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트 알바이라크 터키 재무장관

[스페셜경제=정의윤 인턴기자]터키 리라화가 또다시 급락했다. 거액의 대외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 날이 점차 가까워지면서 각종 경제 지표도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터키 수뇌부는 실질적인 해결책은 뒤로 한 채 타국에 손을 벌리기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마켓워치에 따르면 터키 리라화 가치는 28일부터 현재까지 11% 이상 떨어졌다. 리라화는 지난 10일과 13일 급락했다가 열흘 정도 안정세를 보였지만 다시 급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신용등급평가회사 무디스가 지난 28일 터키 금융기관 20곳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시켰다는 사실이 시장에 전해지면서 화폐 가치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30일 급락세는 현재 터키의 ‘경기 신뢰 지수’가 2009년 3월 이후 10여 년 만의 최저 수준인 83.9까지 추락했다는 소식에 터키중앙은행 부총재 에르칸 킬림지가 사임했다는 소식이 겹치면서 가속화 됐다. 시장은 당 지표가 취약해진 터키 경제의 현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킬림지 부총재 사임에 대해서는, 그가 정부와 금리를 놓고 다툼을 벌인 끝에 사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에 따라 이날 경제 안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신용부도스와프(CDS)’ 5년물 지수는 전일 대비 27bps 올라 최근 2주간 최고치였던 535bps에 육박했다. 수치가 오른 만큼 부채를 갚지 못할 위험이 커졌다고 풀이할 수 있다.


현재 터키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GDP 대비 과중한 외화부채 비율(53%)과 막대한 재정적자·경상수지적자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다. JP모건의 관련 문건에 따르면 현재 터키는 내년 7월 말까지 갚아야 하는 대외채무를 무려 1790억달러(약199조원) 규모로 떠안고 있는데 터키의 현 상황을 비추어 보면 이에 대한 만기를 연장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고 JP모건은 관측했다.


관련 문건에서 JP모건은 “해외 금융기관이 터키 위험을 줄이려고 할 것이므로 일부 터키 기관은 만기 연장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자금 흐름이 갑자기 끊기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만기 연장이 더 어려워지고 경상수지적자를 메우는 자금을 마련하는 것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렇듯 각종 경제지표가 불건전하다보니 리라화 가치는 올해에만 42%가량 떨어졌고 물가상승률은 15%로 치솟았다. 그러나 터키 정부는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는 금리 인상이나 IMF 구제금융 지원을 시도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터키는 자국에서 2년 넘게 억류하고 있는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의 석방 또한 거부하고 있다. 이에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참을성이 고갈되면 제재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은 터키가 목사 브런슨을 석방해야 제재 완화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안체 프라프케 애널리스트는 “(터키의) 통화 가치 하락을 초래한 문제들 중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터키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터키의 베라트 알바이라크 재무장관은 “미국의 경제 제재가 계속되면 난민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면서 유럽을 압박했다. 터키는 현재 350만명에 달하는 난민들을 수용하면서 유럽의 ‘난민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유럽이 터키를 경제적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난민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위협을 한 셈이었다.


이 위협은 실제로 효과를 거둬 현재 독일이 터키에 대한 금융 지원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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