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一家 특집]영풍그룹, ‘비철금속→전자’ 사업 확장 절반의 성공…앞날은?②

선다혜 기자 / 기사승인 : 2018-05-18 16: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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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문고만 잘 알려졌지만’…국내 아연업계서 독보적 위치

장형진 회장, 사업 다각화 1순위 과업으로 삼아
‘오너3세 장세준’ 전자사업 올인 할 것으로 보여



[스페셜경제=선다혜 기자]‘영풍’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풍문고’를 떠올리기 쉽다. 국내 최대 3대 서점인 ‘영풍문고’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풍문고를 만든 ‘영풍그룹’은 실체는 국내 아연 시장점유율 80%를 넘는 최대 아연생산 기업이다. 다만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러한 영풍그룹은 20년전 장형진 회장이 취임한 뒤로는 비철사업에서 전자사업으로 확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가 취임한 뒤로 전자사업체들을 꾸준히 사들이면서 사업 다각화에 힘썼지만 아직 그 결과는 미비한 상황이다.

그리고 최근 영풍그룹 장 회장은 가지고 있던 영풍문고 지분을 모두 매각하면서, 오너 3세의 경영시대의 막을 올렸다. 재계에서는 영풍그룹의 장남인 장세준 부사장 역시 아버지를 따라서 ‘전자사업’에 올인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너 3세의 경영을 통해서 아직 자리잡지 못한 전자사업에 힘을 더 싣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국내 최대 아연 기업인 영풍그룹에 대해서 낱낱이 살펴보기로 했다.

故 장병희 명예회장 ‘국내 아연 산업’ 주도

영풍그룹의 모체인 영풍기업사는 지난 1949년 고(故) 장병희 명예회장과 고(故) 최기호 회장이 함께 설립했다. 영풍그룹 초기의 주요 사업은 농수산물과 철광석을 수출하는 무역업이었다. 그 와중 1960년대 초 국내 최대 아연광산으로 일제 미쓰비시가 세운 칠성광업사를 정부로부터 받아 연화광업소를 설립했다.

연화광업소 초기에는 아연광석을 채굴에 전량을 수출하고, 아연괴를 수입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서 아연광석은 수출하고 아연괴는 수입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경북 봉화에 아련제련소인 석포제련소를 세우고 비철금속 제련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설립한 석포제련소는 연간 아연괴 9천t, 황산 2만 2천t을 생산할 수 있는 국내 최대 단위 아련제련 공장이었다. 이후에는 1974년 경남 온산에 자매사인 고려아연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온산 아련제련소를 완공해 국내 아연시장의 공급을 주도한다.

1990년대 들어서 장 명예회장은 신규 사업진출을 통한 사업다각화를 모색하기 위해서영풍매뉴라이프생명 등을 설립해서 생명보험업에 진출했다. 또한 1992년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풍문고’를 종로구 서린동 종각4거리에 설립하면서 문화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사업변화’ 모색한 장형진 회장

고 장 명예회장이 잘 다듬어 놓은 ‘영풍그룹’에 장형진(72) 회장이 1980년대 경영전면에 나서면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비철금속 사업’ 위주에서 ‘전자사업’으로 확장됐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장 회장은 전자사업에 진출한 기업들을 잇달아서 인수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인수한 기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FPCB(연성인쇄회로기판)를 만들던 유원전자로지난 1995년에 인수했으며, 후에 유원전자는 2000년에 사명을 영풍전자로 바꿨다. 이어 2000년대 법정관리를 받던 반도체 패키지업체 시그네틱스를 인수하고, 2005년엔 PCB(인쇄회로기판) 업체 코리아써키트 지분 28%를 약 480억 원에 사들였다. 코리아서키트의 전자계열사 인터플렉스(FPCB)와 테라닉스(PCB)도 함께 영풍그룹에 편입됐다.

이러한 장 회장의 전자사업이 영풍그룹에 가져다 준 성과는 아직 미비하다. 전자기업들에 대한 M&A로 그룹 외형이 확대됐지만, 이 같은 전자계열사들이 뚜렷하게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면서 그룹 전체이익을 깎아먹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전자계열사들 별로 실적을 살펴보자면 인터플렉스는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917억원. 814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로인해서 인터플렉스는 지난 2005년 그룹에 편입된 뒤로 2016년까지 영업이익 합계 마이너스만 393억원이다.

장세준 부사장이 근무했던 코리아써키트는 인터플렉스에 비해서 약간 상황이 나은 정도다. 지난 2005년 매출이 5543억 원으로 2016년(5453억 원)으로 비슷하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엔 2000억 원대로 매출 줄기도 했었지만, 최근 6년 동안(2011~2016년) 영업이익 연속 흑자를 내면서 간신히 ‘골칫덩이’ 신세는 면한 상황이다.

장 회장은 ‘사업다각화’를 위해서 야심차게 전자사업으로 뛰어들었지만 20년 동안 뚜렷한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장 회장의 재임 시절의 전자사업은 ‘새로운 사업에서 외형을 확대심켰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후의 나머지 과제들은 오너3세의 몫이라고 보는 것이다.

장세준 부사장 ‘전자사업 성공’ 이끌까?

장 회장이 실질적인 경영권 유지를 위해 남겨뒀던 영풍문고 지분을 전분 매각함으로서 영풍그룹은 오너3세대를 개막하게 됐다. 이에 따라서 장남인 장세준(44) 부사장이 경영 전면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장 부사장에게 남겨진 가장 큰 과제는 부친인 장 회장이 마무리하지 못한 전자사업의 안정화다.


업계에서는 장 부사장의 시대 개막으로 인해서 영풍문고의 전자사업이 안정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실 장 회장의 경우는 비철사업을 하던 중 돌연 전자사업으로 뛰어들면서 사실 맨 땅에 헤딩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장 부사장은 경영수업 시작부터 ‘전자’를 선택했다.

지난 2009년 시그네틱스 전무로 입사해 경영수업을 시작했으며, 1년 뒤 2010년 영풍전자로 이동해 구매총괄을 맡았다 2013년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이후 2014년부턴 비상근으로 코리아써키트 이사직을 겸했고, 2016년 코리아써키트 공동대표(겸직)도 맡았다. 장 부사장은 지난해 말 영풍전자를 완전히 떠나서 코리아써키트에서 올해 3월 26일까지 근무했다.

장 부사장의 경우는 경영수업을 받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룹의 모태기업인 (주)영풍에는 몸 담았던 적이 없다. 오로지 ‘전자’사업에만 주력한 것이다. 이로 미뤄볼 때 영풍그룹이 ‘전자사업’의 성공을 얼마나 숙원하고 있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업계에서는 장 부사장의 앞으로의 경영행보에 따라서 전자사업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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