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보다 더 삼성 같은’ 신세계 그룹


[스페셜경제=구경모 기자]신세계 백화점의 모태는 1930년 일본의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지점이다. 그러나 신세계 그룹 자체가 삼성에서 완전히 분리된 것은 1997년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세계 그룹의 역사는 20년도 채 안 된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국내 굴지의 유통기업으로 성장한 것이 신세계그룹이다. 그 성장 배경에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DNA가 담겨져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신세계 그룹의 형성과 혼맥에 대해 알아봤다.


창업주 경영방식 물려받은 이명희 회장
구학서 회장‥탁월한 이 회장의 용인술


<본문>삼성그룹의 계열사 분리작업은 1987년 11월 19일 창업자 이병철의 사망에서 비롯됐다. 이병철의 사망으로 경영권이 3남 이건희에게 승계되면서 계열분리가 본격화된 것이다. 1994년에 전주제지의 경영권이 장녀 이인희에게 귀속되었고, 장남 이맹희가는 제일제당을, 2남 이창희가는 제일합섬을, 5녀 이명희는 신세계백화점과 조선호텔의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된 계열사들 중 가장 먼저 그룹을 형성한 것은 한솔그룹이다. 이인희는 전주제지를 한솔제지로 개명하고 1995년에 국내 10위권의 전기부품생산업체인 한국마벨을 인수하는 등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한솔그룹을 형성했다. 제일제당은 1995년에 드림웍스SKG와 제일C&C, 제일투자신탁 등을 설립하여 CJ그룹을 만들었다.


이 창업주의 5녀(막내딸)인 이명희 회장의 계열분리 작업은 1997년에 완료됐다. 이때 이 회장이 가지고 나온 것은 백화점과 조선호텔뿐이었지만 현재 신세계그룹은 유통사업 외에 신세계건설, 신세계푸드시스템, 조선호텔, 신세계인터내셔널 등 27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으며 이 회장 본인은 2001년 이후 국내최고의 여성 부호가 됐다.(현재는 주식평가 기준으로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이 1위다.)


자산 총액 약 23조 그룹의 탄생


신세계그룹은 1991년 삼성그룹에서 신세계백화점을 중심으로 분리돼 출범했다. 1930년에 세워진 일본 미스코시백화점 경성점이 신세계의 모태다. 이후 1955년 상호명이 동화백화점으로 변경됐다가 1962년 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에 인수됐다. 1963년 삼성그룹이 동방생명을 인수하면서 동화백화점 역시 계열사에 편입됐으며 상호를 신세계로 바꾸게 된 것이다. 신세계는 1975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했다. 그 후 1982년엔 조선호텔을 인수했고 1991년 한솔그룹의 전신인 전주제지와 계열 분리했으며, 1997년 공정거래법상 삼성그룹과 완전히 계열 분리됐다.


이어 1993년 이마트 창동점을 개점하면서 국내 유통업계에 처음으로 대형 할인점 시대를 열었다. 당시 업계에선 미국식 대형 할인점을 들여와 한국식으로 개조해 국내에 안착시키는데 성공했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또 1994년엔 한일투금과 신라금고 등을 인수하면서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이어 1995년 신세계푸드, 1996년 신세계인터내셔널, 1997년 신세계건설, 스타벅스코리아, 신세계I&C 등 계열사를 잇달아 설립했다.


2002년 그린시티, 훼미리푸드, 신세계의정부역사, 2005년 신세계첼시와 신세계SVN을 세웠다. 전체 사업부문은 유통사업, 패션사업, 식음료 및 호텔관광사업, 건설 및 IT 사업, 신규사업 부문으로 크게 나뉜다. 현재 이마트, 신세계, 광주신세계, 신세계인터내셔널, 신세계푸드, 신세계I&C, 신세계건설 등 7개 상장사와 함께 총 27개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2012년 회계연도 기준 자산총액은 22조8811억 원대로 16위(공기업 제외)의 대기업 집단이다.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신세계 그룹의 최대주주는 이 회장이다. 이 회장은 2013년 6월말 기준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을 각각 17.30%씩 보유하고 있으며 신세계건설(9.49%), 신세계조선호텔(1.12%)의 계열사 지분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을 각각 7.32%씩을 보유하고 있고, 광주신세계(52.08%), 신세계인터내셔날(0.11%), 신세계I&C(4.31%), 신세계건설(0.80%) 등의 지분을 갖고 있다. 정 부회장의 여동생 정유경 부사장은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을 각 2.52%씩, 신세계인터내셔날(0.43%), 신세계I&C(2.33%) 등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은 신세계인터내셔날 지분 21.68%를 갖고 있다.


이중적 평가 받고 있는 전문 경영인체제
정용진 부회장의 복합 쇼핑몰 사업 도전



신세계그룹은 2006년부터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정 부회장은 어머니 이 회장으로부터 1998년 총 500,000주의 주식, 당시 시가로는 68억1500만 원의 주식을 증여받았다. 또한 2006년엔 아버지 정 명예회장으로부터 840,000주(당시 시가기준 3914억4000만 원)를 증여 받아 2007년 증여세로 377,400주(당시 시가 기준 2000억2200만 원)를 물납했다. 이로써 정 부회장은 모친 이 회장에 이어 2대 주주로 자리를 굳혀 경영권 승계의 기본 작업은 마무리된 상태다.


삼성맨과 결혼한 이명희 회장


삼성그룹출신 인사들은 “고 이병철 회장은 늘 이명희 회장을 데리고 다녔다”고 회고한다. 이 창업주는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1년에 네 차례 정도 일본 도쿄를 방문했는데, 이때 항상 이인희 한솔고문과 이 회장이 동행했다.



1943년생인 이 회장은 이화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본부 이사로 경영수업을 시작해 80년 신세계백화점 상무로 승진한 뒤 무려 17년 동안 상무 직을 맡으며 경영 전반에 대한 안목을 키웠다. 그룹 회장이 된 것은 1998년이다. 이 회장은 이 창업주를 닮은 ‘통 큰’ 경영스타일로 유명하다. 주요 사안이나 인사에 대해서도 사후 보고를 받을 정도로 전문경영인을 믿고 맡겨 ‘통 큰’경영을 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이 회장은 1967년 정재은(75) 명예회장과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정 명예회장은 1977년 삼성전자 이사 재직 시 미국 HP사와 협력해 HP사업부를 시작한 데 이어 84년 삼성전자 사장시절에는 삼성 HP를 직접 설립했다. 현재의 삼성전자가 있게 한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전자공학, 산업공학 등을 전공해 이를 바탕으로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장인(이병철 창업주)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그는 이 창업주의 지시로 재일교포 2세 손정의(일본 소프트 뱅크 사장)를 만나기도 했다. 당시 손 사장을 만나고 특별한 느낌이 없었던 그는 후에 손 사장의 성공을 보고 이 창업주의 선견지명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의 부친 정상희는 3,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냈으며 삼성가와 인연을 맺은 뒤 삼성전자 사장, 삼성생명 사장 등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을 역임했다.


정 명예회장은 정상희의 차남이다. 정 명예회장의 맏형인 고 정재덕 신세계 고문은 경기고, 미국 노스이스트미주리주립대를 졸업하고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 건설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국제상사 사장, 연합철강 사장, 하나실업 회장 등을 지냈다. 고려대 출신인 동생 정재환(66)은 현재 삼성전기 글로벌혁신본부장 전무를 맡고 있다.


또 정 명예회장은 삼성전자에서의 경험을 살려 2007년부터 1년에 한차례 조선호텔에 부장급 간부들을 모아 놓고 신세계그룹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매년 강의를 해왔다. 2007년에는 가격혁명을, 2008년에는 글로벌 신세계를, 2009년에는 품질혁명을 주제로 강연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인사혁명과 책임혁명을 강조했다. 이 회장과 정 명예회장은 아들 정용진(47) 신세계 부회장과 딸 정유경(43) 신세계 부사장, 1남 1녀를 뒀다.


정 부회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동갑이다. 사촌지간인 두 사람은 경복고 동창으로, 서울대에 함께 입학하며 매우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정 부회장은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니다가 유학을 떠나 미국의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유학을 끝낸 정 부회장은 1994년 삼성물산 경영지원실에 입사, 95년 신세계로 자리를 옮긴 뒤 97년까지 신세계백화점 일본 도쿄사무소에서 근무했다. 그 후 신세계백화점 기획조정실 그룹 총괄담당 상무로 진급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식품과 패션분야에 조예가 깊고 사원들과도 격의 없이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부회장은 2006년 부회장에 올랐다. 1995년엔 미스코리아 출신 인기 탤런트 고현정과 결혼했다가 2004년에 이혼해 세간에 많은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고 씨와의 사이에 아들 해찬(16)과 딸 해인(15)을 뒀다. 정 부회장은 2011년 5월 대한항공 부사장이었던 고 한상범의 딸 한지희(36)와 재혼했다. 플루티스트인 한지희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예비학교를 거쳐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유학을 했다. 그는 지난달 말 서울의 한 병원에서 1남1녀의 이란성 쌍둥이를 출산했다. 이번 출산으로 정부회장은 2남 2녀의 자녀를 두게 됐다.


한편 정유경 부사장은 서울예술고, 이화여대 응용미술학과를 거쳐 미국 로드 아일랜드대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정 부회장의 동생인 정 부사장은 1996년 조선호텔 마케팅담당 임원이 된 뒤 2009년 신세계 부사장에 올랐다. 그는 호텔업계 최초로 비주얼 디자이너를 채용해 호텔 소품부터 리노베이션까지 비주얼 디자인 업무를 진두지휘했다.


영국 사라 퍼거슨 전 왕세자비의 결혼 때 부케를 맡아 유명해진 꽃집 ‘제인파커’를 아시아 최초로 조선호텔에 들여오고, 신세계 백화점에 입점 시키며 꽃집의 명품 브랜드 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정 부사장은 2001년 3월 문성욱(43)과 결혼했다. 이를 두고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조현아 대한항공 기내식·객실승무본부장 등 경영수업 과정에서 뚜렷한 인상을 줬던 재벌가의 딸들이 평범한 집안의 남자와 결혼한다며 세간에 화제를 낳기도 했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으로 슬하에 장녀 서윤(13)과 차녀 서진(12)을 두고 있다. 문씨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았고 SK텔레콤 전략기획실을 거쳐 소프트뱅크 코리아의 자회사인 벤처스코리아에서 투자심사역(차장)을 지낸 뒤 2005년 신세계 I&C상무에 임명됐다. 2008년에 신세계I&C 전략사업본부 본부장 부사장으로 임명된 후 현재 이마트 해외사업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문 부사장은 엘리트 코스를 밟은 IT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어 향후 그룹 내에서 큰 활약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부사장의 아버지 문 청은 아리랑TV 사업본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공익광고협의회 위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독특한 투톱 경영방식


“신세계가 삼성보다 더 삼성 같다”는 것이 재계의 평가다. 이명희 회장은 부친 이 창업주의 선견지명과 직관력이 소개된 한 일간지의 기사를 복사해 수첩에 넣어 두고 다닌다고 알려져 있다. 신세계 백화점 본사 회의실과 자신의 아들 정 부회장의 방에도 이 창업주의 초상화를 걸어 놓으며 늘 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 이명희 회장에게 아버지는 경영의 스승이자, 삶의 이정표인 셈이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라는 것이 이 회장의 평소 지론이다.


그래서 신세계의 독특한 정용진-구학서 투톱 체제가 이 창업주의 용인술, 즉 ‘疑人勿用 用人勿疑(믿지 못하면 아예 쓰지 말고, 일단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명희 회장이 오너이자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을 밀어주면서도 전문 경영인인 구 회장이 서포트와 경쟁을 하게끔 했다는 것이다.


이명희 회장이 구학서 회장을 부른 것은 1996년이었다. 당시 신세계가 가진 백화점은 서울 회현동 본점과 영등포점뿐이었다. 이때 구학서 회장(당시 경영지원실 전무)은 신세계에 입성하자마자 전국을 돌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들어설 만한 부동산을 대거 매입하는 등 공격경영에 매진했다. 이 회장은 당시 결재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구 회장의 성실성과 꼼꼼함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구 회장은 이명희 회장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구회장은 “10년 동안(1999년 12월~2009년 12월) 내가 내린 결정에 이 회장이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결과 구 회장은 이명희 회장을 도와 신세계를 국내 굴지의 유통업체로 키워 낼 수 있었다. 이 창업주로부터 전수받은 이명희 회장의 용인술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처럼 구학서란 전문경영인을 전격 등용하며 그룹의 극적인 성장을 이루었던 신세계는 2013년 12월 1일 ‘사업부문별 전문경영체제 도입’을 선언하며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신세계 전문경영체제의 진정한 목적이 오너 일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 비판을 받기도 한다. 지난 13년 2월 정 부회장이 등기이사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2013년 9월 10일 검찰은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운영했던 계열사 빵집인 신세계SVN을 부당 지원한 혐의로 이마트 허인철(53) 대표와 박모(49) 재무담당 상무, 신세계푸드 안모(53) 부사장 등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새로운 도약 준비 중인 정용진


정 부회장은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됐다. 또 2013년 12월 22일에 검찰은 신세계 이마트의 노조원 불법 사찰 및 노조설립 방해 의혹과 관련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다며 전·현직 임직원 5명을 기소했지만,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허인철 이마트 현 대표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 두 사건을 보면 책임은 전문경영인들이 지고 정 부회장은 책임을 면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정 부회장은 2013년 복합쇼핑몰 사업을 중점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지난 4월 경기 북부 최대 복합쇼핑센터인 신세계백화점 의정부점을 오픈했다. 또한 2015년 오픈 예정인 하남·대전·동대구·인천 청라지구 등의 복합쇼핑몰도 본격 추진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