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조수범 박사]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배산임수(背山臨水) 등 집터나 사업장, 또는 조상의 묘(墓)를 잘 써야 자손이 복을 받는다고 해서 명당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부귀영화와 성공, 명예, 권력 등 나쁜 기운은 내쫓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그만큼 풍수지리는 우리 생활 곳곳에 널리 퍼져있으며 중요하게 인식되어지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풍수지리 전문가인 조수범 단국대 평생교육원 풍수지리학과 교수(행정학 박사)를 통해 풍수지리에 대한 개념과 역사는 물론 역대 대통령들의 풍수 분석 및 차기 대선후보들에 대한 풍수지리적 분석까지 시리즈로 기획해 봤다.<편집자주>


이번 회차에서는 10·26으로 인한 국정의 혼란기에 권력을 장악했던 군부실세의 핵심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터와 조상 선영에 대하여 풍수지리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해 보도록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운명적(運命的)으로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풍수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풍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은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 곳에서 유년기를 보내다가 대구의 공업학교(현 대구공고)로 진학하였다.


어릴 적 집안 살림은 넉넉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부모는 아들을 대구로 유학 보냈고 이 결정은 훗날 전 전 대통령의 운명을 가르는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전 전 대통령이 대구공고에 재학 중이던 시기 6.25사변이 발발하게 된다. 당시 남학생들의 일부는 대학을 가는 등 징집을 피하기 위한 행태들을 보였지만, 전 전 대통령은 어린나이임에도 학도병으로 자진입대하여 전쟁터에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에 육사(1951년)에 들어가 장교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는 그의 운명을 개척하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10.26 이 발발하기 몇 개월 전, 그는 보안사령관으로 보직이 바뀌게 되는데, 이로써 그의 운세는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이상의 전 전 대통령 인생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보면, 마치 퍼즐이 차례차례 맞추어지듯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운세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 터는 용덕산이 개면하여 만들어진 내천리 마을의 좌청룡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박정희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과 동일).


용맥이 끝나는 지신처에 위치한 양택 터는 밝은 기운이 응집된 조그마하지만 야무진 길지로 보인다.


황강의 물은 집터의 현무 뒤에서 돌아 나와(공배수(拱背水):물이 혈후를 둘러싼 것. 수전현무(水纏玄武)이면 발복(發福)이 유장(悠長)하고 부귀(富貴)가 면원(綿遠)하게 된다고 함, 대개 물은 용기(龍氣)를 모으는 것이니 수전(水纏)이 산전(山纏)보다 더욱 나은 것이라 함), 집 앞의 내수와 좌변에서 만나고, 안산(案山)너머에서 뒤돌아보고 머뭇거리면서 유거하니 이 물은 외 명당수(明堂水)가 되어 유정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집은 장풍국과 득수국의 조건을 모두 갖춘 명당길지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주변은 귀한 사격(砂格)으로 아름답게 둘러치고, 보국은 주밀하며 명랑하다. 앞의 안산(案山)은 입조마(入朝馬)와 대귀(大貴)한 아미사(蛾眉砂)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와 높이에서 응대하고 있으며, 안산(案山)의 역할인 백살(百殺)을 제거하고 내당(內堂)의 기운(氣運)을 간직하여 갈무리하고 있다.


특히, 집 좌측의 황강건너편에 위치한 상봉(翔鳳)은 대귀(大貴)한 사격(砂格)으로 봉황(鳳凰)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형국이니 참으로 귀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집의 가상(家相)은 서사택(西舍宅)으로, 건주(乾主)에 곤문(坤門)으로, 천지(天地)의 년연택으로 길상(吉相)의 집이다.


즉, 양명(陽明)하고 기운(氣運)이 응집된 터에 집을 세웠고, 그 가상(家相)법도 적법하니 조그마한 집이지만 최길의 집터라고 볼 수 있다.(※아마도 풍수에 조예가 깊은 분의 선택과 소점이 있었다고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 집앞의 내수가 외수(황강)와 교합하는 모습 - 사진출처 조수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안 선영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선산은 마을 뒤편에 있는 용덕산으로 높진 않지만 반듯하다. 그리고 이 산에는 기운을 머금은 곳에 조부이상의 선영이 자리잡고 있다(일부는 동네앞에 자리잡고 있음).


용덕산의 산세를 보자면, 백두대간 중에 위치한 남덕유산에서 출발한 귀룡이 수백리로 지현굴곡과 기복위위를 거듭하다가 대암산, 단봉산을 거쳐 용덕산에 이르렀고, 황강을 만나 마지막 기운을 일으키어 보국을 만들었으니, 이 산(용덕산)이 곧 내천리의 주성이 되었다.


이 산(용덕산)의 정상 바로 아래에는 한마지기(200평)정도의 마르지 않는 용못이라는 연못이 있는데, 풍수에서는 이것을 천지수(진응수로 봄)라 한다.


이 연못은 택뢰수(擇雷水) 즉, 용이 물속에 있는 형국의 연못으로, 이 물속의 룡(龍)은 미래의 기운(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승천의 때를 기다리는 룡(龍)으로 보면 될듯하다.


그리고 이 주변에 조상들의 산소가 소재하고 있다. 아마도 풍수를 잘 아는 분이 이곳에 조상의 묘를 소점하였던 것 같다.


다음으로 대통령의 부친이 본인 자리를 소점했던 지릿제의 선산을 살펴보면, 백두대간의 대덕산 부근에서 분지하여 수도산을 거쳐 두리봉으로 행룡한 후, 다시 한번 분지하여 한 맥은 가야산으로 진행하고 다른 한 맥은 무두산(1046m)으로 진행하여 비계산(1126m)과 두무산(4038m), 그리고 망태산과 노태산으로 이어지다가, 노태산 지릿재에서 행룡을 멈추고 여기에서 황강을 만나 음의 형태로 큰 보국을 만들었다.


반면, 건너편 용덕산은 남덕유산에서부터 수백리를 끌고 와 양(陽)의 형태를 만들었으니 이로써 음양교합의 이치에 부합되도록 하였다.


이곳(선산)에는 높은 곳(천교혈)에 묘소(전두환 전 대통령 부모의 묘소)를 소점하였는데, 이는 높은 곳에 맑은 기운이 모이는 까닭에 개법으로 혈(穴)을 정(定)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혈은 정혈에 바르게 쓰였고 따라서 향법도 합법하다. 혈(穴)좌우에 감아 돌아가는 작은 미사들은 혈의 기운을 보호하고 있고 좌우 옷깃을 여미듯이 싸안아주고 있으니 혈전수는 지(之)字, 현(玄)字의 모습으로 유거하여 소세가 직거함을 방지하였다.


주성은 높진 않지만 바르게 혈(穴)을 받쳐주고 있으며, 그 너머로 귀성(鬼星)의 응이 있어 귀한 땅임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좌청룡은 가까이에서 혈(穴)을 보위, 보필하는데 이 사격은 삼태를 비롯해 문무시위의 사격으로 조정의 백관(신하)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이는 과연 군왕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조산 앞의 황강은 지현굴곡(태극의 형태)으로 앞에서 머물렀다가 갈지(之)로 유거하니 유정하고 다정하다.


사세(四勢)는 주밀하고, 대명당과 외명당은 넓게 펼쳐지니 대길지(大吉地)로서 손색이 없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의 부친(풍수에 조예가 깊은 듯함)은 이 묘소를 소점한 후 “내가 이 자리에 쓰이면 아들(전 전 대통령)이 합참의장 내지는 대통령이 된다”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부친의 자리는 정혈 처에 정확히 소점 되었지만 모친의 경우는 혈이 아닌 곳에 소점 되었다(실혈)는 것이다.


이곳은 원래 하나의 맥이 내려와 하나의 혈(0.7평 정도)을 맺었는데, 혈 옆에 쌍분으로 또 다른 묘를 조성하였으니 이는 잘못된 경우라 할 수 있다.


혈(穴)주위는 물이 도는 관계로 정혈주변 전후좌우에 묘를 쓰면, 그 묘는 물구덩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혈을 처음부터 합장자리로 만들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 또 다른 혈(穴)을 찾아 써야 하는데, 나중에 모친을 모신 풍수사가 그럴만한 개념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보면, 이 또한 하늘의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러나 늦게나마 후손들이 이 점을 깨닫고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좌청룡 부분의 사격 - 사진출처 조수범

노태우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은 대구 동구 신룡동 용진마을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이르러서는 대구 공업학교에서 경북고등학교로 전학하여 수학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1950년 6.25사변이 발발하게 된다.


때문에 전국의 많은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자원하게 되었고, 노태우 전 대통령도 역시 학도병으로 자원하여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


그렇게 전투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하던 그는 1951년에 육사에 입학하고, 1955년에는 육군장교로 임관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노 전 대통령은 9사단장의 자리까지 오르는데, 바로 그 시기에 10·26과 12·12사태가 발생해 신군부를 이끌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6.29 이후 직선제 개헌을 통한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재임하게 되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터는 팔공산에서 출맥한 용이 거저산에 이르렀다가 그 거저산에서 분지되어 떨어지는 곳에 있는 용진마을의 좌청룡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집터는 높은 곳에 위치하나 평양룡으로 들어오는 龍의 끝부분에 바위로 대를 놓아 작지만 단단한 터를 만들었다.


맥은 바위를 통해 들어오는데 기(氣)가 너무 강하여 살기(殺氣)를 다 벗지 못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끝부분에 위치한 방은 음지일선의 강력한 기운으로 만들어진 혈(穴)처로 보인다(강릉의 몽룡실과 구미 상모리의 박 전 대통령 공부방도 같은 사례).


처음 이곳을 우리 회원들(삼한풍수지리학회 회원들)과 간산(看山)하였을 때, 필자가 이와 같은 설명을 하였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간산차 이곳을 다시 방문하였는데, 그때는 이곳을 지방문화재로 관리하는 공무원이 있었고, 그 공무원은 ‘문제의 끝 방에 신혼부부가 세들어 살았는데 몇 년 사이에 많은 재물(수십억)을 모아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필자와 삼한풍수 지리학회 회원들이 함께 들음).


이것은 그 방이 음지일선의 혈처이기 때문에 그 방에서 사람이 기거를 하게 되면 중용 또는 중화의 좋은 기를 지속적으로 받게 되어 결국은 그 사람의 운세가 바뀌게(개운)되는 원리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아무튼 그 생가터는 양택의 혈처(양기일편)가 아닌 곳에 규모가 작게 지어진 집으로 볼 수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조상 선영


노 전 대통령 조상 선영의 산세를 살펴보면, 백두대간이 진행하던 중 태백산 부근 삼수령에서 한 맥이 분지하여 낙동정맥으로 이어지고 이 낙동정맥은 팔공산을 일으켜 세우니 대구의 명산이다.


그리고 이 팔공산에서 하나의 보국을 만드니 신룡동 부근에 큰 보국을 형성하였다. 이곳은 물이 유거하는 곳에 크고 웅장한 화표한문을 세워 명당의 기운이 세어 나가는 것을 방지하였는데, 풍수적으로는 천문지호(하늘은 열리고 땅은 관쇄함)의 명당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곳은 사세(四勢)가 주밀하고 나성(羅城)이 적절한 거리에서 강력하게 둘러치니 장풍국의 보기 드문 명당길지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먼저 부모 묘는 송정동에 쌍분으로 이장하여 모셨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초급장교시절 노태우 전 대통령은 소령진급이 늦어져(계급정년에 걸리면 전역해야 함)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때 부모 묘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모 묘를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게 되었다 한다.(※부모 묘를 이장하기 위해 묘를 파보니 물이 차있었다고 함)


그리고 신기하게도 부모 묘를 이장한 뒤 승승장구로 진급이 되었다고 하며, 이에 노태우 전 대통령은 풍수가 있긴 있는 모양이라고 회고하였다 한다.


현재의 부모 자리는 혈(穴)은 아니고 평범하다. 그런데 뒤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견층수가 되어 염려스럽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용진마을 뒤편의 조상묘 중 한곳은 상격귀사(上格貴砂)인 삼공룡(三公龍)으로 들어와 마지막에 혈(穴)을 맺었는데, 이는 합겸체(合鉗体)로써 보기 드문 정혈에 안장된 최고의 길지가 아닌가 싶다.


또한 이곳은 좌우사가 주밀하며, 혈 앞에 바로선 화표한문(또는 북진)은 대귀사(大貴砂) 또는 금혈지(또 다른 임금이 나오니 써서는 안 되는 자리)로 볼 수 있다.(※이 자리 외에 더 큰 자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좋은 혈처에 안장되었다 할지라도, 인간의 노력과 인내, 내공이 함께하여야 혈과의 조화를 통해 비로소 그 뜻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군인의 신분으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인물들이다. 이는 세 분 모두 군인의 길을 걸음으로써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 발표한 기고문에서, 용산의 육군본부 자리가 명당 터이기 때문에 청와대 터를 누르고 이길 수 있었다고 설명하였는데, 군인의 신분이었던 인물들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땅(터)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기(氣)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생산해 내는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금 더 추가적으로 살펴보자면, 용산의 육군본부 터는 명당길지로 청와대 터보다 좋고, 북한의 인민무력부 터보다도 더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 미8군 터도 대길지이기 때문에 북(김씨왕조)의 군사력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2군 부사령관으로 근무하던 대구 대명동의 2군사령부도 길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임진왜란(1592년)때 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온 명나라 군대의 이여송을 보좌하던 명나라 국지사 두사충은 대명동에 마지막으로 정착하게 된다.


대명은 명당길지로써, 대명이라는 지명은 이곳에 정착한 두사충 선생이 지은 것으로 보인다. 두사충 선생은 이곳에서 생활하였고, 이곳에 직접 자기 묘자리를 소점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이곳이(2군 사령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혁명을 기획했던 역사적인 장소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명당길지의 힘을 얻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이러한 내용들을 소개하는 것은 땅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과 그 땅이 인간들의 길흉화복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 혈토를 가까이서 찍은 모습. 비석비토에 홍황색의 밝은 빛이 도는 오색토의 모습. 0.7평 크기로 출토(2000년 당진에서 출토) - 사진출처 조수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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