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300조원 돌파…명불허전(名不虛傳) 한국 간판기업 우뚝


한국 경제의 대들보 역할을 담당하며 국내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진 대기업 집단 재벌가. 이들은 서로 혼맥과 인맥을 통해 더 높은 권력을 누리기도 하고 서로를 잡아주고 끌어당기는 역할을 하면서 거대한 울타리를 형성했다.
한국 경제사의 이면에 숨어있는 그들만의 혼맥을 통해 재벌의 형성과 교착의 끈이 한국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 지를 <스페셜 경제>가 창간 5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의 대표적 재벌가의 혼맥과 경영 승계 과정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스페셜경제=황병준 기자]삼성그룹이 지난해 매출 300조원을 돌파했다. 그룹의 총 매출액은 302조9000억원으로 전년 274조3000억원보다 10.4% 증가하며 국내 최대기업의 위용을 과시했다. 삼성그룹은 지난 2008년 191조원의 매출로 200조원에 미치지 못했으나 2009년 220조원, 2010년 254조원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故이병철 창업주가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로 시작해 1951년 삼성물산, 1953년 제일제당, 1954년 제일모직을 탄생시키면서 국내 굴지 기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삼성은 규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관계의 혼맥을 통해서도 ‘대한민국 1등’을 자부하고 있다.


그들의 혼맥을 통해 재벌기업과의 교류를 넓히고 관계에 끈을 늘려 어떻게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제계의 기둥으로 성장했는지 <스페셜경제>가 정관계 혼맥을 통해 삼성의 역사를 살펴봤다.


1910년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경주 이씨의 문종 이찬우씨와 안동 권씨 가문의 권재림 여사 사이에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난 이 아이는 장차 대한민국 경제의 한 획을 긋는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삼성을 창업한 호암 이병철.


▲호암 이병철.


이 창업주는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면서 삼성그룹의 시작을 알렸다. 1941년 삼성상회를 주식회사로 개편, 청과류와 어물 등을 중국에 수출했다. 1948년 삼성물산공사를 창설 무역업을 시작하였으며 1953년 제일제당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54년 제일모직을 만들었다.


그 뒤 동방생명·신세계백화점·안국화재보험·전주제지·성균관대학교 등을 인수, 경영했고, 중앙개발·고려병원·한국비료·삼성전자·제일합섬·삼성중공업·동양방송·중앙일보사 등을 창설, 운영했으며, 삼성문화재단·삼성사회복지재단 등을 설립하여 이사장에 취임하는 등 많은 회사를 설립, 인수 또는 합병하여 재벌기업을 형성했다.


이 창업주는 1929년 박두을 여사와 혼인을 하고 슬하에 3남 5녀을 낳았다. 이들 모두는 삼성家를 바탕으로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커다란 축을 구성했다. 이 창업주는 삼성을 비롯해 신세계 그룹, 새한그룹, 한솔그룹, CJ그룹 등 내놓으라고 하는 그룹들을 자식에게 물려주면서 재계 신화를 이룩했다.


총수에 올랐지만 물러난 ‘이맹희’


한때 삼성그룹의 대권을 물려받았던 이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전 회장은 1958년 손영기 농림부 양정국장의 딸 손복남 여사와 결혼했다. 손영기씨는 이후 경기도지사를 역임했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손복남 여사의 동생이며,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이맹희씨와 손 여사의 큰 아들이다.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씨는 삼성그룹을 이어받을 가장 강력한 후계자이며 가문의 장남이었다.


▲장남 이맹희.


1966년 삼성그룹은 최대 위기를 맞는다. 바로 ‘사카린 밀수사건’이다. 동생인 이창희 당시 한국비료 상무가 구속되는가 하면 국내외 언론은 ‘삼성이 밀수를 주도했다’며 연일 맹폭을 가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치닫자 청와대마저 삼성의 등을 돌렸다.
이병철 회장은 1966년 10월22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비료 공장을 완공해 국가에 헌납하고 나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라고 발표했다.


이병철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그룹 회장직을 맡아 삼성그룹을 총지휘했다. 그 이듬해 이맹희씨는 36세에 삼성그룹 총수에 올랐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69년 청와대 투서 사건이 터졌다. 이창희씨는 미국으로 떠나야 했고, 이맹희씨는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병철 회장은 경영 복귀를 꾀했다.


1973년 이맹희씨가 지닌 계열사 임원 직함 17개 가운데 삼성물산·삼성전자·제일제당 부사장 직함 3개만 남기고 모두 회수 당했다. 이맹희씨는 노골적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이에 이병철 회장은 이맹희씨 그룹에서 퇴출시키는 특단의 카드를 내밀었다.


이맹희씨의 큰아들 이재현 회장은 고려대 법대출신으로 씨티은행에 입사했지만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기라고 지시했다.


93년 이재현 회장은 제일제당(CJ)을 중심으로 삼성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이건희 회장의 오른팔이었던 이학수 사장을 제일제당 대표이사로 발령 내면서 삼성과 CJ의 감정이 수면위로 부상했다. 이른바 ‘이학수 파동’이라 불리던 사건은 이학수씨가 한 달만에 제일제당을 떠나면서 끝났지만 갈등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후 이재현 회장의 이웃집에 삼성이 CCTV를 설치한 것을 두고 노골적인 비방전이 오고 가는 등 두 그룹의 갈등은 그치질 않았다.


하지만 이재현 회장은 창업주의 장자로 97년 이병철 회장 장례식에서 영정을 들고 앞장선 사람이 이재현 회장으로 그의 위치가 작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이맹희씨는 모두 2남1녀의 자녀를 두었지만 평범한 집안의 사위와 며느리를 맞았다. 이미경 CJ그룹 E&M 총괄 부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재환 CJ그룹 상무 등을 슬하에 두고 있다.


비운의 황태자 ‘이창희’


이병철 창업주의 차남 이창희씨는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시절 만난 일본인 여성 나카네 히로미(이영자)씨와 결혼했다. 이영자여사의 부친은 일본 미츠이물산의 중역으로 일했던 나카네 쇼지씨로 알려졌다.


이창희씨는 삼성그룹의 비운의 왕태자로 유명하다. 이창희씨는 한국비료사건(사카린밀수사건)의 책임을 지고 감옥까지 다녀왔지만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 여자와 결혼하면서부터 점차 서열경쟁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73년 설립한 마그네틱미디어코리아사와 1977년 인수한 특수세라믹사를 통합해 새한미디어를 설립, 독자 운영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백혈병으로 1991년 미국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


삼성그룹 대권 이어받은 이건희…다음 대권은 누구에게(?)


한솔에서 CJ까지 대기업 포진…정관계 환상의 혼맥 과시


이후 부인 이영자 여사가 새한그룹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장남 이재관씨가 경영에 참여했다. 그러나 부회장까지 오르면서 새한그룹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이재관씨가 분식회계를 통해 1000억원대 불법대출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우여곡절 끝에 이영자 여사도 경영에서 물러났다.


장남 이재관씨는 동방그룹 김용대 회장의 딸 김희정씨와 결혼했고, 3남 이재원씨는 김일우 서영주정 사장의 딸과 결혼했다. 막내딸 해진씨도 조내벽 전 라이프그룹 회장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차남 이재찬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인 최선희씨와 결혼했으나 이후 이혼하고 지난 2010년 생활고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형들을 제치고 삼성그룹을 승계받은 이병철 창업주의 삼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장관을 거친 홍진기씨의 장녀 홍라희 여사와 1976년 결혼했다.


왕권 잡은 삼남 이건희

홍진기씨 집안은 노신영 전 국무총리와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 등과도 사돈을 맺고 있다. 이건희의 처남으로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홍석조 보광훼미리마트 회장, 홍석준 보광창업투자 회장, 홍석규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보광그룹 회장 등이 있다.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여사 사이에는 재용, 부진, 서현, 윤형 등 1남 3녀를 두고 있다. 삼성그룹의 3세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복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거쳐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대학원 석사, 하버드대학교경영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 사장은 91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 사장은 98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 임세령씨와 결혼해 1남1녀를 두었다. 당시 제계에서는 ‘미원-미풍 전쟁’을 벌이던 삼성家와 대상家의 혼사가 큰 이슈로 작용했다.


삼성과 대상의 어색한 ‘혼맥’


세령씨가 대학생의 신분으로 빠른 결혼과 영호남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임씨의 어머니 박현주 여사는 금호그룹 박삼구 회장의 여동생이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2009년 각자 서로의 길을 갔다.


이건희 회장의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99년 삼성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 임우재씨와 결혼해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이후 임씨는 삼성전기의 기획팀 상무와 전무를 거쳐 2011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은 미국 뉴욕 패션전문학교 파슨스 출신으로 지난 2000년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재열씨와 결혼했다. 재열씨는 제일모직에서 상무와 전무, 부사장을 거쳐 2011년 말 제일모직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


막내 고 이윤형씨는 이화여대 불문과 재학 중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2005년 비운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故 이병철 회장의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고려병원(현 삼성강북병원)원장을 지낸 조운해씨와 결혼했다. 이 고문은 지난 91년 삼성에서 분리돼 92년 한솔그룹으로 이름을 바꾸고 출발했다. 이 고문의 장남인 조동혁 명예 회장에 이어 현재 3남인 조동길 회장이 그룹 경영을 맡고 있다. 차남 조동만 전 한솔PCS 회장은 PCS 사업매각과 관련해 비리에 얽히기도 했다.


지난 2012년 4월 조동길 회장의 장녀 나영씨가 한상호 김앤장 변호사의 장남 경록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병철 창업주의 차녀 이숙희 여사는 LG그룹의 구인회 창업주의 3남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결혼했다. 당시 한국 제계의 큰 기둥인 삼성그룹과 LG그룹이 사돈을 맺는 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장남 구본성 전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장은할부’ 심재석 회장의 딸인 심윤보씨와 결혼했다. 장녀 구미현씨는 이문호 연암대학 총장 아들인 이영열씨와 혼인했다. 차녀 구명진씨는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사장과 결혼했다.


이병철 회장의 삼녀 이순희 여사는 김규 전 서강대교수와 혼인했다. 사녀 이덕희씨는 이종기 전 삼성화재 회장과 혼인했다. 마산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온 이종기 회장은 중앙일보 부회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쳐 삼성화재 회장을 맡았다가 은퇴했다.


이병철 회장의 오녀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4·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 및 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 의원의 차남 정재은 회장과 결혼했다. 정재은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공부한 엘리트였다.


이명희 회장은 이화여고와 이화여대 생활미술학을 전공했으며,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담당 이사를 시작으로 1998년 신세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아들 정용진 신세계그룹 대표이사 부회장은 경복고와 브라운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탤런트 고현정과 결혼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2003년 끝내 파경을 맞았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플루티스트 한지희와 재혼해 다시한 번 호사가의 입에 올랐다. 한지희씨의 아버지 한상범씨는 대한항공그룹구조조정실 부사장을 지냈다.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은 문성욱 신세계I&C부사장과 결혼했다.


이병철 창업주는 박두을 여사와 3남5녀의 자식들 이외에 일본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이태휘씨와 이혜자씨가 있지만 이들 모두 일본인과 결혼해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삼성은 최근 지주사격인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의 패션사업부문을 인수하고, 삼성SDS가 삼성 SNS를 인수하는 등 경영권 승계를 위한 계열사간 사업구조 재편이 이뤄지고 있어 재계에서는 3남매간 계열분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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