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김영식 기자]올해 건강보험의 재정 흑자 규모가 20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날이 갈수록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크게 가중되는 데 반해 정부는 건강보험 관련 재정을 풀지 않고 곳간에 쌓아두기만 했다는 의미다.


게다가 최근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 매체 인터뷰에서 ‘건강보험료 인상’을 주장해 여론은 악화 일로에 있다.


문제는 매해 건강보험료가 지속적으로 상승했음에도 이에 대한 가입자들의 정보 접근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데 있다.


특히 보험료 인상 배경에 대한 논의 내용이나 근거에 대해 가입자 입장에서 알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의제기할 통로조차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보험료 인상에도 보장성은 후퇴…정책결정권 정부·의료계 편중 탓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진 데는 공공성이 강한 건강보험에 대한 정책 결정권한이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심하게 몰린 탓이라는 의견이 대두된다.


실제 건강보험에 대한 정책결정 기관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는 의료계 인사가 대거 포함된 상황으로, 이런 인사 구성은 전 세계에서 유례조차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건정심은 보험료나 병의원이 받는 수가, 급여내용 및 범위 등 건강보험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로 위원장 포함 총 25인으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가입자 대표 8인과 의약계대표 8인, 공익대표 8인으로 이뤄져 있다.


표면적 구성으로는 관련 이해당사자가 균형 있게 배치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험료가 지속적으로 상승, 가계의 의료비 지출 부담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정체하거나 감소돼 왔다.


실제 건강보험료는 보수월액 기준으로 지난 2011년 5.64%에서 ▲2012년 5.80% ▲2013년 5.89% ▲2014년 5.99% ▲2015년 6.07% ▲2016년 6.12% 등 최근 6년 간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하지만 건보료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재정이 흑자 상황임에도 건강보험 보장률은 2009년 65.0%에서 ▲2010년 63.6% ▲2011년 63.0% ▲2012년 62.5% ▲2013년 62.0% 등 매해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처럼 보장률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배경으로 비급여 의료비가 폭증한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정부가 나서 20조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을 풀어 비급여 진료를 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인 급여 쪽으로 돌리든지, 비급여 의료비를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정부 관리는 최근 수년 간 정체 상태다.


여기에는 건정심의 인사 구성이 의료계에 편중된 결과 탓이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실제 건정심에 가입자 대표 8명이 참여한다고 해도 자영업자와 농어업인, 소비자 대표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기 사실상 어렵고 전문성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약사회 등 의료계에서 8명으로 구성된 가운데, 공익 대표로는 복지부 등 공무원과 전문가 대표 4명이 참여한다. 전문가 대표가 의과대학, 보건대학 등 출신 인사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건정심에서 의료계의 영향력은 막강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예산정책처, “건강보험 흑자 운영, 국민 대상 과도한 징수가 이유”


정부는 지난 1999년~2001년 기간 의약분업 사태가 발생하자 의료계를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건강보험수가를 5차례 인상했고, 건강보험 재정 위기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2년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이 5년 간 한시법으로 시행되면서 건정심이 설치된 바 있다.


건정심 설치 이후 의약계 대표성이 가입자의 대표성과 동일한 수준으로 확대됐고 건강보험 주요 정책에 대한 심의뿐만 아니라 의결까지 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게 됐다. 특히 건정심이 보험료율 결정에 대한 의결권까지 틀어쥐게 되면서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건강보험 정책 결정에 사적 이익단체인 의료계가 참여하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 이 같은 단체들의 참여는 아예 배제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향력이 미미한 가입자 대표들의 고군분투에도 이들의 의견이 반영되기 힘든 반면, 정부 정책과 의약계의 이해 관계만이 건정심의 의사결정에 반영되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앞서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7월 “지속적인 흑자재정 운영은 국민으로부터 보험료를 과다하게 징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의 흑자 운영 이면에는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을 대가로 의료기관 등에 지출하는 요양급여비 등을 과다 추계하는 방식으로 건강보험 지출총액을 실제보다 높게 책정한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복지부는 지난 2014년 건강보험 지출총액을 3조8419억 원이나 과다 추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당시 국회예산정책처는 건정심 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 확보를 위해 회의록과 회의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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