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이 아닌 조선의 책으로 독서문화사를 읽다

김민정 / 기사승인 : 2014-01-20 0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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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스페셜경제=김민정 기자]기존의 ‘책과 독서의 역사’를 다룬 책들의 대부분은 서양 연구자의 것들이었다. 보르헤스에게 4년 동안 책을 읽어준 알베르트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 신문화사가 로버트 단턴의 ‘책의 미래’, 로제 샤르티에와 굴리엘모 카발로가 엮은 ‘읽는다는 것의 역사’ 등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가 펴낸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는 우리 조상들이 남긴 조선의 책으로 독서 문화사를 짚어본다. 조선의 책은 조선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고 어떤 문화를 발명해왔는지에 대해 차분한 어조로 묻고 답하고 있다.


책과 관련된 다양한 얘기들


당시에도 책을 둘러싸고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수입한 중국서적에 오자가 많다는 이유로 사신에게 항의한 사건, 전란으로 인해 책들이 불타 없어져 과거를 못 치른 사람들의 이야기, 서점 설치를 두고 벌어진 소동 등 다채로운 얘기가 펼쳐져 흥미롭다.


2003년부터 2014년까지, 10년의 시간 끝에 완성된 역작


‘거대한 책의 바다’로 표현되는 조선의 홍문관(도서관)이 장서를 축적한 방법을 읽고 있노라면 조선의 문화가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강 교수는 조선시대 장서가 유희춘과 자신이 닮았다는 우스갯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유희춘이 평생 쓴 일기인 ‘미암일기초’에는 그가 장서를 어떻게 구했는지에 관한 일화들이 소개 돼 있다. 왕으로부터 하사받기도 하고, 없는 책은 빌려서 베끼기도 하고, 지방 고을 수령에게 편지를 보내 그곳의 목판으로 책을 찍어 달라 하거나, 중국에 가는 사람에게 북경에서 책을 사달라고 부탁하는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책을 수집했다.


강 교수는 이런 유희준의 책에 대한 사랑과 현재 자신의 그것이 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한다. 원하는 자료를 손에 넣기 위해 e메일을 써서 보내고, 다른 대학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헌책방을 뒤지는 등 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자신도 유희준 못지않은 듯하다며 수줍게 얘기하고 있다. 또한 ‘미암일기초’라는 한 사람의 일기를 통해 16세기 후반 책의 생산과 유통 상황을 알 수 있어 독서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강 교수는 2003년께 이 책의 초고를 마련했다고 한다. 정리하려는 즈음 건강이 갑자기 악화돼 마지막 탈고를 하지 못한 채 10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세월동안 강 교수는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각종 문집, 일기류, 서지학 자료와 책 관련 문헌 등을 파헤칠 수 있었다. 초고보다 더욱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담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과 서양 인쇄술의 차이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종교계와 기득권층이 독점적으로 누려 왔던 지식을 해방시켜 혁명의 원동력이 됐다. 르네상스 또한 여기서 태어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민족은 구텐베르크보다 앞선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술을 갖고 있었지만 왜 지식의 해방으로 나아가지 못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는 두 인쇄술을 둘러싼 여러 환경적 차이를 들어 답한다.


언어 측면에선 복잡한 획수의 한자와 조합하기 쉬운 라틴어, 기술적 측면에선 수동과 반자동, 기술 개발의 동기 그리고 주도층이라는 측면에서 상업적 목적을 가진 인쇄업자와 행정적 목적의 국가 등을 예로 들며 날카롭게 하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는 어조로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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