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첫 번째로 검찰에 소환된 전직 대법원장이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마친 후 검찰 청사를 나서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수영 인턴기자] 사법농단 의혹의 온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오늘(23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 심사로 법원에 출석하는 것은 여지껏 전례가 없던 일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지난 2011년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의 재임기간 동안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이 조사한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사실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사건 재판 개입 △통합진보당 지방·국회의원 지위확인 행정소송 △차성안 판사 등 법관 사찰 및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 업무방해 사건 관련 헌법재판소 압력행사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사건 개입 △법원 공보관실 비자금 조성의혹 등 약 4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파악하고 있는 만큼, 청구한 구속영장 청구서 분량만 해도 260여 쪽에 달한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여부를 심사할 명재권 부장판사는 검사 출신 법관으로, 현재 사법농단 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한동훈 3차장검사와 연수원 동기이며 대법원이나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이력도 없어 양 전 대법원장과 거리가 먼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양 전 대법원장의 차량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자택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윗선’으로 평가되는 인물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처음으로 발부한 명재권 판사지만, 고영한 전 처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한 바 있어 이번에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지시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가치에 대항하는 반헌법적 중범죄로 보고 당시 최고 결정권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검찰조사가 없던 지난 12일, 17일에도 검찰에 출석해 꼼꼼하게 조서를 열람하며 방어논리 구축에 골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구속 심사에서 수사 최전선에 있는 특수부 부장검사들과 부부장검사들이 투입돼 강제징용 재판 등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증거·진술을 제시하는 동시에 그가 혐의를 전면 부인한다는 점을 들며 수사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잘 전달할 수 있는 검사들이 직접 구속의 필요성을 주장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맞서 양 전 대법원장은 ‘보고받거나 지시한 적 없다’ ‘대법원장 직무권한에 해당하지 않아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등의 논리를 들며 적극 방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 전 대법관의 구속 영장을 기각해 지난달 7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한편 오늘 구속심사에는 양 전 대법관과 함께 사법농단의 핵심 피의자로 지난 12월 구속영장(당시 임민성 부장판사)이 기각돼 구사일생한 바 있던 박병대 전 대법관 역시 같은 시간 허경호 부장판사의 심리로 또다시 심판대에 오를 예정이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지인 재판기록을 불법 확인한 혐의 등을 추가적으로 확인하고 보강수사를 거쳐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전 대법관 역시 양 전 대법원장처럼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어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받고 있는 혐의가 매우 중대한데다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만큼 이를 모두 확인해야 하는 구속심사에만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구속여부는 23일 자정께 혹은 24일 새벽 무렵 결정될 것으로 판단된다.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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