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한 기업의 오너가 기내에서 승무원을 상대로 막말을 하고, 라면을 수차례 다시 끓여오라고 하는 등 갑질을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라면 상무’와 ‘땅콩회항’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기내 갑질은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승무원을 상대로 막말과 외모 비하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셀트리온은 갑질이 아니라 소통 간 발생한 문제라고 즉각 해명했지만, 갑질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오너의 갑질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이미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는 상태기 때문이다.


비단 서 회장뿐만 아니라, 근래 들어 제약업계에서는 오너의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리베이트와 막말, 폭언 등 갑질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일각에서는 제약업계의 보수적인 기업 문화가 오너의 갑질 논란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제약업계의 오너 경영 체제는 확고하고 뿌리 깊다. R&D 투자가 중요한 제약 업계로서는 오너 중심의 경영 체제가 더 적합하다는 논리도 이에 한몫 거든다. 문제는 오너 경영체제가 ‘베네핏’뿐만 아니라 ‘리스크’가 될 여지도 크다는 점이다.


셀트리온은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들지만, 그룹 내 서 회장의 지배력이 막강해지면서 오너리스크도 덩달아 커지는 모습이다. 이번 ‘기내 갑질’로 이목이 쏠린 셀트리온의 오너리스크에 대해서 <스페셜 경제>가 살펴보기로 한다.


신약개발 등 코스닥 대장주…제약업계 “터질 게 터졌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제약사 오너리스크…구조적 문제일까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과 조선일보 손녀의 갑질 횡포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가운데 제약업계도 오너의 갑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다.


28일 일부 언론매체에 따르면 어린이종합영양제 노마골드로 유명한 삼아제약에서 오너 일가의 갑질 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보도에 따르면 삼아제약 허준 회장이 회장실에서 임원들에게 욕설과 폭언을 일삼았다.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떨이 등을 벽에 던지는 일도 있었다고.


허 회장과 함께 부친인 허억 명예회장의 갑질 의혹도 제기됐다. 그는 직원들이 업무 중 실수할 경우 경위서나 시말서가 아닌 반성문을 작성하게 하는 등, 모욕감을 줬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 삼아제약은 “욕설 등 갑질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며 일축했다.


제약업계에 반복되는 오너 갑질…체질 문제?


이처럼 제약업계에는 공공연히 오너의 갑질 이슈가 따라다녔다. 제약업계에서 오너의 갑질 이슈가 반복되는 원인은 특유의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 주요 제약사들의 업력은 60~100년에 달한다. 주요 제약사들 대부분은 부모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오너 2, 3세들이 경영하고 있다. 태생적으로 그릇된 오너십을 가지기 쉬운 구조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제왕적 문화와 거기에서 비롯된 내부 구성원 간 소통의 부재는 제약업계가 리스크 관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오너 중심의 수직적 조직문화 등으로 국내 제약사는 타 산업군보다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신약 개발 등 장기적 안목의 R&D 투자가 중요한데, 이는 전문 경영인 체제보다는 오너 경영 체제에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가 강화되고, 덩달아 오너 리스크가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


2002년에 설립돼 비교적 젊은 기업인 셀트리온이 제약바이오분야에서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오너 경영 체제하에서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지난 2013년~2017년 셀트리온이 보여준 평균 매출 성장률은 43%로 전통제약사들(6~12%)보다 3배 이상 높다. 그 배경에는 서 회장의 거침없는 추진력이 있다.


서 회장은 평소 거침없는 언사와 행동으로 유명하다. 업계에서 서 회장의 ‘기내 갑질’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비행기만 타면 ‘갑질’하는 오너들


JTBC는 20일 서 회장이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KE018편 일등석에 탑승해 기내 승무원을 상대로 폭언과 갑질을 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서 회장은 이날 이코노미석에 탄 직원들을 일등석 전용 바로 불렀는데 그 과정에서 여객기 사무장이 이코노미석 승객은 바에 들어갈 수 없다고 제지하자 그에게 막말 퍼부었다.


JTBC는 이같은 사실을 대한항공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 문건은 해당 사무장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날 서 회장이 말한 것으로 추정되는 발언이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서 회장은 약 50분간 사무장에게 “왕복 티켓값이 1500만원인데 니들이 값어치를 했는지 생각해봐”, “젊고 예쁜 애들도 없고 다들 경력이 있어 보이는데 고작 이런 식으로 이런 걸 문제화해서 말하는 거야”, “나는 이런 규정이 있는 비행기는 안 타면 그만이다”, “두고 봐, 연 매출 60억원을 날리는 거야”, “인사도 필요없으니 근처에 오지 마”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또 보고서는 서 회장이 승무원에게 라면을 주문하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3번 다시 끓이도록 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어때 니들? 내가 다시 라면 3바퀴 돌려봐?”라고 위협한 것으로 보고서에 쓰여 있다.


서 회장의 갑질 의혹이 제기된 당일 셀트리온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셀트리온은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다소 불편할 수 있는 대화가 오고 가기도 했으나, 보도된 승무원 리포트 내용과 다르게 폭언이나 막말, 비속어 사용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동승했던 셀트리온 직원의 증언을 인용해 “승무원들은 당사 임직원들과 항공사와 셀트리온의 기업문화가 서로 다름으로 인해 오해가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며 “원만한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이러한 논란이 야기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서 회장이 라면을 수차례 주문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회사측은 “저녁 식사 대용으로 라면을 한 차례 주문했으며, 취식 시 덜 익었음을 표현했고, 승무원이 먼저 제안해 한 차례 다시 라면을 제공받았다”고 해명했다. 재주문 요청은 물론 욕설과 외모 비하 발언도 없었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이번 갑질 의혹이 제기된 이유에 대해서 셀트리온은 “서 회장의 투박하고 진솔한 성격에서 비롯된 소통의 차이”라고 해명했다.


진실여부 논란? 관련 업계 “상당 부분 사실일 것”


셀트리온이 항공사 내부문건에 제기된 갑질 의혹들에 대해 대부분 부인하면서, 상황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 측은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라면서도, 내부 문서가 유출된 정황을 밝히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어서 갑질과 관련한 정확한 진실이 밝혀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항공업계에서는 내부 문서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당 문서는 ‘캐빈 리포트’로, 비행을 마친 후 객실본부에 보고하기 위해 사무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이 비행에 대한 전반적 내용을 기록하는 문서다. 사실상 업무일지에 해당하는 문서이므로 사무장이 허위로 작성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인사이트코리아의 보도에 따르면, 대한항공 직원은 “원래 비정상 상황이 발생하면 VOC(고객불만사항) 들어올 것도 예비해서 상황 발생 시각까지 세세하게 적게 돼 있다”며 “사무장이 허위로 적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한 개도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제약 업계에서도 갑질 의혹들이 상당부분 사실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본지>와의 취재에서 “서 회장이 평소에도 거친 표현을 쓰는 편이라 막말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 회장이 평소 언행이 거칠고 행동에 거침이 없어 외부에서 봤을 때 갑질로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 회장의 평소 언행이 어떠한지는 셀트리온의 해명에서도 확인되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셀트리온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업계 이야기들이 사실 공식적인 의견이라기보다 익명성을 담보한 발언이기 때문에 일일이 답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사실관계 파악이 되지 않은 내부문건의 내용만을 가지고 기사화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추가적인 입장 발표는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투박?진솔한 성격 탓이지’ 갑질 아니라는 셀트리온


입지전적 인물인 서 회장…오너리스크도 밀어붙여?


투박하고 진솔하게 밀어붙이기


서 회장은 올해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셀트리온그룹이 각종 위법과 오너 리스크, 편법 경영승계 등으로 얼룩진 국내 대기업들과 달리 선진경영을 보여주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경영자로서 서 회장의 이런 직설적인 태도가 결국 오너 리스크를 가져온 모양새다.


서 회장의 직설적인 태도가 문제가 된 것은 이번 기내 갑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 셀트리온그룹 계열사에서 남성 임원과 여성 신입사원 간 밤샘 술자리 강요 논란이 불거졌을 때, 서 회장이 전면에 나서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그런데 서 회장의 문제 해결 방식을 놓고 뒷말이 나왔다.


당시 아시아경제는 단독보도로 밤샘 술자리 전말을 가리는 과정에서 서 회장이 해당 여직원을 공개 석상에 불러 세워 전말을 증언토록 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피해자인 여직원이 수백명의 직원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2차 피해를 당한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서 회장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다는 이유로 해당 계열사 직원 200여명을 소집한 뒤 피해 여성을 연단에 나와 증언토록 했다. 피해 여성은 “회장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고, 안 하겠다고 할 선택권이 (제게)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날 조회에는 가해자 임원도 참석한 상태였다.


서 회장은 해당 여직원에게 “술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가?”, “어떠한 부분에서 수치심을 느꼈는가” 등을 구체적으로 답변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사실이 논란이 되자 셀트리온 측은 “(해당 사건을)비공개 처리를 해서 오히려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 취해진 조치”라는 해명을 내놓았지만, 피해자를 공개석상에 세워 2차 가해를 한 것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또한 앞서 셀트리온에서 강조한 서 회장의 ‘투박하고 진솔한 성격’에서 비롯된 일이 아닌가 유추해 볼 따름이다.


오너리스크, 공든 탑 무너진다?


서 회장이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삼성전기에서 일반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대우그룹에서 기획재무 고문으로 일했었고, IMF 외환위기 여파로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가 바이오산업이 유망하다는 판단에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을 창업했다.


서 회장은 이후 공격적인 투자와 전략으로 셀트리온을 글로벌 바이오 제약기업이자 코스닥 시가총액 상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으로 키웠다. 회사 성장에 서 회장의 직설적인 성격과 경영스타일이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너리스크를 걱정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현재 청와대의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서 회장의 갑질을 엄중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다수 올라와 있는 상태다. 오너의 갑질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여전히 무겁고 엄중하다.


그럼에도 셀트리온과 서 회장은 입장문 공개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갑질이 없었다는 입장이니 사과도 없다. 투박하고 진솔한 성격에도 잘못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오너리스크는 결코 다른 게 아니다. 공들여 쌓은 탑,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처럼 괴로운 일도 없다.


(사진제공=뉴시스, 셀트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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