각화에 의존했던 것이다. 선경이 현재의 복합기업집단으로 변신한 것은 1973년 최종건 창업주가 사망하고 최종현 부사장이 회장에 취임하면서부터다.


대한석유공사 인수


최종현 회장은 오일쇼크의 여파로 야기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주력기업들에 대한 증자를 단행해 재무구조를 개선했다. 또한 선경개발(관광), 서해개발(조림), 스카이메리트(봉제), 선경유화(DMT공장), 선경석유(정유공장) 등을 설립하고 극동창고를 인수했다. 또 영남방직의 경영에도 참여했다. 1976년에 선경은 정부에 의해 종합무역상사로 지정됐다.



1980년대에도 선경의 도약은 계속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도약은 선경이 1980년 12월에 국내 최대의 정유 공기업인 대한석유공사(현 SK에너지) 지분 50%와 경영권을 인수한 것이다. 대한석유는 정부가 1962년에 미국 걸프사와의 합작으로 설립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독점 정유회사였다. 이를 계기로 1982년 1월엔 해외유전 개발 사업에도 뛰어든다.


외환위기 그리고 SK의 탄생


1973년 취임 후 최종현 회장은 직물회사로 출발했던 선경을 명실상부한 재벌그룹으로 탈바꿈시킨다. 1987년엔 계열회사 16개, 자산총액 2.5조원, 재벌순위 7위를 기록했다. 1991년엔 5대 재벌의 반열에 올랐다. 1993년엔 계열회사 32개, 1994년엔 자산총액 10.7조원을 기록했다. 외환위기가 막 시작되던 1997년 4월까지 계열회사는 46개, 자산은 22.9조원을 기록했다.


1998년 3월 최 회장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룹명 ‘선경’을 ‘SK’로 바꾸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던 중 같은 해 8월 세상을 떠난다. 그룹 경영권은 장남인 최태원 당시 부사장이 물려받았다.


최태원 회장은 SK그룹을 이동통신의 최강자로 만들었으며 2012년엔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사업까지 진출했다. SK는 2014년 1월 기준 재계 서열 4위, 자산총액 47조의 명실상부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다.


중매보단 연애결혼


한편 SK그룹의 혼맥은 학계에서부터 권력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정략적인 냄새를 보이진 않고 있다. 또 중매보단 연애결혼이 많았다. 그러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나웅배 전 총리와 사돈으로 연결되면서 세간으로부터 권력형 정략결혼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과 호형호제‥사돈으로 발전
노태우 전 대통령 딸 노소영과 결혼한 최태원 회장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은 1926년 수원에서 최학배 씨와 이동대 여사의 4남4녀(양분, 양순, 종건, 종현, 종분, 종관, 종순, 종욱)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4년 4월에 경성직업학교 기계과 졸업과 동시에 선경직물의 견습기사로 입사했다. 노순애 여사와는 1949년에 결혼했다.


최 창업주의 장남 고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은 김이건 전 조달청장의 딸인 김채헌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서희, 은진, 현진, 영근 1남 3녀를 뒀다.


차남인 최신원 SKC 회장은 제일원양 백종성 대표의 딸 백해영 여사와 백년가약을 맺고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최 창업주의 장녀 정원 씨의 남편은 고학래 전 사상계 고문의 아들인 광천 씨이며, 차녀 혜원 씨는 금융인인 박주의 씨의 아들인 박장석 SKC 부회장과 혼인했다. 막내 아들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은 치과의사인 최유경 씨와 결혼했다. 3녀 최지원 씨는 우림산업 한길수 대표의 아들 한상구 씨와 결혼했다.


4녀 최예정 씨의 남편인 이동욱 씨씨케이밴 대표의 부친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다. 이동욱 대표는 이후락 중정부장의 넷째 아들이다. 최 창업주와 이후락 전 중정 부장은 서로 호형호제 할 정도로 막역했다. 양가가 둘의 결혼을 일찍이 약속을 했고, 결혼은 최종건 창업주 사후에 이뤄졌다.

세상을 놀라게 한 혼인


2대 회장인 고 최종현 전 회장은 박경식 전 해운공사 이사장의 넷째 딸인 박계희 여사와 혼인해, 슬하에 태원·재원·기원 2남 1녀를 두었다. 박계희 여사는 53년 경기여고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베테트칼리지를 거쳐, 칼라마주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었다. 최종현 회장과 만났을 때는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장남이자 SK그룹의 3대 회장인 최태원 회장은 88년 9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씨를 부인으로 맞이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정경유착의 표본으로 여겨져 두 사람의 결혼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1985년 최회장은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당시 민정당 대표위원이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 노소영 씨를 만났다. 이들은 테니스장에서 처음 만나 3년 만인 1988년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씨는 장녀 최윤정과 차녀 최민정, 장남 최인근 등 1남 2녀를 두고 있다.


차남인 최재원 SK E&S 부회장은 당시 여의도고등학교 영어교사였던 채희경 씨의 맏딸 채서영 씨와 결혼했다.


또 최종현 전 회장의 막내딸인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은 당시 SK그룹 계열사였던 선경정보시스템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김준일 씨와 결혼했다. 이들의 결혼은 최태원 회장의 중매로 성사된 것이다. 당시 선경마그네틱의 기획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최태원 회장은 선경경영정보시스템 구축을 위해 김준일 씨와 업무적으로 접촉하다가, 여동생을 소개, 결혼에 이르게 했다.

창업주의 형제들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의 큰 누나인 최양분 여사는 한때 종건·종현 형제의 가정교사였던 고 표현구 전 서울대 농대 학장과 결혼했다. 표문수 전 SK텔레콤 사장이 그의 아들이다.


둘째 누나인 최양순 여사는 고 여운창 경기개발 대표와 결혼했으며, 셋째 여동생 최종분 여사는 고 이한용 신아포장 대표와 혼인했다. 다섯째 여동생 최종순 여사는 해군 중령 출신인 고 조재동씨에게 시집갔다.


최 창업주의 넷째 남동생 최종관 전 SKC 고문은 장명순 여사와의 사이에 1남 6녀를 두었다. 이들 중 장녀 최순원 씨는 존 캐리 퍼크너씨와 국제 결혼했다. 3녀 최경원 씨는 김연준 전 한양대 이사장 아들인 김종량 한양대 총장에게 시집갔다. 또 4녀 최은성 씨는 나웅배 전 부총리 아들인 나진호씨와 짝을 이뤘다. 장남인 최철원 씨는 한숙진 씨와 인연을 맺었다.


최 창업주의 막내 남동생 최종욱 전 SKM 회장은 조효원 전 서울대 교수 딸인 조동옥 씨와 결혼했다. 조동옥 씨의 남동생이 조동성 서울대 교수다. 장남 최준원 씨는 현재 미혼이며 SK 계열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차녀 최윤선 씨도 통신·방송장비 전문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ate→steady date→I love you’


이처럼 정략결혼이나 중매결혼이 별로 없는 최씨가의 특징은 고 최종현 회장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고 최종현 회장이 죽음을 몇 달 앞두고 마지막으로 손질한 책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움직여라’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그 때 지켜본 바에 따라 나는 남녀 사이의 연애 과정을 이렇게 정리해 본다. 연애는 ‘date→steady date→I love you’, 이렇게 세 단계로 진행된다”


이를 두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2의 창업주라 불리는 최종현 회장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자녀들의 혼인뿐만 아니라 경영방식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특히 직물회사에서 무역회사로 발전한 것과 국내 첫 번째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것, 또 SK텔레콤을 설립해 이동통신회사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의 결과일 것”이란 의견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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