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기주의에 실종된 대학생 ‘주거권’…정부 정책도 ‘무용지물’

▲ 대학생들의 미흡한 주거권 관련 논쟁은 사실상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최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문제로 온 나라의 관심이 ‘지역이기주의’, 즉 님비(NIMBY)에 집중된 가운데, 상대적으로 소외된 것으로 평가받는 청년정책 속 특히 대학생들의 ‘울며 겨자먹기식’ 주거 실태가 이 광풍(狂風) 속 한 가운데 자리잡고 말았다.


공동생활엔 필수 불가결의 시설이 단지 내가 살고 있다는 이유로 설치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주장을 이른바 ‘님비’라 일컫는다.


이 같은 님비 현상은 최근 어린이집이나 일부 학교·학교시설은 물론, 정부가 공공이익을 목적으로 추진하는 청년주택 건설 등 민간, 공공을 불문하고 확산 중이다.


특히 경제적 자립이 아직 미숙한 관계로 대학생의 경우 자신이 살게 될 주거지에 대한 선택지는 ‘사실상 없다’고 판단해도 무방하다.


비싼 교내 기숙사비와 턱없이 부족한 숫자…학교조차 외면 ‘비판’


▲ 최근 대학 인근 임대업자들의 담합 사실이 알려지며 가뜩이나 학교 주변 거주지 확보가 곤란한 대학생들의 어두운 그늘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공기숙사 건립을 계획하는 한편, 각 대학들에 기숙사 설치를 적극적으로 유도·장려하고 있다. 실제 최근 대학가에 기숙사 설치 움직임이 부쩍 확대돼 학생들의 기대감 역시 높아진 상태.


하지만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반발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 학생들의 ‘주거권’이 빼앗긴 듯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 공론화 작업을 거쳐 정부가 직접 추진 중인 공공기숙사 건립의 경우 첫 삽을 뜨지도 못한 채 시간만 축내고 있으며, 각 대학들이 밝힌 기숙사 예정지에도 어김없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 의사를 담은 피켓이 내걸리고 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주요 대학 인근 ‘원룸’ 월세의 경우 평균적으로 보증금 1000만 원에 50만~60만 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 50만~60만 원에 달하는 집값은 사실상 일반 직장인에게도 버겁다. 하물며 주요 고객인 대학생이 대부분 거주하는 대학가에서 이 같은 원룸 시세는 과도하게 높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다고 교내 기숙사로 눈길을 돌려도 까다로운 입주조건과 매학기 수백만 원에 달하는 거주비용 발생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이미 막대한 등록금을 지불하고 있는 학생을 상대로 학교가 기숙사를 핑계로 ‘돈벌이’에 혈안이 됐다는 비판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이유다.


서울 주요 대학의 기숙사 평균 수용률은 지난해 10월 기준 고작 11.8%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


이리저리 채인 학생들이 결국 의지할 수 있는 곳은 공적 도움의 손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님비’에 가로막혀 학생들이 학업에 매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주거권’이 침해받고 있는 것이다.


대학 인근에서 원룸이나 고시텔 등 임대업을 생계를 꾸리는 주민 반발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논리를 한 마디로 말하면 ‘재산권 침해’다.


다시 말해 기숙사가 들어설 경우 자신들의 원룸·고시텔 등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게 돼 결국 사업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학생 주거난 해소’란 공적 명분에도 직장인조차 부담스런 수준의 집값을 학생에게 고스란히 받고 있는 현 상황을 사실상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셈일까?


한양대·고려대 등 기숙사 건립 둘러싼 지역 갈등


▲ 대학 인근 임대업자들의 집단 반발은 사회적 공론화 작업을 거친 정부 정책 추진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얼마 전 밝혀진 서울시 주요 대학 인근 임대업자들의 ‘담합’ 사실이 떠올랐다. 청년층 월세가 많은 지역을 기반으로 원룸·고시텔 등 임대업자들의 담합이 기승을 부렸었다.


특히 대학 인근은 학교 기숙사 수용인원이 크게 제한적인 탓에 꾸준한 수요가 보장돼 대학가 원룸 주인들은 방이 비게 될, 즉 ‘공실’에 대한 염려가 없다.


실제 취재 과정 중 만난 대학가 현지 부동산중개업자는 “때가 되면 (학생들이) 알아서 찾아온다”면서 “이 정도면 싼 편에 속한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소개한 원룸 월세는 50만 원대였다.


이들에게 학생이란 단지 ‘마르지 않는 지갑’이란 존재에 불과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학 기숙사는 턱없이 부족하고 정부 정책 역시 아직 미흡해 결국 학생들이 머물 곳은 제한적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큰돈을 내고 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진단했다.


최근 한양대와 고려대, 총신대에 이어 광운대까지 기숙사 건립 추진 과정에서 지역주민과의 갈등이 어김없이 불거진 바 있다. 대학별 갈등 이유는 차이가 있으나 결국 ‘돈’ 문제가 걸린 지역이기주의로 귀결된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60만원. 1년 1000만원을 훌쩍 넘는 등록금에 쫓긴 학생들은 이른바 ‘월세 알바’에 목숨을 건다.


‘헬조선’이나 ‘흙수저’ 등의 신조어가 구태가 돼버린 우리사회 청년들의 일그러진 현실에, 한 발 물러선 ‘양보’를 전제로 한 정부와 대학, 지역 주민들의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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