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중지추(囊中之錐)’의 한솔‥옛 영광 되찾을까?


[스페셜경제=구경모 기자]주요 대기업 계열사 주식들이 연초부터 대거 지지부진한 가운데 한솔그룹의 주가가 ‘낭중지추(囊中之錐)’ 즉 ‘재주가 뛰어난 이는 스스로 두각을 나타낸다’라는 시장의 평가를 받으며 빼어난 수익률을 나타내 주목을 받았다.


지난 달 1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올 들어 주가상승률이 10% 이상인 39개 종목 리스트에 한솔 그룹 소속의 7개사가 이름을 올린 것이다. 이 중 한솔그룹의 계열사인 한솔테크닉스는 13.18%, 한솔제지는 12.84%, 한솔CSN은 11.41%로 10% 이상 올랐다.


또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성장·역량강화·선제적 위험관리’를 올해 그룹 경영의 핵심축으로 삼겠다”며 “2014년은 한솔이 반세기로 가는 마지막 해로서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밝히며 그룹 성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선 한솔그룹이 예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한솔그룹의 형성과 혼맥에 대해 살펴봤다.


‘큰 소나무’를 키운 여장부 이인희 고문‥재계 50위 중견그룹
이병철 창업주…“쟤가 아들이었다면 내가 무슨 근심이 있겠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고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첫째이자 장녀다.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누나이자 아워홈 구자학 회장과 결혼한 이숙희씨, 제일기획 상임고문인 김규씨와 결혼한 이순희씨, 전 삼성화재 회장이었던 고 이종기씨와 혼인한 이덕희씨 그리고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모두 이 고문의 여동생이다.


이인희의 활약


이 고문은 경북여고 졸업 후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다니다 결혼으로 중퇴한 후 1979년 1월 호텔신라 상임이사를 맡으면서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다. 그 후 1983년 전주제지 고문을 역임하면서 삼성가의 제지 사업을 물려받게 된다.


이 고문은 전주제지를 1972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데 이어 1991년 삼성그룹에서 전주제지를 분리해 독립경영체제를 선언했다. 이후 이 고문은 전주제지를 한솔제지로 개명하고 1995년에 국내 10위권 전기부품생산업체인 한국마벨을 인수하는 등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한솔그룹을 형성했다.



한솔그룹은 ‘큰 소나무’란 뜻의 순 우리말 이름을 가진 최초의 국내 대기업이다. 한솔그룹은 한때 자산 규모 9조 3970억원을 기록하며 재계서열 11위(2013년 기준 50위)까지 올라 ‘리틀 삼성’으로 불리기도 했다. 계열분리 당시 매출액은 3400억원에 불과했으나 금융과 정보통신, 제지 3개 부문을 축으로 삼아 급성장하며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한솔그룹을 일구어낸 사람이 바로 이인희 고문이다. 또 1998년 외환 위기로 회사가 휘청거리자 구조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회복시킨 것도 바로 이 고문이었다. 반면 이인희 고문의 남편 ‘효석’ 조운해 전 명예이사장은 삼성가의 일원이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의료인으로서 활동했을 뿐 그룹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상도 명문가‥시인 조지훈 배출


이 고문의 남편인 효석 조운해 선생은 경북대학교의 전신인 대구의과대학을 1950년에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 소아과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서울대병원에서 의사활동을 시작해 강북삼성병원 원장과 이사장을 거쳐 대한병원협회 제20대 회장, 아시아병원연맹 회장을 지냈으며,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국제병원연맹 이사를 역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조운해 선생은 경상도 명문가인 한양 조씨 일문인 조범석가의 3남 1녀 가운데 막내다. 부친인 조범석씨는 대구금융조합연합회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당시 조씨 가문은 경북 일대에 명성을 떨친 명문 집안으로 경북 영양 지역에서만 학자와 의사, 판사, 검사를 여럿 배출했고 해방 이후 박사만 14명이나 배출했다. 작품 ‘승무’로 유명한 시인 조지훈(본명 조동탁)도 이 집안 인물이다. 이인희 고문과 조운해 선생은 집안끼리의 약속으로 혼인하게 됐다. 당시 두 사람의 혼인을 주도한 인물은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다.


정략결혼은 없다


이 고문은 고 이병철 창업주와 어머니 고 박두을 여사의 뜻에 따라 결혼을 했지만 자식들의 결혼에 대해서는 자율에 맡겼다.


장남인 조동혁 한솔그룹 명예회장은 고 이창래 서우통상 회장의 딸인 이정남씨와 결혼했다. 이정남씨의 오빠는 이용구 동아건설 회장으로 전 대림산업 부회장을 지냈다. 이정남씨의 아버지는 이창래 서우통상 회장이다.



조동만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은 고 이용학 전 한일전선 회장의 딸인 이미성씨와 결혼했다. 고 이용학 회장은 전선업계 협회인 한국전선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국내 전선사업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유명하다.


조동길 회장의 부인인 안영주씨는 고 안영모 동화은행장의 셋째 딸이다. 안영주 씨의 큰 언니인 인숙 씨도 한솔그룹의 주력계열사인 한솔제지를 이끌고 있는 전문경영인 선우영석 부회장의 부인이다. 그러므로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과 선우영석 한솔제지 부회장 두 사람은 동서지간이 되는 것이다.


조동길 회장은 부인 안영주 씨와의 사이에서 나영, 성민 등 1남1녀를 두고 있으며 나영씨의 남편은 국내 최대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 한상호 변호사의 장남 경록씨다.


조 회장의 장녀 나영 씨는 미국 다트머스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했고 삼성전자 인턴사원을 거쳐 홍라희 여사가 관장으로 있는 리움미술관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신랑인 경록 씨는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웰스파고은행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두 사람은 양가 친지의 소개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솔가의 장녀인 조옥형 씨는 권대규 한솔LCD경영기획실 해외신규사업담당 부사장과 연애결혼했다. 옥형 씨의 장녀 애영씨는 재작년 창작 뮤지컬인 ‘웨딩 앤 캐쉬’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며 현재 뮤지컬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대권은 3남에게


한솔은 장남 조동혁 명예회장과 차남 조동만 한솔아이글로브 회장, 3남 조동길 회장이 1997년부터 모두 부회장을 맡아 공동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이 때 장남은 금융을, 차남은 정보통신을, 3남은 제지를 각각 담당했다. 이 때 이인희 고문은 경영조언자로서 2선에서 자식들을 지원했다.


실무 아는 최고 경영자 조동길 회장‥한솔제지 성장주도
복잡한 상호출자구조·낮은 대주주 지분율‥극복 과제


3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냈던 인물은 차남인 조동만 회장이었다. 넓은 인맥의 소유자였던 조동만 회장은 1996년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따내며 뛰어난 경영 수완을 보여줬으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PCS사업을 KT에 매각한 뒤 통신사업에서 손을 뗐다.


장남인 조동혁 명예회장은 1994년 부친의 뒤를 이어 강북삼성병원을 이끌다 95년 한솔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그는 한솔종금(당시 대아금고)과 한솔창투(동서창투) 등을 인수하며 금융업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한솔의 주력사업이 제지로 재편된 2002년에 그룹 명예회장으로 선임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인희 고문은 아버지 이병철 창업주처럼 장남보다 삼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 현재 한솔그룹을 이끌고 있는 조동길 회장은 ‘실무를 아는 최고경영자’란 수식어를 갖고 있다. 그는 형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한솔에 합류했으며 ‘제지통’으로 성장했다.


또 그는 삼성물산의 자금업무와 JP모건을 거쳐 재무 감각도 뛰어나다. 조 회장은 형들이 신규 사업 확장에 나서며 대외 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낼 때 조용히 한솔제지의 내실 있는 성장을 도모했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신문용지 사업을 매각하고 팬아시아페이퍼 합작법인을 주도한 것은 모친 이 고문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정보통신 사업을 정리하고 그룹의 주력 사업이 제지로 전환됨에 따라 조동길 회장은 2002년 자연스럽게 경영권을 물려받게 된 것이다.


실패한 지주사 전환 시도


한솔제지와 한솔CSN은 작년 4월 8일 이사회를 열고 각 회사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투자회사 간 합병을 통해 지주회사 체제(가칭 한솔홀딩스)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 한솔그룹은 작년 7월 30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열었지만 계열사인 한솔CSN 주주들의 반대로 계획이 무산됐다. 당시 한솔CSN의 주가가 급락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당초 한솔그룹은 주요 계열사인 한솔CSN과 한솔제지를 각각 사업자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한 뒤 투자회사 2개를 합병해 지주사 한솔홀딩스를 만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한솔CSN의 주주들이 반대표를 던져 합병안이 부결됐다.



<서울경제>에 따르면 한솔CSN 주주들이 합병을 반대한 이유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솔그룹이 4월 합병계획을 발표할 당시 합병에 반대하는 한솔CSN 주주들이 청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은 4,084원으로 정해졌다. 그 이후 증시 불황으로 한솔CSN의 주가가 3,500원대로 떨어졌다. 한솔CSN 주주 입장에서는 합병에 찬성하는 것보다는 반대표를 던져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10% 이상의 차익을 올리는 것이 더 이득이었던 셈이다.


한편 증권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솔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려했던 이유는 계열사 분리를 통해 복잡하게 얽힌 계열사 간 순환 및 상호출자구조를 단순화시켜 계열사들의 기업 가치를 한 단계 더 높이기 위한 것이다.


또 한솔그룹의 대주주 지분율이 매우 낮은 편이어서 그 동안 한솔그룹의 경영권 방어 문제에 대해 불안감이 있었다. 만약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성공한다면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지금보다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경영권 불안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 들어 한솔그룹의 지주회사체제 전환 재추진설이 증권가를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한솔그룹 관계자는 “지주사 전환을 재추진한다는 입장은 명확하나 언제가 될지 그 시기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며 “한솔CSN의 주가 등 시장 상황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 지주사 전환을 재추진 할 계획”이라고 말해 한솔이 다시 재도약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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