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이현주 기자]터키 경제가 절벽에 내몰리며 전 세계가 ‘터키 쇼크’를 겪고 있다. 이에 더해 터키가 디폴트 선언을 할 것이라는 가능성마저 제기되면서 유럽연합과 신흥국들은 터키발(發) 금융위기에 휩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터키 쇼크’는 당연한 결과이며 이전부터 계속해서 붕괴조짐을 보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터키 중앙은행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키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2배로 높인다고 경고한 뒤 리라화 가치 폭락, 외국인 자금 유출 등 혼란에 빠진 터키가 끝내 디폴트를 선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문정희 KB증권 연구원은 “현재 터키의 상황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외환보유액이 큰 폭으로 감소한 반면 단기외채와 경상수지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이라며 “1년 내 상환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외채도 약 1806억달러에 달해 내년 상반기까지 예상되는 터키의 경상수지 적자를 감안한다면 최소 2600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터키사태의 예상 가능 시나리오로 ▲미국과의 빠른 협상 및 금리 인상 등을 통한 리라화 안정 ▲IMF 구제금융 프로그램 신청 ▲자본통제 및 외채 상환 연기 등 세 가지 가능성을 꼽았다.


그러면서 “두 번째, 세 번째 시나리오는 금융시장에 부담이다”라며 가장 긍정적인 시나리오로 첫 번째를 지목했으나 실현 가능성은 다소 낮게 내다봤다.


또한 “금융위기 발생에 따른 IMF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이 있으나 에르도안 대통령의 성향상 빠른 시일 내 단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연말까지 금융시장 변동성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렇듯 터키의 디폴트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터키에 대출을 많이 해준 유럽과 신흥국 역시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터키 경제가 ‘쇼크’를 맞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며 최근 수년간 터키 경제 곳곳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부상하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먼저 과도한 외화부채 비중이다. 지난해 터키의 경제성장률은 7.4%로 중국과 인도를 앞질렀다.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도 이에 버금가는 7.22%를 달성했다. 그러나 이 같은 높은 성장률을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외화부채였다.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터키의 외화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상회한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양적완화정책을 펼치는 동안 터키는 이를 활용해 저금리로 차입한 후 민간소비, 기업 설비투자 등을 높여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것이다.


심지어 터키 중앙은행은 제대로 된 통화정책을 펼치지 조차 않았다. 리라화 가치 폭락을 겪은 최근에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나서서 “금리는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부자를 더 부유하게 하는 착취 수단이기 때문에 최소한도로 유지돼야 한다”고 밀어붙이자 이에 순응해 실질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잃었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게다가 터키는 외환위기 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비상사태에 대비해 비축하고 있는 외화보유고도 매우 취약한 상태다.


리처드 브릭스 크레딧사이트 애널리스트는 “터키의 외환보유고는 1810억달러에 이르는 단기외채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라며 “특히 외환보유고 상당규모가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어 언제든 고객들이 인출할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 경우 터키 정부는 리라화 가치 폭락을 막기 위해 시장에서 달러를 매도하고 리라화를 사들이는 조치를 취하기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 조짐이 보일 경우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서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베라트 알바이라크 터키 재무장관은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대비책과 행동 계획이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른 시일 내에 은행과 금융당국을 통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알바이라크 장관은 터키 정부가 자본 통제, 외화 예금 계좌 동결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소문을 부인했으나 필요한 경우에는 정부 지출을 통제하는 재정 규칙을 시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터키 은행규제감독국(BDDK)은 자국 은행에 외국투자자와의 외화ㆍ리라화 스와프 거래, 현물ㆍ선물 외환거래 등 유사 스와프 거래를 은행 자본의 50%까지만 허용하고 각 은행별로 지급준비율을 250bp씩 낮춰 유동성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터키의 대응에도 시장에서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에릭 로버트슨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외환 및 금리담당 글로벌 대표는 “터키 재무부가 자본통제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는 만큼 기준금리 인상이 없다면 이날 내놓은 조치들은 ‘베이비 스텝’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며 우려했다.


아울러 “기준금리 정책이야말로 경제 위기를 방어할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이 될 것”이라며 “리라화 추락으로 인해 대규모 자본 이탈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외환시장에서의 조치 외에도 서둘러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터키 리스크’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터키와의 무역 규모가 약 1천800억달러(약 200조원)에 달하는 유럽의 경우 ‘터키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증시가 하락하고 있다. 특히 터키에 대출을 많이 해준 BBVA, 우니크레디트, BNP파리바 등 유럽 은행들은 주가 하락을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이밖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아르헨티나 페소화 등의 가치도 하락하면서 세계 증시가 일제히 하락했다.


우리나라 역시 이에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문정희 KB증권 연구원은 “만약 이번 사태가 터키 등 일부 지역 혹은 일부 통화의 단기 영향에 그친다면 원달러 환율은 현재 수준보다 1.7% 상승한 1155원이 다음 저항선이 될 것”이며 “과거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나 2014년 미국 연준의 테이퍼 텐트럼 불안 등과 같은 신흥국 시장 위험으로 확대된다면 환율은 현 수준보다 4.0% 상승한 1190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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