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은퇴일까, 논란 회피용 꼼수일까”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이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퇴임 의사를 밝히고 있다.


[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지난해 11월 깜짝 은퇴 발표를 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부친으로 부터 상속받은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한 사실이 검찰에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이 전 회장이 퇴진을 발표한 직후 검찰이 상속세 탈루 혐의로 수사에 들어가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전 회장이 62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재계에서 은퇴한 배경을 놓고, 검찰 수사를 의식한 결정이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했다.


검찰 수사로 상속세 탈루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이 전 회장은 퇴진을 발표하면서 “청년 창업가의 길을 걷겠다”고 했지만, 그룹에 대한 지배력이 여전히 공고한 상태라 아들인 이규호 전무에 대한 경영승계 작업 뿐 아니라, 경영 일선에 복귀 가능성도 여전히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아름다운 은퇴’로만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차명주식 보유로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는 이웅열 전 회장에 대해 스페셜경제가 추적해 봤다.



퇴진 직후 검찰 수사 착수상속세 탈루?차명주식 등 오명


상속세 탈루 혐의 벗었지만 189억원 규모 차명주식에 발목


“저보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한다. 특별하게 살아온 것을 부인하지 않겠지만 책임감도 컸다.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하다. 청년으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


지난해 11월 이웅열 코오롱 그룹 회장이 전격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열린 사내 포럼 ‘성공퍼즐세션’에 코오롱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였다.


이날 그는 “새로운 시대, 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그 도약을 이끌어 낼 변화를 위해 회사를 떠난다. 코오롱의 변화를 위해 앞장서 달려왔지만 그 한계를 느낀다”면서 “스스로 비켜야 진정으로 변화가 일어나겠다고 생각했다”는 말로 사퇴의 변을 전했다.


아직 혈기왕성한 나이 62세. 병상에 누워서까지 그룹 회장직을 놓지 않는 게 보편적인 국내 재벌계 모습에 비춰 봤을 때, 이웅열 회장의 자진 사퇴 선언은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이 됐다.


이웅열 전 회장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후 임직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그가 코오롱 회장직에 있으면서 사활을 결었던 퇴행성 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와 차세대 소재인 ‘투명폴리이미드’가 본격적으로 성과를 거두려는 시점에 내려진 결정이라 특히 그랬다.


그룹이 새로운 시대로 도약하려는 이때 ‘과거 인물’인 자신이 떠나야 한다는 자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코오롱그룹 회장직과 대표이사, 이사직도 그만두고 앞으로 그룹 경영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름다운 은퇴’로 불릴 만하다.


그러나 퇴진 발표 직후 이 전 회장에 대한 검찰의 상속세 탈루 협의 수사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의 퇴진에 대한 여론은 차갑게 식었다. 이번 자진 사퇴가 검찰 수사를 의식한 일종의 꼼수가 아닌가 하는 의혹에서다.


깜짝 은퇴와 절묘한 타이밍


이웅열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 정권에서 시작된 코오롱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4월 국세청은 코오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코오롱과 코오롱인더스트리, 이웅열 회장 자택과 집무실을 훑어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벌였다.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곳이 일반 세무조사를 맡는 조사 1?2국이 아니라 ‘특별세무조사’를 맡는 조사4국이라는 점에서 당시 코오롱에 대한 세무조사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었다.


국세청 조사4국은 기업의 비자금, 횡령, 탈세 등을 다루며, 특정 혐의를 인지한 경우에만 조사에 착수하기 때문이다. 당초 예정됐던 종료일을 앞두고 조사기간을 3개월이나 연장하는 등 이 세무조사의 강도는 이례적인 수준이었다.


때문에 당시 재계에서는 코오롱 그룹 오너일가의 비자금이나 상속세 등 조세 탈루가 포착된 것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다. 세무조사 자체가 이 전 회장을 비자금 조성이나 탈루혐의로 기소하려는 검찰의 기획수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조사를 마친 국세청은 코오롱인더스트리에 법인세 등 탈루세액 총 742억9000여만원의 추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의 조세법 위반 혐의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지진 못했다. 당시 코오롱이 미국 섬유회사 듀폰과 아라미드 소송에서 패소해 2조원에 달하는 배상금을 물게 되는 등 그룹의 위기 상황을 사정기관이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17년 5월 중순 경 국세청은 이 전 회장을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국세청 관계자는 “상속세 탈세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하면 해당 탈세뿐만 아니라 이 전 회장의 상속자금과 운용자금 전체를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 전 회장이 자진사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하다. 오너 신분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데다 자칫 구속으로 이어질 경우 그룹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있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결국 자진 사퇴를 포함한 이 모든 결정이 검찰의 선처를 바라는 제스처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코오롱 측은 이 전 회장의 퇴진과 검찰의 수사 소속이 맞물린 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코오롱 관계자는 “이 회장이 오래전부터 해오던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인데 시점이 묘하게 겹친 것일 뿐”이라며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는지조차 회사는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38만주 차명주식 소유 신고 안해


이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 소식이 알려지고 2개월여만에 그 결과가 드러났다. 검찰이 이 전 회장이 차명 주식 보유한 사실을 적발해 재판에 넘긴 것이다.


14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는 이날 자본시장법 및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 등으로 이 전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전 회장이 부친인 고(故)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남긴 주식을 차명으로 보유한 뒤 이를 신고하지 않는 등 숨기거나 허위로 신고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지난 2016년 코오롱그룹 계열사인 코오롱생명과학 주식 38만주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를 신고하지 않고, 거짓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주식은 이동찬 회장이 별세한 2014년 11월 8일 당시 주가 기준(주당 4만8450원)으로 184억원 가량이다.


2014년 9월 당시 이 전 회장은 코오롱생명과학 주식을 102만8000주(지분율 15.4%)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기존 보유주식의 37%에 해당하는 주식을 차명으로 상속받은 셈이다.


아울러 이 전 회장은 지난 2016년 상호출자 제한 기업 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할 당시 차명 주식을 본인 보유분에 포함시키지 않은 혐의(독점규제법 위반), 지난 2015년부터 다음해까지 양도소득세 납부 회피 목적으로 차명주식 4만주를 차명 상태로 유지해 매도한 혐의(금융실명법 위반)도 있다.


다만 앞서 제기된 조세 포탈을 함으로써 조세범처벌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처분했다. 조세포탈죄가 인정되려면 세금 회피뿐 아니라 적극적 은닉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인데, 이 전 회장의 경우는 차명재산을 상속받은 뒤 차명 상태를 단순히 유지한 경우임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또 법인세 포탈 혐의에 대해서도 이미 조세심판 과정에서 과세처분 자체가 취소된 점을 고려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 전 회장에 대한 불구속 기소 소식이 전해졌지만, 2년여 걸친 조사결과치고는 혐의가 무겁지 않다는 평이다. 한때 재계에서는 이 전 회장의 구속설이 나돌 정도로 분위기가 흉흉했는데, 거기에 비하면 차명주식 보유 정도는 쉽게 털어낼 만한 이슈라는 평이다.


실제로 코오롱 측은 세무조사 단계에서부터 차명주식 보유가 드러나면 처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다만 경영승계와 관련해 이 전 회장의 불법행위가 드러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전 회장이 퇴임 의사를 밝힌 직후 검찰의 수사 소식이 공개된 것도 단순히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타이밍이 절묘했다. 불법행위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스스로 물러났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와 관련해 코오롱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웅열 전 회장님이 사퇴한 상황이고, 저희로서는 따로 전달받은 사항이 없어서 공식적으로 내놓을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 이 전 회장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재판 결과다. 재판 결과에 따라 향후 운신의 폭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다짐한 창업과 미뤄둔 경영승계도 그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청년 창업가 길 걷겠다더니 지배력 굳건경영승계 이상무


스스로 택한 퇴임재판?창업?4세 경영승계 등 논란 없을까


오너 지배력 여전…아들 경영승계 시나리오는?



재계 30위권인 코오롱은 오너인 이 전 회장의 지배력이 견고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의 ㈜코오롱 지분율은 49.74%다. 특수관계인의 지분까지 포함하면 50%가 넘는다.


막강한 1대 주주로서, 사실상 코오롱은 그의 사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지분율이 4%,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지분이 5.3% 수준이라는 걸 감안하면 코오롱 그룹에 대한 이 전 회장의 지배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다른 재벌 그룹에 비해 경영권이 안정적이라서 조기 은퇴 선언도 가능했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코오롱 원앤온리타워


코오롱은 코오롱인더스트리, 코오롱생명과학, 코오롱글로벌, 코오롱에코원 등 핵심 계열사를 포함해 국내외 총 72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은퇴 이후에도 대주주로서 막강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 전 회장 퇴진 이후 공동대표였던 유석진 대표이사 단독 체제로 변경됐지만, 코오롱의 전문경영인체제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재계는 관측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이 퇴진과 동시에 자신의 장남인 이규호 코오롱 전략기획담당 상무를 전무 자리에 앉힘과 동시에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코오롱은 3세까지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고 있어 4세인 이 전무가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퇴임 당시 이 전무에 대해 “능력을 인정받아야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주식을 한 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그리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이 전무가 36세로 비교적 나이가 어리고, 임원에 오른 지 만 3년이 되지 않아 경영수업이 더 필요하다는 점은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이 전무가 40세가 될 때쯤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 전 회장 자신도 40세가 되던 1995년 코오롱그룹 회장직을 맡은 전력이 있어서다. 이 전 회장이 금수저를 내려놓았다기 보다 아들 입에 물려줬다는 표현이 그래서 더 정확하다.


청년 창업가 이웅열…진정성 보일까


이 전 회장은 퇴임하면서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창업가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우선 검찰이 기소한 차명주식 재판부터 해결해야 겠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이 전 회장이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사업이냐,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꼼수냐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이 전 회장이 그룹 오너로서 거둔 실적을 따져봤을 때, 벤처적인 신사업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는 취임초기 때부터 ‘원앤온리(One & Only)’를 경영 철학으로 삼아 왔다.


원앤온리는 ‘하나뿐인 최고’라는 의미다. 이 전 회장은 원앤온리의 경영 신념에 따라 사업 다각화보다는 코오롱이 잘하는 하나에 더 집중했다. 그 때문에 코오롱은 원래 잘하던 사업인 섬유?화학?건설에서는 빛을 봤지만, 신사업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1999년 유통업에 진출해 설립한 코오롱마트는 2005년 GS그룹에 매각했고, 15년간 육성한 올레드(OLED)사업은 자본잠식에 빠지면서 2015년 최종 철수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일환으로 코오롱메트생명보험, 코오롱전자, 한국화낙, 신세기통신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이중 당시 국내 산업용로봇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했던 한국화낙과 SK텔레콤에 인수된 신세기통신 매각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뼈아픈 실책이다. 산업용 로봇과 통신 기술은 현재 4차 산업 혁명을 주도하는 사업으로 주목받고 있어서다.


이 전 회장은 창업 계획에 대해 “1년여간 공부한 뒤 모색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다만 일각에서는 코오롱 임직원에게 보낸 서신에서 언급한 4차 산업 혁명과 관련된 자율주행과 커넥티드카, 사물 인터넷 등 자동차와 연관된 창업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청년 창업가로서 이 전 회장이 어떤 사업을 할지는 그의 자유다. 그럼에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까닭은, 그가 택한 아름다운 은퇴에 스스로 오명을 남길까 봐서다. 이미 검찰의 수사와 기소로 은퇴 의미가 다소 퇴색한 상황에서 더욱 신중한 행보가 필요해 보인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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