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칼날, 원료 만든 케미칼 윗선 향하나

최창원 SK디스커버리(옛 SK케미칼) 부회장


[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 재수사가 탄력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13일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로부터 가습기 살균제 원료를 납품 받아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를 만들고 애경산업에 납품한 하청업체 대표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하청업체 대표 구속을 전후로 원료 제조사인 SK케미칼과 판매사인 애경산업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갔다. 지금까지 기세로 보면 검찰의 칼날이 이쯤에서 적당히 멈출 것 같지 않다. 결국 검찰이 SK케미칼 등 윗선에 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하지 않겠는냐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유발한 핵심 원료 제조사인 SK케미칼은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원료가 가습기 살균제 제작에 쓰일 줄 몰랐다는 말로 책임을 모면해 왔다. 하지만 SK케미칼로부터 원료를 납품받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하청업체 관계자들이 줄줄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이러한 변명은 더 이상 효과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 “공소시효 문제 해소했다”…윗선 소환 등 고강도 수사 임박해


가습기 살균제 원료 유해성 집중 추궁…원료 공급 SK케미칼 정조준


지난 13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는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의 제조?납품업체인 필러물산 전 대표 A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공장장 B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필러물산은 SK케미칼의 하청업체로, CMIT(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 물질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가습기메이트를 만든 뒤 납품했고, 이를 애경산업이 받아 판매했다.


가습기메이트는 국내 최초로 ‘가습시살균제’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제품이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 당시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피해자를 냈지만 원료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피해왔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지난 2016년 SK케미칼 등 가습기메이트 관련 업체 경영진을 고발했지만 증거불충분 등으로 기소 중지됐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하청업체 관계자들이 기소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환경부 “유해성 입증 됐다”…검찰 수사 재개


검찰이 이번에 가습기 살균제 재수사에 나선 것은 환경부가 지난해 11월 이들 기업이 만든 살균제의 유해성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를 검찰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한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환경부는 SK케미칼과 애경이 제조?판매한 CMIT?MIT 함유 제품 단독 사용자에게서도 옥시 제품에 쓰인 독성물질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로 인한 피해자와 동일한 질환이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며 “해당 기업 제품 사용으로 인한 ‘폐 손상’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피해를 공식 인정한 만큼 SK케미칼과 애경도 그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당시 박 차관은 과거 동물실험에서 CMIT?MIT의 독성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전문가들은 실험에 사용된 쥐의 종(種) 특이성으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동물실험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고, 해당 물질의 독성이 사람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국감장에 증인으로 출석한 홍수종 서울아산병원 교수도 SK케미칼이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 원료도 ‘전형적인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연구결과는 한 달 뒤 검찰에 제출됐다. 이 시기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모임인 가습기 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습기넷)의 SK케미칼, 애경산업 등 전?현직 임원 14명에 대한 고발도 이어졌다. 가습기넷은 고발장을 제출하며 검찰의 재수사와 가해 기업의 사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공소시효 문제 해결”…가습기메이트 관계자 줄줄이 재판행


당시 SK케미컬 등에 대한 재고발이 이뤄지면서 가장 우려됐던 부분은 공소시효였다. 이들 기업 임직원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및 중과실 치사상 혐의가 적용되는데 이는 공소시효 7년에 해당한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피해 사례가 처음 나온 것이 2011년이라 시효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끝난 것으로 볼 수 있어서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애경산업에 과징금과 시정명령 처분을 내렸지만,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처분 시한이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조사를 시작한 후 5년 이내에 처분이 이뤄져야 한다.


공정위는 최초로 조사를 시작한 것은 2011년 10월이지만, 2013년 말까지 해당 제품이 판매됐으니 문제없다는 논리였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애경산업은 2011년 8월 해당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고 9월부터 제품을 회수했다”며 업체 편을 들었다.


동일한 논리를 대입하면,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과실치사 및 중과실 치사상 혐의 시효도 지난해 만료했다는 말이 된다. 처음 사망자가 나온 시점이 2011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피해자들은 마지막 사망자가 나온 2015년을 기준으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경우 공소시효는 2022년이 된다.


일단 검찰은 공소시효 적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실제로 이번에 구속기소가 이뤄진 것으로 봤을 때 영장법원도 공소시효가 남아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역시 “사망자가 발생한 때로부터 공소시효가 계산되는 것은 다툼이 없다”는 의견이다.


형사소송법 253조에 따르면 공범이 기소되면 다른 공범의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공소시효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원료 공급한 SK케미칼 정조준


검찰이 가습기메이트를 제조?납품해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혐의로 필러물산 관계자를 재판에 넘겼지만, 이번 수사의 종착지는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과 김철 사장 등 윗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청업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발부했다는 것은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 있으며, CMIT?MIT 원료를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이 있다는 것을 법원이 상당 부분이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 수사가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이번 기소 결과를 놓고 김기태 가습기넷 공동운영위원장(변호사)은 “원료 물질인 CMIT·MIT 제조사인 SK케미칼과 필러물산의 공범 관계가 어느 정도 입증됐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들 업체가 살균제의 성분, 농도 등을 검사하고 관리하는 활동을 부실하게 했는지 조사 중이다. 아울러 납품업체에 하청을 줄 때 원료 물질에 대한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안전 검사는 제대로 이뤄졌는지, 제품에 화학물질 성분이나 인체 유해성을 제대로 표기했는지 집중적으로 따져볼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 사태 당시 신현우 전 옥시 대표 등은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 검증없이 안전하다는 허위 표시를 해 업무상 과실이 인정돼 1심에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충분한 검증을 해보지도 않고 막연히 살균제가 인체에 안전할 거라 믿었고, 심지어 제품 라벨에 ‘인체 안전’, ‘아이에게도 안심’이란 거짓 표시까지 했다”며 업무상 과실을 인정했다.


만약 SK케미칼의 경영진에 대해서도 동일한 혐의가 적용되면 비슷한 수준의 처벌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당시 가습기 살균제 원료 90%는 SK케미칼이 제조해 공급한 만큼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아서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유발한 원료 제조하고도 끝까지 책임 회피


사과 거부→검찰 수사→공식 사과…SK케미칼, 옥시 전철 밟나


모르쇠 일관…또 통할까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가 되는 PHMG와 CMIT?MIT의 국내 제조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도 가습기 살균제 사태 당시 처벌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1차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원료의 독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2차적으로 이들 원료가 가습기 살균제 제조에 쓰일 줄 몰랐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SK케미칼은 “환경부가 2000년 PHMG를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화학물질’로 관보에 개정 고시(관보 14497)한 것을 이유로 PHMG가 흡입독성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PHMG를 옥시 등의 제조사가 아닌 중간도매상에게 판매했기 때문에 그 물질이 가습기 살균제 용도로 쓰이는 줄도 전혀 몰랐다”는 말로 책임을 모면해 왔다.


그러나 가습기넷은 지난해 제출한 고발장에서 SK케미칼의 이러한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했다.


SK케미칼이 공급한 PHMG를 사용한 옥시 관련 소송 및 동물흡입실험을 통해 PHMG의 위해성과 흡입독성이 인정된 바 있고, 2003년 SK케미칼이 PHMG를 호주로 수입하기 위해 현지 정부에 제출한 문서에서 “PHMG가 흡입독성이 있고, 상온에서 분말 형태로 존재하는 PHMG가 비산되어 호흡기로 흡입될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작업장에서의 노동자는 보호 장비를 갖추고 작업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는 것을 비춰 봤을 때 SK케미칼이 이 물질의 유해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 가습기넷 측 주장이다.


SK케미칼이 화학물질 성분이나 위해성 여부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게재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표기된 안전보건정보 고찰 연구’ 결과에서 SK케미칼은 호흡기 흡입에 따른 독성과 주의 및 권고사항, 비상조치에 대한 정보를 표시하지 않은 점이 지적됐다.


SK케미칼은 독성이 확인된 원료로 살균제를 제조하면서도 독성학적 근거 없이 ‘안전’, ‘안심’, ‘무해’ 등의 문구를 표기한 셈이다.


아울러 검찰은 구속기소된 필러물산 관계자와 공범 관계인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에 얼마만큼 관여했는지도 집중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사과 미루다 봉변당한 옥시 전철 밟나?


검찰의 칼날이 윗선 목전까지 온 상황인데도 SK케미칼은 피해자에게 사과하거나 잘못을 인정하는 어떤 제스처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SK케미칼은 줄곧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해왔다.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잘못이 명백해질 때까지 사과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 당시 가습기 살균제 시장에서 54%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던 옥시의 대처를 떠올리게 한다.


최초 문제가 제기된 2011년 이후 옥시가 공식사과하기 까지 5년여가 걸렸다. 옥시는 이 기간 동안 법망을 피하기 위해 기존 법인을 해산하고 새롭게 설립하는가하면, 대학 연구팀에 살균제 유해성을 실험하는 연구용역을 맡기면서 연구결과 조작을 청탁한 사실이 발각돼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다.


검찰의 수사 압박과 여론의 집중포화를 견디지 못한 옥시는 결국 2016년 4월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고, 같은 달 검찰에 소환된 신현우 옥시 전 대표는 포토라인 앞에서 피해자들에게 거듭 사과했다.


한 달 뒤에는 아타 알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한국법인 대표가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지만, 그간 보여준 행태에 분노한 피해자 가족들에게 폭행당하는 등 수모를 겪어야 했다.


SK케미칼도 옥시처럼 불필요한 수모를 겪어야 할까? 가습기 살균제 원료를 독점적으로 제조한 제조사로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럴 필요 없다. 반면, 재판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책임을 외면한다면 옥시 사례는 반복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SK케미칼이 기억할 만한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지난해 12월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국민여론조사 결과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95.2%가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알고 있다고 답했고, 이중 69.7%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설문조사는 두 가지를 말해준다. 국민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분노도 여전하다는 점이다.


SK케미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수사 중인 상황이라 자세한 입장을 밝힐 수 없다”며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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