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조수범 박사]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배산임수(背山臨水) 등 집터나 사업장, 또는 조상의 묘(墓)를 잘 써야 자손이 복을 받는다고 해서 명당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부귀영화와 성공, 명예, 권력 등 나쁜 기운은 내쫓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그만큼 풍수지리는 우리 생활 곳곳에 널리 퍼져있으며 중요하게 인식되어지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풍수지리 전문가인 조수범 단국대 평생교육원 풍수지리학과 교수(행정학 박사)를 통해 풍수지리에 대한 개념과 역사는 물론 역대 대통령들의 풍수 분석 및 차기 대선후보들에 대한 풍수지리적 분석까지 시리즈로 기획해 봤다.<편집자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풍수적 해석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하였으며, 노태우 정권시절에는 노태우, 김종필 등과 함께 내각제를 고리로 3당을 합당하였다.(이 합당으로 민자당을 결성하여 산업화를 이룬 권위주의정당과 민주화 정당이 연합하게 되어 우파 정당이 탄생하게 되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92년 제 14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재임하였고, 2015년 서거하여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터인 거제도 대계마을은 빼어난 사격(砂格)(어병, 대귀인, 어언사, 어산 등)으로 나성(羅城)을 만든 금계포란격의 명당길지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증조부 이상의 선대묘는 평양룡으로 이어지는 곳에 조그맣게 만들어졌고(합장 5기, 단장 2기), 조부모 묘는 쌍분으로 모친묘는 조부 건너편에 별도로 조성되었는데 이 자리가 기운이 융결된 길지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보면 사위(四圍)가 주밀하고 내명당(內明堂)은 크지 않으나 내기(內氣)가 충만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中) 정도의 군왕지지로서의 요건은 갖춘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구미 금오산에 있는 금오탁시 자리와 비교하면 역량의 차이가 확연하고,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선산, 생가지와도 국세와 혈의 역량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선산과 생가터에 있어서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의 부등식이 성립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3당 합당으로 각각의 자리가 가진 약점과 열세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었다고 보이는데, 이 또한 하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여소야대 국회만 아니었으면 이러한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고 구도가 여의치 않았던 시기에 때를 기다리고 힘(노태우, 김종필, 박태준 등의 산천의 기운)을 모아 뜻한 바를 도모했던 것도 천명(天命)이 바뀌게 되는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풍수는 어떠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권 말기의 외환위기 속에서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었고, DJP연합(내각제 고리)으로 김종필의 산천과 충청도 산천의 기운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거기에 이인제 후보의 출마(약500만표, 23% 득표)로 여권이 분열되는 상황이 더해져 대통령 당선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태어나고 성장한 하의도는 섬이지만 주변 섬에 의해 보호, 보위되는(사격이 잘 둘러쳐져 있음) 길지이다.


그리고 그 섬 안에 위치한 김 전 대통령의 생가터도 길지에 소점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윗대 조상의 선영과 관련하여서는 밝혀진 것이 없으므로 잘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김 전 대통령이 도전과 응전의 힘든 과정을 겪은 것을 보면, 강력한 자리의 영향을 받았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의 부모와 전처 자리는 나중에(대통령 선거 2년전) 용인의 묘봉리로 이장하게 되는데, 가족묘지식으로 열과 오를 맞춰 소점하여 설치하였다.


다행히 부모자리는 길지에 쓰였는데, 이것은 김 전 대통령의 운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 전 대통령의 전처(김홍일, 김홍업의 모친)자리는 혈을 비껴버린 좋지 않은 자리이며, 수맥에서 오는 흉화(凶禍)가 염려된다.


추후에 김 전 대통령의 전처 묘는 옮겨서 구제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풍수사가 미리 만들어 둔 김 전 대통령의 자리는 정혈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거주했던 동교동에서 일산의 정발산 아래로 집을 지어 이사를 하게되는데, 그 집에서 15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는 풍수를 찾아 흉화(凶禍)를 버리고 길복(吉福)을 찾는 추길피흉의 풍수의 도(道)를 실행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 대통령 재임 중에는 건강이상설 등 좋지 못한 일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일들은 일부분 청와대 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북악산에서 나오는 압살의 기운과 좋지 못한 터의 영향으로 김 전 대통령의 건강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국운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고 또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신 분들인데, 이분들이 정작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에는 오히려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제왕적 대통령 즉 왕으로 군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이게 된 것도 근거가 있는 것이다.


즉, 처칠의 ‘사람이 집을 짓지만, 집은 사람을 만든다’ 라는 말처럼 청와대는 민주적 대통령의 집무실이 아니라 궁궐로 지어졌기 때문에 청와대만 들어가면 절대 군주인 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풍수에 의해 사람의 성향과 성격, 운명이 바뀌게 된다는 것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 후 2009년 서거하여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여러 인고의 행보는 인동초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그는 인고의 시기마다 풍수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힘이 약할 때는 DJP연합 등을 통해 타인의 힘(김종필의 산천과 충청산천)을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 김대중 전 대통령 부모 묘소- 사진출처 조수범
▲ 안산의 모습- 사진출처 조수범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처 자리 - 사진출처 조수범

정주영 전 회장의 풍수


정주영 전 회장은 강원도 통천 출신으로 현대(現代)라는 굴지의 대그룹을 일구어낸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로 볼 수 있다.


그는 정치의 잘못된 부분들을 개혁하고자 제 14대 대통령에 출마하였으나 3당이 합당한 거대여당의 김영삼 후보와 정통 야당의 김대중 후보사이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낙선하는 불운이 있었다.


비록, 남북문제의 물꼬를 내고 1001마리의 소때를 몰고 방북하는 등 통일을 향한 성과는 많이 이룩하였지만 그의 마지막 희망사항이었을 노벨평화상을 놓치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그러나 정주영 전 회장은 그의 아들들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정몽헌 전 회장은 현대그룹을 통해 남북경제 협력사업을 벌이고,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였던 것 같다.


정주영 전 회장의 강원도 통천 선영과 생가터는 볼 수가 없어 평할 수 없다. 다만, 그가 생전에 살았던 청운동 집에 대한 풍수적 분석은 가능하다.


청운동 집터는 양지 일편의 기운(氣運)이 응집된 길지(吉地)에 위치하였다. 북한산의 용맥이 북악산으로 또 다른 맥이 인왕산으로 들어가기 전 크게 과협하고 결인한 후 인왕산을 만들고 그 인왕산에서 동향으로 개면하여 양택(陽宅)길지를 만들었다.


앞은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으로 특달한 안산(案山)을 만드니 그 모습은 상격부사(上格富砂)인 대복종으로 국중거부(國中巨富)의 사격(砂格)이 응하고 있다.


명당수(明堂水)는 좌수가 도우하여 청계천을 만들어 유거하는데 갈수록 물의 힘이 강해지는 형세이다.


수법은 차고법(借庫法 : 풍수의 수법종류 중 하나)으로 합법하여 천기(天氣)를 제대로 점하였고, 물은 동(動)하므로 빠르게 부(富)의 효응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반대 지점에 있는 장충동의 또 다른 재벌(삼성) 총수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등지에서 모여드는 물(청계천으로 배룡수)을 거두어들이는 곳에 위치하여 큰 부(富)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볼 것이다. 그리고 그의 후계자가 한남동에 위치하여 보광동의 산을 안(案)으로 하여 객수(客水)인 한강물을 거두어 들임으로 세계적 부(富)를 이루어 낸 것도 풍수를 적절히 활용한 지혜의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계동 사옥은 명당길지에 위치하여 그룹이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곳은 근처의 경기고등학교 터(현 정독도서관)와 더불어 좋은 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사옥(양재동)은 회룡고조(回龍高祖)로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형태이며, 큰 소가 작은 새끼소를 거느리고 먹이를 먹고 있는 형국으로 여물통(적초)에 위치하였다.


이곳은 청계산 일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배룡수를 모두 거두어들이는(조래수) 향법(向法)을 세웠다.


지현굴곡하여 유거하는 물은 본사 뒤를 돌아(공배수) 양재천과 만난 뒤 한강에서 교합하는 후합성의 국세로 합법하다고 볼 수 있다.


정주영 전 회장의 영면처인 하남시 창우동의 선산은 검단산 우백호 끝자락에 위치하였다. 정주영 전 회장의 자리는 혈(穴)처는 아니고, 암반으로 되어있는 땅을 쁘렉카로 천광한 후(5시간 정도) 흙을 넣어 다지고, 내광을 흙으로 미장하여 쓴 자리이다.


이런 자리는 화기(火氣로 화렴이라고 함)가 침범하는 자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뒤편에는 계곡이 있고 작은 폭포수도 있는데, 그 계곡물이 견충수(肩冲水)가 되어 그곳에 해당하는 후손(인묘진생(寅卯辰生)이 먼저 흉화(凶禍)를 입게 되는 결과가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내용은 묘지조성 직후 필자가 예측한 내용으로 인묘진생(寅卯辰生)인 정몽준 전 대표와, 정몽헌 전 회장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참고로 묘지(천광)할 때 나온 암석(돌)은 아래 사진과 같다. (사진의 암석(돌)은 당시에 현장에서 가져 온 것임).


▲ 정주영 전 회장 묘소 내광에서 나온 암석조각돌 - 사진출처 조수범

모실자리는 혈을 먼저 파서 확인한 후, 주변 묘지 조성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풍수사들은 대부분 주변정리를 먼저 한 후 마지막에 천광(모실자리)을 하고, 얼른 창호지나 천으로 가린 후 하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이 두려워 내광의 흙을 보여주지 않는가. 앞으로는 당당히 혈(穴)부터 파서 혈토를 보여주는 믿음의 풍수를 행하여야 실력 있는 진짜 풍수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군왕지지를 가졌으나 상대적인 힘은 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 분들은 다른 사람의 산천의 기운을 활용하여 부족한 것을 채우는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고 본다.


정주영 전 회장은 부지(富地)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귀(貴)는 상대적으로 약하여 큰 부(大富)와 대귀(大貴)를 함께 가질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현충원 자리에 관한 풍수적 해석


동작동 현충원에 모셔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음택(陰宅)터에 대해 필자의 풍수적 견해를 설명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제 1장군 묘역에서 연결되는 정맥은 창빈 안씨 자리에서 융결하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리는 맥이 없는 즉, 무맥지지(호박줄기가 없으니 호박이 달리지 않는 것에 비유)에 안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혈(穴)은 아닐뿐더러 오히려 수맥이 염려스럽다고 볼 수 있다. 자리와 수법(水法) 그리고 이기법(理氣法) 등으로 이 곳에 대한 분석을 하게 되면 여러 현상들이 발생됨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지면관계상 설명을 생략한다.


그리고 다음기회에 우리나라 전 대통령들의 음택지에 대한 풍수적 해설을 통해 견해를 밝히도록 할 것이다.


동작동 현충원에 모셔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리에 대한 필자의 풍수적 내용은 필자가 묘역 작업기간에 거의 상주하면서 지켜본 내용이므로 정확하다고 볼 것이다.


이 자리는 2015년 초겨울 안장되었는데, 처음 황모선생과 필자가 관계자의 요청을 받아서 YS 전 대통령의 자리를 정하게 되었다.(상주인 김현철 박사, 김덕룡 전 의원, 김무성 대표 등 관계자들이 참석).


당시에 황모선생은 현재의 YS 전 대통령의 자리를 지목하였고, 필자는 그 아래지점이 정혈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황모선생은 YS 전 대통령께서 3년 전에 자기(황모선생)에게 자리를 써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필자는 황모선생이 지목한 자리는 한강의 살기를 그대로 받으며 수맥파가 올라오고 혈(穴)도 아닌 곳이므로 불가하다고 주장하였다.


더불어 필자는 두 군데(황모 선생이 지목한 자리와 필자가 지목한 자리)의 땅을 모두 파보고 혈토가 올라오는 곳에 자리를 쓰자고 주장하였지만, 결국 YS 전 대통령의 유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현재의 자리로 묘역작업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혈(穴)인지 아닌지는 잠시 땅을 파보면 누구나가 알 수 있는 것인데, 왜 그리 성급하게 결정하였는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혈과 혈이 아닌 곳은 땅을 파보면 확연히 구분된다.(풍수적 상식이 없는 사람이 보게 되더라도 쉽게 느끼고 구분할 수 있는 것이 혈토임)


당시 황모선생은 결국 혈을 근처에 두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도 하늘의 뜻이고 그분의 복일 것이니 필자가 지목한 혈은 나중에 인연이 닿는 다른 대통령을 위해 써주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그렇지만 필자는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셨던 YS 전 대통령이 좋은 영면처(혈)에 가셨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러나 인연이 여기까지 인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YS 전 대통령 자리의 아래에 필자가 지목한 최고의 길지(정혈)인 반룡농주격(反龍弄珠格)의 혈이 숨겨져 있으니 누가 주인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이 자리(필자가 지목한 혈 자리)는 삽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파 들어가야 손상이 되지 않는 혈(穴)이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것을 밝히는 이유는 나중에 함부로 손을 대어 혈(穴)을 손상시키는 행위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현충원은 몰골격으로 혈(穴)들이 많이 산재해 있는데, 왜 이 혈들을 찾지 못하고 DJ 전 대통령과 YS 전 대통령을 혈(穴)이 아닌 곳에 모셨는지 알 수 없다.


필자는 YS 전 대통령의 묘역작업기간 내내 작업과정을 지켜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YS 전 대통령을 모실자리는 봉황포란격이라 실제로 봉황의 알이 나왔다고 하면서, 내광을 팔 때 둥근 돌이 나오는 모습을 연출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봉황포란격 등의 명칭은 산천의 형국에 따라 이름 붙이는 것뿐인데(사람에게 이름을 지어 부르듯이), 봉황포란격이라서 봉황알이 나온다니? 그 산천이 실제 봉황인가? 아마도 그곳에 혈토(穴土)가 나왔다면 이렇게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혈에서 나온 혈토를 방송에 공개하고 모든 사람들이 구경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혈(우주만물의 이치가 집약된 것)을 알아야 대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고, 그 이치를 깨달아야 음택은 물론 양택, 양기풍수를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봉황의 알이라는 둥근 돌의 실체는 필자와 몇몇 사람이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만 밝힌다.


땅은 거짓을 용서치 않는다고 했고,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은 속일 수 없는 법 아닌가. 풍수학인들은 이 점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 2007년 6월 충남 보령시 청소면에서 출토된 혈토의 모습 - 사진출처 : 조수범


* 가로 1.2m, 세로 1.8m, 0.7평 크기


* 암석과 돌을 1.2m 정도 파고 들어가면, 홍황의 비석비토가 출토됨. 이는 오색토이며 끈기가 있고 윤기가 있어 반질반질하고, 삽으로 깎으면 대리석 바닥처럼 변함. 나무뿌리는 들어올 수 없고, 모래하나 섞이지 않은 콩고물처럼 부서짐


* 지금까지의 모든 혈토사진들은 필자가 직접 찾은 혈처에서 출토된 혈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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