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계약직 근로자 인권 침해 심각…“비정규직은 쓰레기?”

서울교통공사 무기계약직 직원의 정규직화 시점이 보름 남짓 다가온 가운데, 정규직화 무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사안을 두고 끝없는 진통을 겪고 있다. 수차례에 걸친 노사 측 협의에도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공사 노사는 현재 ‘정규직 편입 방법’을 두고 크게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월부터 1455명의 무기계약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줄다리기 중이다.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7월 ‘노동존중특별시 2단계 실행계획’에 따라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에서 근무 중인 무기계약직을 내년 1월 1일부로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선 여전히 노사 간 큰 이견차로 사실상 내년 1월 이들의 정규직화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서울교통공사 한 비정규직 직원이 이 같은 정규직화 무산을 우려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최근 공사 내 근로자들 간 비방전이 난무하는 등 이른바 노노(勞勞) 갈등이 증폭되며 노사 협의의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공사 소속 무기계약직 직원들이 정규직 직원들로부터 원색적 비난과 인신공격에 시달린 끝에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한 것이다.


이는 앞서 서울시가 공언한 공사 정규직화 정책이 장기간 구체화되지 못한 데다 지난달 발생한 무기계약직 사망 사건으로 불거진 노노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은 점 등이 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공사 측은 심각한 직원 간 갈등에도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적극적 자세로 전향해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공사 내부 게시판 “인신비하 공격 글 다수”
서울시, 내년 1월 정규직 전환 방침 “사실상 표류”


지금까지 서울교통공사와 산하 3대 노조는 총 5차례에 걸쳐 정규직 전환 관련 노사 협의를 진행했다.


지난달 무기계약직 근로자 사망사건 발생 이후인 20일과 이달 4일까지 최근 잇단 교섭을 진행했으나 모두 결렬된 상태다. 핵심 쟁점인 ‘정규직 편입 방법’을 두고 노사 간 입장차가 큰 탓이다.


공사 측은 여전히 ‘근무기간 3년 경과자의 순차적 정규직 전환’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제3노조인 서울메트로노조 측은 사측 입장에 동의했으나 서울지하철노조와 서울도시철도노조의 경우 기존 약속대로 ‘내년 1월 1일 전원 정규직 전환’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최근인 지난 4일 진행된 노사 협의에서도 이 같은 의견차를 넘지 못하고 교섭 시작 30분 만에 파행으로 끝이 났다.


지지부진한 공사의 정규직화 작업에 지난달 무기계약직 근로자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기계약직 직원으로 구성된 서울교통공사 업무직협의체에 따르면 고인은 평소 정규직 전환 장기화에 걱정이 많았으며 근거 없는 인격모독 등 자신을 향한 정규직 직원들의 공격에 힘들어 했다.


이후 이들 무기계약직 직원은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정규직들로부터 ‘쓰레기’, ‘빨갱이’ 등 원색적인 비난 발언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공사 내부 온라인 게시판에는 무기계약직을 대상으로 한 정규직 직원들의 갖가지 비방 글이 어렵지 않게 발견됐다.


‘정의구현, 무임승차 놈들아’, ‘무임승차 무기업무직들은 XX야 된다’는 격한 발언부터 ‘빨갱이’나 ‘통합진보당 잔존세력’, ‘평양교통공사로 꺼지라’고 무기계약직을 공격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 공격 사실상 방조?…“현장 차별 분위기 만연”


또한 정규직은 ‘수십 년 간 메트로와 함께 한 노숙자랑 잡상인은 편입 안 시키느냐’, ‘폐급을 폐급이라고 부르지 못하느냐’ 등 무기계약직을 상대로 한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은 무기계약직 직원의 동료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고인이 평소 욕설과 모욕에 괴로워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업무직협의체 측은 “내부 게시판이 사회적 소수자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도록 방치한 것은 사용자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며 공사 측의 미온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진정의 피진정인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으로, 이들 무기계약직 직원은 서울시와 공사 모두 관련 사안에 대해 뒷짐만 지고 있는 사이 현장엔 무기계약직 차별이 당연시 된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규직 측의 논리는 이른바 ‘역차별 우려’다.


정규직으로 구성된 ‘공정사회를 염원하는 서울교통공사 청년모임’은 지난달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무분별한 무기계약직의 정규직화는 반칙과 특권의 연장에 불과하다”면서 “기회는 평등하게 절차는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합리적 일반직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을 사실상 공사 측이 조장 또는 방조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문제는 이처럼 정규직화 사안에 대한 노사 합의 결렬에서 촉발된 갈등이 점차 극단적 노노 갈등으로 번져가고 있음에도 공사 측이 사실상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수개월 간 무기계약직에 대한 원색적 비난 등의 행위가 지속됐음에도 공사 측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일각에선 공사가 이처럼 심각한 노노 갈등을 사실상 조장한 당사자란 거센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갈등의 시발점인 정규직화 정책에 대한 예산과 기준 등 보다 명확한 방안 수립을 사전에 행했다면 이 같은 내홍 사태가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을 거란 의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노사협의체(TF)를 구성해 총 6번에 걸친 협의를 실시해 왔다”면서 “CEO 및 간부급 직원들이 노조 측 설득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인권위 진정 건에 대해선 현재 인권위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지난달 공사 내부망 게시판을 임시 폐쇄했다”고 전했다.


결국 현재 협의 중단 상태에서도 성실히 협상에 임하겠다는 취지의 원론적 답변에 불과한 셈이다.


지난 7월 서울시와 공사 측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침을 밝힌 이후 ‘역차별’ 논리를 앞세운 정규직과 이들 공격에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해온 무기계약직 직원 간 벌어진 수개월 간의 내홍에 대한 사측 해명 역시 “협의 과정에서 공사 측 노력은 계속됐다”, “노노 갈등을 조장한 것은 아니다”란 다소 애매한 답변으로 돌아왔다.


정규직 전환에 대한 불안감과 정규직 공격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해온 무기계약직 근로자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한 달여 전이다.


앞서 서울시가 약속한 공사의 정규직 전환 시점은 이미 보름 남짓 임박했음에도 여전히 노사 공방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전환 무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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