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가 빚내서 지분 사고‥증여세 피했다?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전 국민에 충격을 가져다 준 원전비리 사건에서 ‘담합’하면서 과징금 3억1600만원을 부과 받은 ‘일진전기’ 지주사 일진그룹이 경영권 승계 과정을 두고 재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2세 경영의 ‘서막’이 열리고 있지만 계열사인 일진파트너스가 ‘빚’을 내서 오너 일가의 지분을 매입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지분 매각은 수십억원대에 이르는 증여세를 피하기 위함이라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일진그룹의 경영권 승계 자체가 도덕적 타격을 입게 됐다.

이에 <스페셜경제>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진그룹의 지배구조 변화에 대해 살펴봤다.


일진전기, 원전 케이블 담합‥3억1600만원 과징금
지주사 전환 앞두고 일진홀딩스 지분 전량 처분


일진그룹이 2세 경영을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진그룹이 2세 경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일진전기를 통해 블랙아웃 까지 우려될 정도로 극심한 전력난을 일으킨 원전비리 사태로 전 국민에게 피해를 끼치며 과징금을 부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계열사를 통해 대주주 지분을 매입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으로 제어케이블 교체 작업 중인 신고리 1~2호기 등이 연내 재가동이 불투명해지면서 전력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일진전기는 고배당을 일삼는 등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것.

‘일진전기’는 일진그룹 내 주력 계열사로 일진그룹은 현재 일진홀딩스 지주사로 전환했지만, 모태는 1982년 1월 21일 일진전기공업으로 출발했다.


일진전기는 다른 케이블 업체와 마찬가지로 ‘고배당’을 일삼아 논란이 됐다. 원전 비리 수사과정에서 담합 혐의가 드러난 8개 전선업체의 지난 5년간 대주주 일가 배당금이 8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난 것.

공정위는 지난 10월 LS전선을 비롯한 일진전기, 일진홀딩스 등이 한국수력원자력이 발전한 원자력발전소용 케이블 구매 입찰에서 미리 담합해 낙찰자를 정한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원전비리가 터지면서 세상에 알려진 이들 업체들은 공정위가 이들에 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기 전부터 이미 고배당을 일삼아 왔던 것.

지난 10월 20일 <재벌닷컴>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LS를 비롯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전선업체 8곳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감사보고서 기준으로 대주주 일가에 총 769억4천500만원의 배당금을 지급한 것으로 집계됐다.

5년간 총 접대비는 139억9천900만원, 기부금은 70억200만원이었다. 접대비로 기부금의 2배 이상을 사용한 셈이다. 일진홀딩스와 자회사 일진전기의 대주주 배당금 합계는 19억원선이었다.

이와 관련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블랙아웃’까지 우려될 정도로 극심한 전력난에 국민이 희생해 왔지만 담합 업체들은 오너 일가에 거액의 배당금을 안기고 많은 접대비를 사용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며 “‘나눠먹기’로 막대한 이익을 가져간 비리업체들의 비도덕성이 드러나는 대목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비판했다.


2세 경영 서막 올랐지만


일진그룹은 지난 11월 14일 분기보고서 제출 당시까지는 허정석 일진홀딩스 대표가 29.1%의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였으며 아버지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지분은 15.3%였다.

하지만 지난 11월 21일, 22일, 25일 공시를 통해 최대주주의 지분이 변경됐음을 공시했다.

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일진홀딩스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보유했던 회사 지분 15.3%를 일진파트너스에 전량 매각했다고 전날 공시했다.

일진파트너스는 허 회장의 장남인 허정석 일진홀딩스 대표이사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직접 보유한 지분에 일진파트너스 보유분을 합친 허정석 대표의 일진홀딩스 지분은 53.8%로 늘었으며, 허 회장 지분은 남지 않게 됐다.

업계에서는 일진전기·일진다이아몬드·일진디앤코·전주방송 지주사인 일진홀딩스의 경영권 승계 가 사실상 마무리 됐다는 평가다.

허 회장은 지난 2006년부터 장남 허정석 일진홀딩스 대표이사, 차남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이사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작업을 벌여왔다.

특히 이번 지분 변동을 통해 장남에 대한 승계는 마무리 됐으며 곧 차남에 대한 승계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허 회장은 일진홀딩스에 대한 지분은 모두 정리했지만 일진머티리얼즈를 비롯해 일진디스플레이, 일진제강, 일진유니스코, 일진반도체, 일진LED 등 나머지 계열사에 대한 지분은 여전히 보유하고 있기 때문.

이에 따라 조만간 차남에 대한 경영권 및 지분 승계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분 승계와 관련 일진그룹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미 예전부터 책임경영 차원에서 허 대표에게 힘을 실어준 바 있지만 본격적인 2세 경영은 아니다”라며 “일진홀딩스 계열사에 대해 책임 경영을 하는 것뿐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떠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일진파트너스 ‘14억’ 현금으로 173억 지분 매입?
장남 허정석 일진홀딩스 대표 전면부각‥2세 승계


일진파트너스 주식 매입 어떻게?


일진파트너스는 지난 21일 시간 외 매매 방식으로 주당 2300원에 허 회장의 주식 7,535,897(15.3%)를 매입했다고 공시했다. 주당 2300원씩 계산해봤을 때 일진파트너스가 매입한 주식 금액은 173억3256만3100원이다.

문제는 일진파트너스가 허 회장의 아들인 허정석 대표가 100% 지분을 가진 회사이며, 이 회사가 실질적으로 이러한 금액이 있었는지 여부다. 재계 일각에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꼼수’라고 꼬집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진파트너스는 지난 2011년 90억원을 2011년에는 135억5000만원의 매출액을 거뒀다. 2011년 3억원대의 영업이익은 2012년 들어 8억원대로 올랐다. 배당금 수익만 2억3000만원대다. 영업이익의 4분의 1이 배당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실 일진파트너스의 매출액은 모두 ‘안방’인 일진전기에서 나온다.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로 전대미문의 원전비리를 불러일으킨 일진전기에서 벌어들인 돈이 오너 일가의 소유인 일진파트너스로 흘러들어갔고 일진파트너스는 또 다시 오너 일가의 지분을 인수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진파트너스는 2012년 12억원의 현금을 보유, 현재 재무제표 상 14억원을 소유했다고 보고했는데 허 회장의 주식은 173억원대에 이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매입했는지가 의문이라는 것.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허 대표 개인이 아닌 계열사에 팔아 세율이 50%에 달하는 상속, 증여세를 피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특히 내년 상속‧증여세법이 강화되는 것을 감안한 선제적 조치라는 논란도 피해갈 수 없어 보인다.

이와 관련 일진그룹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여러 가지 재무적인 방법 중 ‘최선’을 선택한 것뿐”이라며 “그 이외의 시각(상속‧증여 회피)에 대해서는 보는 사람 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룹 입장에서는 여러 방법 중 최선을 골랐다는 데 이견이 없다”고 답변했다.


못 받는 상속‧증여세 ‘폭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지난 10월 13일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2012년 상속·증여세를 결손처분한 규모는 총 2만5243건, 1조9억원으로 집계됐다.

2008년 상속·증여세 징수액 2조7771억원의 1.8%만 결손처분 됐던 것에 비해 2011년에는 징수액의 11.5%, 2012년에는 8.63% 결손처분됐다.

박 의원은 “부의 무상이전에 대한 세금인 상속·증여세를 돈이 없다는 이유로 못 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며 “최근 상속·증여세 결손처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과세당국의 세원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4년도 상속·증여세 목표치를 높게 잡으며 연간 5조원대에 육박하는 세수를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27년 전 미국에서 기업가 정신을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EY최우수기업가상을 수상하기도 한 허진규 회장의 행보에 대해 의문이 들고 있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