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고(忍苦)의 사랑 지키려던 한 여인의 이야기

[스페셜경제=현유진 기자]삶의 근원과 존재론적 슬픔을 그려내며 자신만의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구축해오던 서영은이 한 여인을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이번 신작은 『그녀의 여자』 이후 14년 만에 출간하는 일곱 번째 장편으로 문학을 통해 구도(求道)의 길을 걸어온 서영은 작가의 내공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자전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쓰인 『꽃들은 어디로 갔나』는 오랜 세월을 통해 정련된 3인칭 서술의 어조를 사용해 독자들로 하여금 무연(無緣)한 느낌을 전달한다.


이러한 느낌이 소설 전반에 잘 나타날 수 있도록 작가는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오로지 삶의 진실, 인간성의 깊이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랑이 목숨 같던 여자


소설 『꽃들은 어디로 갔나』에서는 여자주인공 ‘강호순’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호순은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던 여인으로 결혼이라는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이 만들어낸 인과의 운명을 온전히 품어낸다.


작가는 호순의 사소한 행동들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호순은 잠긴 문을 하나씩 열어가고, 설탕 단지를 깨듯 자기 안의 의지를 깨치며, 잡초를 뽑아낸 뜰에 두 그루 나무를 심는 등의 모습들로 많은 장면들이 상징성을 띄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전개된 이야기는 사소한 행동들과 사건들이 점진적으로 증폭되면서 큰 사랑의 여정을 이룬다.


더불어 소설 『꽃들은 어디로 갔나』는 호순을 통해 단순히 남녀의 사랑을 넘어선 ‘깨달음’의 경지를 보다 잘 이해시켜준다. 남편인 박 선생뿐 아니라 부부를 둘러싼 이들의 삶까지 깊숙이 들여다보는 장면은 이와 같은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내공 있는 작가의 깊이 있는 이야기


소설 『꽃들은 어디로 갔나』의 저자 서영은은 1968년 등단해 46년간 작가로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서영은은 이념 지향적 문학이 주도하던 7~80년대에서 개성적이고 이채로운 공간을 구축한 모험적인 작품들을 주로 집필했다.


컬러TV와 프로스포츠 등으로 독서문화가 위축되고 산업화에 발맞춘 처세서와 대중소설이 쏟아지던 1983년, 서영은은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며 근대적 합리주의와 물신주의의 반대편에서 삶 자체가 안고 있는 시련을 평범한 일상 안에서 실천하는 작품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작품세계는 신작 『꽃들은 어디로 갔나』의 주인공 호순에게서도 구현된다.


서영은은 주인공 호순을 생의 가시밭길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감으로써 마침내 자존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발견하는 초극적 자아로 발전시킨다.


서영은의 깊이 있는 작품세계는 이러한 주인공을 통해 인생의 참뜻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사랑과 삶의 의지를 일깨워주며 잔잔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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