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설계한 큰 그림…‘반대를 위한 반대’

패스트트랙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소집된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 의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3월 임시국회가 열린지도 어느덧 보름이 흘렀다. 여야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오는 와중에 최고의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단연 패스트트랙이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은 내년도 총선에 대비해 선거제 개편안에 가까스로 합의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선거법 개정 뿐 아니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형사소송법·검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다는 내용 또한 포함하고 있다.


일찍이 지난해 12월 유치원3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사립학교법 개정안) 역시 여야4당이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지만 이는 사립유치원 운영비리 근절과 회계투명화, 즉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는 3개 법안의 일괄처리로 이번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패스트트랙 드라이브를 좌파독재 장기집권 플랜이라 단정하며 여야4당 공조를 강력히 규탄해왔다. 뿐만 아니라 바른미래당 내부에서도 여전히 당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언뜻 보기에도 선거제 개혁과 공수처·검경수사권 조정은 연관성이 떨어져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왜 이 법안들을 일괄적으로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를 바라고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은 극구 반대하는 건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바른미래당으로 하여금 당론에 거스르도록 하는 걸까? 무엇이 바른미래당으로 하여금 지도부에게 반기를 들게 하는 걸까? 왜 민주당은 관련 없어 보이는 법안들을 일괄처리 하려 하는 걸까?


현재 벌어지는 여야4당과 한국당의 패스트트랙 논란과 관련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점을 눈여겨봐야 하며 여야가 말하지 않는 속내가 무엇인지에 대해 <스페셜경제>가 짚어봤다.



논란의 시작…선거제 개편안과 개혁법안 패스트트랙



■ 패스트트랙이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은 여야가 2012년 국회선진화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시 새누리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대표발의 해 여야 합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도입됐다.


이에 따라 국회는 표류중인 법안을 소관 상임위원 5분의 3 이상의 발의를 통해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부의 60일을 거쳐 최장 330일 뒤 본회의에 상정시킬 수 있다. 이 330일은 사실상 본회의 상정 전까지의 카운트다운이나 다름없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민주당은 선거제 개편을 위해 야3당과 이견을 조율해가며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을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여야가 현재 진통을 앓고 있는 것은 바로 이 패스트트랙 ‘패키지 지정’의 문제다. 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일단 여야4당의 선거제 개혁안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 논란의 시작, 선거제 개편안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


논란의 전제가 되는 선거제 개혁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를 말한다.


일찍이 야3당은 국회예산 동결을 전제로 △의원정수 30명 확대 △정당득표율에 100%비례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야3당이 주장하는 안은 민주당과 한국당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이에 따르면 다가오는 총선에서 양당의 의석 수 감소는 피할 수 없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때문에 민주당과 한국당은 이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국회에서 의석 수 확보는 곧 정당의 원내 영향력과 직결되는 만큼 야3당에게 있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금으로서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사안이다.


여야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나경원,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

민주당이 실제 원하는 것은 권력형 범죄 개혁 법안?



■ 민주당의 속내…선거제 개편은 ‘미끼’?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은 ‘민주당이 통과시키려 하는 검경수사권 분리와 공수처 법안을 선거제 개혁을 볼모로 잡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라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병국 의원은 지난 18일 KBS라디오프로그램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현재 정개특위에서 합의된 안을 보면 (민주당)지역구 28석을 줄여야 된다. 내 지역구가 없어지는데 거기에 동의할 의원이 어디 있겠느냐. (본회의 최종)표결할 때 부결될 수밖에 없는데 그걸 다른 여타 법안과 같이 패스트트랙을 태우겠다는 것은 꼼수”라 꼬집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 있다.


야3당이 주장하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의석 수 대비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민주당과 한국당은 의석 수 감소가 수반될 수 있다.


반면 의석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당 지지율이 높은 야3당은 추가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민주당이 선거제 개혁을 인질로 잡고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검경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법안 등을 선거제 개편과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면서 330일이 지나 본회의에 상정할 때, 자신들에게 불리한 선거제 개편안은 부결시킬 가능성이 있다.


즉 선거제를 저당 잡힌 채 여당이 원하는 법안만 통과시켜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민주당의 진짜 목적은 공수처·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의 통과다. 이는 선거제 개편안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당의 거센 반대로 인해 단독으로 이를 통과시키기는 어렵다 판단, 야3당과의 연대를 통해 이를 선거제 개편안에 얹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겠다는 셈인 것이다. 이에 따라 패스트트랙 일괄지정은 야3당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임이 분명해 보인다.



검찰개혁과 한국당의 조준점



■ 왜 공수처·검경수사권조정인가


그렇다면 민주당이 공수처 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 법안에 적극적이고 한국당이 극구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이 갖는 광범위한 권한의 폐해와 특검제도의 한계로부터 비롯된다.


대한민국 검사는 현행법상 범죄 혐의자에 대한 기소에 독점적인 권한(기소독점주의)을 가지며 기소 여부에 대해서도 재량(기소편의주의)을 갖는다. 재정신청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검사를 대신해 공소권을 갖지 못하고, 기소 여부 자체도 검사 본인이 판단한다.


또 하나 검사의 권한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수사권이다.


형사소송법은 검사가 모든 수사에 대해 경찰을 지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검찰은 경찰이 이미 수사 중인 사건에 직접 개입하거나 검찰로 이첩할 것을 명령할 수도 있다.


기소와 수사라는 것이 형사절차에 적용되는 점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검사의 권한은 실로 막강한 것이다. 때문에 검찰은 뇌물수수·성상납 등 각종 비리문제에 단골소재로 등장해왔다.


이와 같은 문제로 정치권에서는 무소불위 종횡무진하는 검찰의 권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 반대를 위한 반대…한국당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한국당은 민주당이 야3당과 공조해 선거제 및 개혁법안들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을 ‘야합’, ‘입법부 쿠데타’, ‘좌파 장기집권 플랜’ 등으로 규정하고 총력 저지에 나섰다.


하지만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에 따르면 한국당은 한나라당 시절인 1998년에 이미 공수처 설치를 약속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이재오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수처 법안에는 김성태·이군현(의원직상실)·김영우·심재철 의원이 동참했고, 2017년 10월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수처 법안에는 박인숙·김세연·홍철호·이학재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모두 현직 한국당 의원들이다. 이에 민주당은 현재 한국당의 반대를 소위 ‘반대를 위한 반대’라 비판하고 있다.


이경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18일 논평을 통해 “폄하하고 왜곡할 수 있는 표현을 있는대로 끌어 모아 진흙탕 싸움질로 인기 좀 모아보겠다는 심산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비판에 대한 근거나 대안 제시 없이 권력이득을 위해 작동하는 ‘반대를 위한 반대’ 프레임 남용을 이제는 그만할 때”라 질책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버닝썬·김학의·장자연 사건 등 소수 특권층의 권력형 범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급부상하는 지금이 민주당으로서는 미뤄온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조정을 추진할 적기라 평가한다.


공수처 설치 및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한 리얼미터의 국민여론 조사 결과. 자료출처=리얼미터 홈페이지 캡처

한편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 1월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여론조사 찬성의견이 76.9%(신뢰수준 95% 표본오차 ±4.4%p)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지난 18일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한 국민여론조사 또한 52.0%(신뢰수준 95% 표본오차 ±4.4%p)가 찬성의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한국당의 반대가 내년 총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한다.


최근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5%p이내까지 좁혀졌는데 긍정적 여론이 압도적인 두 안이 민주당의 추진으로 통과되면 다시 격차가 벌어지게 되고 이는 내년 총선으로 직결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가 싸울 때 그 뒤에서는



■ 민주당과 한국당의 이면, 그 뒤에 또 가려진 것


민주당은 여전히 권력형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며 패스트트랙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고, 한국당 또한 여전히 패스트트랙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지도부에 맞서 내홍이 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패스트트랙에 반대를 표하는 한국당 의원들은 총사퇴까지 거론하며 맞서고,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탈당론까지 꺼내들었다.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나오든 당분간 국회는 팽팽한 신경전과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다툼의 그림자에 다시 가려진,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의 아우성에 대해 국회는 아직 말이 없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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