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월 2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인 故 박영옥 여사의 빈소에서 김종필 전 총리와 이회창 전 이회창 전 총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조수범 박사]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배산임수(背山臨水) 등 집터나 사업장, 또는 조상의 묘(墓)를 잘 써야 자손이 복을 받는다고 해서 명당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부귀영화와 성공, 명예, 권력 등 나쁜 기운은 내쫓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그만큼 풍수지리는 우리 생활 곳곳에 널리 퍼져있으며 중요하게 인식되어지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풍수지리 전문가인 조수범 단국대 평생교육원 풍수지리학과 교수(행정학 박사)를 통해 풍수지리에 대한 개념과 역사는 물론 역대 대통령들의 풍수 분석 및 차기 대선후보들에 대한 풍수지리적 분석까지 시리즈로 기획해 봤다.<편집자주>


이회창 전 후보


이번 회차는 이회창, 김종필, 이인제, 정몽준 등의 인물들과 관련한 생가터와 집안선영에 대해 풍수지리적으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이회창 전 후보는 15대, 16대, 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안타깝게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한국 정치사의 잠룡으로만 남게 된 인물이다.


15대 대통령 선거 때는 김대중 후보(DJP연합)와의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였고, 16대 대선에서도 노무현 후보(정몽준과의 단일화, 충청으로의 수도이전공약)와의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였다.


이는 흡사 화룡정점 하지 못한, 즉, 용의 그림은 그려졌으나 용의 눈이 없어 승천할 수 없게 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산천을 닮는다. 그리고 산천의 기(氣)와 조화를 이루며 그 영향을 받는다. 이것이 풍수의 요체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이회창 후보의 산천은 군왕지지로 보기에는 약간 부족한 상태이다.


따라서, 다른 곳에 있는 강력한 산천의 기운과 결합해 그 부족함을 채우는 지혜를 발휘해야 했을 것이다.


전 회차에서 거론했던 김영삼의 3당 합당, 김대중의 DJP연합 등과 같은 방법을 활용해야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 것도 결국 그의 운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회창 전 후보의 생가터와 조상 선영


예산읍에 있는 생가터는 금오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15대 대선이후 새로이 복원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길지에 위치하고 있다.


예산읍에 위치한 금오산의 산진(山盡)처와 신양면 녹문리에 선영들이 산재해 있다. 예산읍 금오산 아래의 선산은 작은 규모의 금오탁시(박정희 전 대통령의 선산인 금오산의 금오탁시와 비슷)로써 명당길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선산의 뒷부분을 절개하여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는 선산의 혈처가 훼손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게다가 금오산과 선영 사이(까마귀 부리 끝부분)에도 도로가 확장되면서 선산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이 있은 후 두 번의 대선 실패가 있었고, 2007년 예산읍에 있는 선산의 모든 묘는 예산 신양면 녹문리 선산으로 옮기게 된다.


세 번째 대선(2007년)때에 바로 이 자리가 군왕지지로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었는데(조선일보 등에), 당시 필자는 이 자리와 관련하여 평을 해달라는 부탁(한나라당 관계자의 부탁-MB쪽이 아님)을 받고 현장을 답사하여 살펴보게 되었다.


그 결과, 이회창 후보의 부모자리는 정혈이 아닌 곳에 소점되었고, 예산읍에서 모셔온 묘들은 기(氣)가 모이지 않는 비혈지(非穴地)에 가족묘지 형태로 쓰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군왕지지와는 거리가 먼 형태로 아마도 풍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자리이거나 풍수지식이 전무한 풍수사에 의해 만들어진 자리였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 자리는 이번 대권과는 아예 거리가 있으니, 이회창 후보와 정치연합 등을 하면 그 뜻을 함께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전하였다.


※이 자리는 천기(天氣)를 점하는 향(向)법도 잘못되어, 시간이 지나면서 충파(沖破)를 면하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예산 신양면 녹문리에 있는 이회창 후보의 본래 선영은 보기 드문 길지에 속한다. 이곳은 멀리 보은 속리산을 태조로 하여 안성 칠장산에서 한 맥이 분지한 후 금북정맥을 만들어 행룡을 거듭하다가 청양 근처에서 한 룡이 양변으로 물을 끌고 북서진하여 용진처에서 물을 만나 집을 짓고 보국을 만든 귀룡이다.


여기에 자체 안산을 만들고 혈을 결작 하였는데, 여러 묘지(6기) 중에 두 곳만이 정혈에 안장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는 물은 좌수가 도우하여 신양면 소재지 앞에서 십자수(十字水)를 만들고 들어오는 배룡수와 만나 또 다시 도좌하여 예당 저수지에서 교합한 후 삽교천으로 유거하는데 마지막 삽교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 마지막 진수구(眞水口)가 된다.


다시 말해, 혈 앞의 물인 내당수는 산하금대로 만포하고 그 이후에도 갈지자(之字)로 유거하니 유정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으니 이는 선영으로 들어오는 용맥상에 고압철주와 고압선이 위치하고 있어 기의 흐름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2002년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 봄에는 산불로 인하여 이곳 녹문리의 선산모두가 화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필자는 이 일을 하늘의 메시지로 해석하여 2002년 대선에도 좋지 않은 악재가 작용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2007년에는 예산읍에 있던 선영들을 이곳 녹문리로 집단 이장 하였는데, 모든 선영들이 비혈지에 안장되어 마지막 천명(天命)의 기회를 놓치게 된 것으로 보인다.


▲ 신양면 녹문리에 위치한 이회창 전 후보의 선산. 래룡과 혈성의 모습이 보임 - 사진출처 조수범
▲ 본신룡이 만든 안산(사격으로 어산). 적절한 거리와 높이에서 백살을 제거하고 물(천기)의 직거함을 방지하였다 - 사진출처 조수범
▲ 멀리 고속도로에 훼손된 태양성과 태음성이 보임 - 사진출처 조수범
▲ 가선대부와 숙부인의 자리(한 곳만 정혈처임) - 사진출처 조수범
▲ 윗부분의 자리(한 곳만 정혈처임)- 사진출처 조수범
▲ 묘소 주변의 고압선 모습(고압선이 가까이 지나면, 지기와 천기가 교란되어 음택과 양택(집)등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됨) - 사진출처 조수범

▲ 2007년 예산읍에서 집단으로 이장하여 조성한 여러 기의 묘(이회창 전 후보의 부모자리는 아래쪽에 위치)


* 이 자리는 풍수학문을 전혀 모르는 풍수사에 의해 쓰인 것으로 보인다.


* 이 산의 정혈 처는 사진 내에 존재하고 있는데 이것을 보지 못하니 안타깝다. - 사진출처 조수범


김종필 전 총리


부여 반교리는 김종필 전 총리의 고향이자 생가터와 조상 선영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충청도답지 않은 강력한 국세를 지닌 곳으로 출중한 인물이 나올만한 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넓은 국세에 중출로 개면한 용맥이 삼공룡(三公龍)을 만들고 용진처에 마을을 만드니 반교리이다.


이곳 반교리에는 선영이 자리하고 있으며, 조부는 건너편 산에 안장되었는데 정혈처에 안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반교리는 우수가 도좌하고 멀리서 지현굴곡하여 조래하는 조래성으로 그 모습이 구곡수(九曲水)이다.


물은 동(動)하므로 빠르게 그 응이 온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구곡수는 일년구천(一年九遷), 즉 1년에 9번 바뀐다는 속발하는 물로써, 이는 마치 9급 공무원이 1년 만에 1급으로 승진하게 되는 것처럼 빠르게 그 응이 오는 형태로 볼 수 있다.


나아가는 물은 강력한 한문(捍門)으로 관쇄하여 내기(內氣)를 갈무리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군왕지지로서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던 중 김종필 전 후보는 2001년 봄 반교리에 있는 부모를 예산 신양면 하천리로 이장하여 대권의 꿈(내각제의 총리)을 희망하게 된다.


이곳은 금북정맥의 소간룡이 지나가는 곳으로 다섯 개의 봉우리(오성(五星)) 중 마지막 봉우리에 묘소를 조성하였는데, 아깝게도 실혈(穴)하였고 정혈을 찾지 못하였으니 천명(天命)을 받는데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묘소는 쌍분으로 쓰여 정법 풍수와는 거리가 있는 풍수사가 소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묘소의 근처에 실질적인 정혈이 존재하는데, 이곳은 마지막 맥이 하나로 들어와 하나의 혈(穴)을 만드니 반평남짓한 크기로 존재한다. 바로 이 혈(穴)에 부모 두 분을 합장으로 모셔야 했을 것이다.


이 자리(김종필 전 후보의 부모 자리)는 물이 직거하고 있다. 이는 견동토우(소코뚜레의 줄을 앞에서 잡아끄는 모습)의 형상으로, 물이 묘 앞에서 쭉 직거하기 때문에 운과 재물이 숨 돌릴 사이 없이 빠져나가게 된다고 본다.


또 계곡의 물을 따라 살기(殺氣)가 침범하니 이 자리는 그 살기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런데 근처에 그 살기(殺氣)를 피할 수 있도록 천장법(살기를 피하는 법)으로 천작(天作)의 혈(穴)이 생겼으니 이 오묘한 법을 사람이 어찌 쉽게 알 수 있겠는가.


※무학대사가 경복궁을 북악의 살기의 살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동향을 세우자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이 풍수도장법 중 하나인 천장법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필자는 2001년 이곳을 수차례 방문하여 토론을 하였는데, 함께 토론했던 많은 풍수연구가와 선생들이 하나같이 이곳을 훌륭한 자리라고 주장하였다.


게다가 이 곳 부근에 존재하는 아직 훼손되지 않은 혈(생지)은 보지 못한 채, 묘를 쓸 때 훼손되어버린 혈증을 두고 승금과 선익을 거론하며 왈가왈부하였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며 필자는 한국풍수의 안타까운 현실과 수준을 자각하게 되었고, 그 옛날 중국황실에서 주변 오랑캐를 멸망시키기 위해 저술하고 배포했던 멸만경(잘못된 풍수지리학술서)의 위력과 폐해를 실감하게 되었다.


한편, 이 많은 풍수연구가와 선생들 중에는 김모 풍수사라는 분도 있었는데, 이 분은 이 자리(김 전 총리의 부모 자리)의 이장을 자신이 주도하였다고 하면서, 자신은 30년 동안 산(풍수) 공부를 한 사람으로 3년 동안 낙엽을 덮고 자기도 하였으며, 지금 담배를 피우지만 이 담배의 가격도 모르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또한, 이 곳을 방문한 한국의 모든 풍수사, 교수, 고명하신 스님 등을 자신이 제압하였다고 자신하면서 도사 행세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필자는 여러 사람이 보는 가운데 김모풍수사와 한 시간 가량의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결국에 김모풍수사는 이 자리(김종필 전 총리의 부모 자리)를 명당에 쓴 것은 아니라며 말을 바꾸었고, 자신의 부모를 혈(穴)로 이장하고 싶다며 필자의 전화번호를 부탁하기까지 하였다.


이후에 김종필 전 총리는 내각제를 꾀하였으나 내각제 개헌은 공수표가 되었고, 그의 대권 꿈도 사라지게 되었다(필자는 2001년 이 자리를 간산한 후에, 수백명의 풍수사들이 토론하는 자리에서 이 자리를 가지고는 김 전 총리가 대통령이나 내각제의 총리가 될 수 없는 운(運)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현재 김 전 총리의 고향에 납골묘를 만들어 놓았는데, 만약 혈(穴)이 없다고 판단하여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이라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고향 선산에는 귀룡이 승천하는 자리(혈(穴))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관계자들이 안맹하여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종필 전 총리는 덕이 있고 훌륭한 인품을 지닌 분으로, 혈(명당)과의 인연이 어떠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이다.


이인제 전 후보


이인제 전 후보는 1997년 YS에 의해 등장한 후 혜성처럼 떠오른 인물이다. DJ 당선에는 일등공신이었던 동시에 이회창 후보에게는 패배를 안겨준 인물이기도 하다.


대선 당시 얻었던 약 500만표의 득표는 다음 대선에서 큰 뜻을 펼칠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이인제 후보의 고향인 논산시 연산면은 계룡산이 행룡하다가 계룡산을 일으키기 전에 서쪽으로 개면하여 조그마하고 아름다운 보국을 만든 곳이다.


그러나 계룡산은 원래 신도안 쪽으로 개장천심하여 개면(얼굴을 엶)하였으니 그 쪽에 큰 국을 만들었고, 이인제 후보의 선산 쪽은 배 부분에 해당한다. 때문에 이곳은 큰 자리(혈)의 결작이 없어 군왕지지는 없다고 볼 수 있다(그의 조부모를 비롯해 몇 자리는 비록 군왕지지는 아니지만, 정혈(正穴)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즉, 그의 선산은 군왕을 기대하기 어려운 자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 고명한 스님이 다른 곳에서 군왕지지를 찾는 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결국 그 스님도 혈(穴)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도선대사, 나옹선사, 무학대사, 학조대사 등 불교쪽으로 이어지는 풍수정법이 현재는 어떤 스님에게로 전수된 것인가. 만약 전수되었다면, 한국의 풍수를 행하는 스님들이 왜 혈(穴)을 찾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에 필자는 아마도 불교쪽으로의 풍수학맥도 이미 끊어진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권력자, 재벌과 같은 이들이 많은 돈을 들여 혈을 구한다고 하나, 돈으로 혈이 구해지는 것이 아니다.


먼저 음덕을 쌓아야 하늘의 천명(天命)을 받고 혈(穴)자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풍수사, 고명하신 스님, 유명 역술인, 무속인 등 그 방면의 유명인사라고 해서 쉽게 혈(穴)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정몽준 전 후보


2002년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를 하는 과정에서 실패하여 대권의 꿈을 접어야 했다. 정주영 전 회장의 또 다른 꿈이 좌절되었으니 안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전 회차에서 밝혔듯이, 검단산 자락의 선산에 있는 자리(터)와 그 자리와 연관된 천기(天氣)의 작용력에서 오는 흉(凶)이 제일 먼저 닥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상 이회창, 김종필, 이인제, 정몽준 전 후보의 양택지와 조상음택지에 대해 풍수지리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해 보았다.


사람은 대자연속에 살면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거기서 나오는 기(氣)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산천을 닮기 마련이다(영남 산천, 호남 산천, 충청 산천이 서로 다르고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듯이, 영남 사람의 기질, 호남사람의 기질, 충청사람의 기질이 서로 다르다).


특히 마을과 집터, 조상의 유택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로 풍수학에서는 전하고 있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본래 가지고 태어난 사주팔자(四柱八字)에서 오는 운(運)이 바뀌게 되는 개운(開運)도 일어난다고 본다.


한국의 재벌들, 권력자들은 어김없이 강력한 자리(음택, 양택, 양기)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받는 강력한 자리의 영향은 나라와 국민들에게도 미치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풍수지리는 이천여년의 경험이 축적된 학문으로 종교나 일반지리학과는 다른 대자연의 기(氣-天氣와 地氣)와 연관이 있는 기(氣)의 학문임을 강조하며 글을 맺는다.


▲ 혈토의 모습(2007년 2월 충남 서천). 홍황의 오색토이며 비석비토임. 질기고 윤기가 있어 매끄러우며 콩고물처럼 비벼짐. 삽으로 깎으면 대리석 바닥처럼 변하고, 나무뿌리가 침범하지 못함 - 사진출처 조수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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