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애플에 대한 사랑은 유별날 정도였다. 아이패드가 출시되자마자 미국에서 직접 주문해 사용했었고 전 직원에게 통신비를 대주면서까지 아이폰 사용을 적극 권장했다. 집과 사무실에 아이맥, 맥북, 아이패드 등 애플에서 자랑하는 첨단 IT기기들이 꽉꽉 들어찼다.


맥킨토시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인 ‘아이무비’와 ‘파이널 컷 프로 X’를 처음 접한 후 받은 신선한 충격은 12년 전 처음으로 컴퓨터를 배우고 홈페이지를 만들 때의 충격에 맞먹는 것이었다. 애플이 시장에 속속 내놓고 있는 것들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친구와도 같은 존재라 항상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12일 공개된 애플사 아이폰5 구매를 포기하고, 삼성에서 출시한 갤럭시노트2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으로 삼성전자에서 만든 핸드폰에 관심이 가지게 됐다. 불과 3년 전에는 애플과는 비교도 안되는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던 삼성이 잇단 갤럭시 시리즈 출시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대등한 수준의 반열에 올라 진정 글로벌 강자로 등극한 것이다.


80년대 말 당시만 해도 필자는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 콜라도 마시지 않는 반미주의자였고 그래서 카투사로 미군부대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불편하고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한번은 훈련지에서 하루에 보초를 두 번이나 선 적이 있는데, 부당한 처우를 안 미군 하사관이 다음날 필자의 근무를 빼주고 부당하게 보초를 세운 부하 병사를 크게 나무랐다. 하지만 이 병사가 잘못을 뉘우칠 기색이 보이지 않자 이 하사관은 폭력을 사용했다.


당시 군인신분이었던 필자는 철저한 상명하복의 관계인 군대에서 평소 카투사 상관을 무시하는 백인 병사와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당시에 백인 중대장은 이 두사람 모두를 호출해 명령 불복종한 미군 병사와 정당한 처벌이 아닌 무력을 행사한 카투사 상관 모두에게 구두로 훈계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당시 놀라웠던 점은 카투사 상관의 물리력 행사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미군들이 필자에게 잘했다고 추켜세우며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분란을 일으킨 백인 병사가 신임을 잃어 일어난 해프닝이었지만 아무튼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인 필자에게 보내준 호의는 이후에도 미국의 ‘보편타당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달은 바가 컸다. 제대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유학과 여행, 출장을 다니면서 미국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 합리성, 인류애 등의 가치에 대해서 깨닫게 되었고 필자는 무조건적인 ‘반미’보다는 오히려 친미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세기의 재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애플 VS 삼성의 특허 전쟁에 대한 미국 내 배심원의 판결은 가히 충격적이다. 애플 입장에서야 가장 강력한 라이벌 제압용으로 특허 소송을 제기했다 하더라도 아무리 홈 코트라고 해도 너무 일방적인 ‘극단적 보수주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양적변화는 질적 변화를 가져 온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과학적 명제만 보더라도 양적 우위에선 삼성이 질적 우위의 애플사를 조만간 압도하리란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이번 예비판정은 그 시기를 현저하게 앞당길 것이다. 이 판결로 배수의 진을 치게 된 삼성은 ‘패스트팔로워’에서 ‘퍼스트무버’로 변신하게 될 것이며, 앞으로 출시될 갤럭시4, 겔럭시노트3 등 후속모델은 특허 논쟁에 휘말릴 건덕지가 없는 혁신적인 제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케팅의 중요한 전략중 하나는 일등과 비교하는 것이다. 어떤 브랜드이건 일등이 점유하는 제품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때 그 브랜드 가치가 상승되는 이치이다. 예컨대 중하위권대에 있는 대학이 서울대와 끊임없이 비교된다면 그 대학의 브랜드는 상승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1등 브랜드인 아이폰이 2등 브랜드인 삼성을 물고 늘어지는 실수를 저질렀다. 알려진 바와 같이 특허소송으로 인한 장시간의 언론 노출은 삼성 브랜드에 반사이익을 줄 것이며, 이로 인한 가치 상승은 판결배상액 1조 2천억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소련의 몰락 이후 양강체제에서 미국 원톱시스템으로 힘의 균형이 바뀌었다. 미국이 사실상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큰 힘은 군사적, 경제적 힘이 아니라 보편타당성을 지향하는 미국의 가치일 것이다.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미국 대중문화의 전 세계적 확산은 경제대국인 중국이 미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가장 큰 힘의 원천인 것이다. 지금 한류가 아시아에서 출발해 전 세계적인 확산 기로에 있고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한류가 미국 대중문화와 동등해 지거나 앞설 수도 있지 않을까.


얼마 전 TV프로그램에서 강남스타일의 가수 싸이가 두 번째 입대를 앞두고 아내와 쌍둥이 딸을 두고 군대 가는 것이 가슴 아파 편법을 써서 공익으로 갈 것을 부인에게 제안하니 부인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싸이인데 정말 후지다”

삼성˙애플의 특허 전쟁은 수년간에 걸쳐서 진행될 것이며 어느 한편이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전에 삼성전자는 보르노TV과 같은 혁신적인 스마트폰을 출시할 것이고 애플과의 차이를 더욱 벌릴 것이다. 이번 배심원의 판결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국인데 정말 실망이다”


한류연구소장 한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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