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홍찬영 기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지식재산 관리 자회사 ‘카이스트IP’가 삼성전자와 퀄컴이 ‘3차원 반도체 공정기술’을 지속적으로 침해했다며 미국 법원에 추가적인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미국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카이스트IP에 4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평결했지만 삼성전자와 퀄컴이 또 다른 제품으로 자사의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카이스트IP는 주장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카이스트 측 특허기술과 자사기술은 다른 것으로, 소송과정에서 적극 해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계와 과학계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 동부연방지법은 8일 “카이스트IP가 2월 14일 삼성전자·삼성전자 미국법인·삼성전자 DS부문 미주총괄·삼성오스틴반도체 등 삼성 5개 법인과 퀄컴 글로벌 트레이딩을 상대로 배심재판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카이스트IP가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특허기술은 ‘벌크핀펫(FinFET)’이다. 크기가 작아질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소비전력이 감소해 생산비용이 감소하는 것이 반도체의 특징이지만, 평면(2D)반도체에서는 전류가 한 곳으로만 흘러 20nm이하로 설계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벌크핀펫을 활용하면 전류를 세 방향으로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어 반도체 입체설계를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 기술은 서울대 이종호 교수가 원광대에 재직할 당시 카이스트와 합작으로 개발해 2003년 미국에 특허출원됐다. 현재는 카이스트IP가 지식재산권을 가지고 있다.


과학계 관계자는 “지난해 판결이 났는데 삼성전자가 추가적으로 특허를 침해해 생산하는 것으로 확인돼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안다”면서 “이 때문에 1차 소송에서 다루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도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한 것”이라 설명했다.


카이스트IP는 소장(訴狀)에서 “배심원단 평결에도 불구, 피고는 특허침해를 중단하지 않았다. 벌크핀펫 기술을 활용해 추가제품을 개발하고 상용화 했다”고 주장했다.


카이스트IP가 삼성전자에 특허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제품은 갤럭시S8, 갤럭시S9, 갤럭시노트8, 갤럭시노트9 등 스마트폰 제품군은 물론 5세대 이동통신 모뎀인 엑시노스5100, 운전자지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DDR4 D램 등이 포함됐다.


또한 퀄컴을 상대로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탑재되는 시스템온칩인 스냅드래곤 다수 제품이 포함됐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대상을 잡은 데는 미국 특허법 284조가 징벌적 배상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특허법 284조는 특허침해에 대해 고지를 받았거나 경영진이 이를 인지하고도 대응하지 않았을 경우 최대 3배 이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업계에서는 카이스트IP가 승소할 경우 배상액이 지난번 배상액인 4억 달러를 크게 웃돌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서 카이스트IP는 2016년 미국 텍사스 동부연방지법에 특허침해에 따른 사용료 지급을 요구하는 1차 소송을 제기하고, 배심원단은 2018년 카이스트IP의 손을 들어 삼성전자가 4억 달러를 지급하라고 평결했다.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못해 카이스트IP가 다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한편 텍사스동부연방지법은 특허권에 대해 관대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미국 내 특허소송 중 40%가 이 법원에 몰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특허권을 소유한 기관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이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셈인 것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슈퍼사이클 기간에 배상액을 노린 특허소송이 잦다. 경기가 꺾이고 있는데도 반도체 업체를 상대로 배상액을 노리는 소송들이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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