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보선 전 대통령 캐리커쳐(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조수범 박사]좌청룡(左靑龍)·우백호(右白虎)·배산임수(背山臨水) 등 집터나 사업장, 또는 조상의 묘(墓)를 잘 써야 자손이 복을 받는다고 해서 명당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는 부귀영화와 성공, 명예, 권력 등 나쁜 기운은 내쫓고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그만큼 풍수지리는 우리 생활 곳곳에 널리 퍼져있으며 중요하게 인식되어지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풍수지리 전문가인 조수범 단국대 평생교육원 풍수지리학과 교수(행정학 박사)를 통해 풍수지리에 대한 개념과 역사는 물론 역대 대통령들의 풍수 분석 및 차기 대선후보들에 대한 풍수지리적 분석까지 시리즈로 기획해 봤다.<편집자주>


현재의 정치는 미래를 예측하고 분석하는 제 기법들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과학적이라고 하는 그 기법들만으로는 미래를 예측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과학적 기법들과는 다른 측면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그 중 하나는 동양학문을 통한 접근인데, 특히 동양학문의 종합학이라고 일컬어지는 풍수지리 등의 학문은 미래를 예측하는데도 매우 유용한 학문이다.


따라서 풍수지리 등의 학문을 통해 대권주자들의 역량과 그 그릇에 관해 분석해 본다면,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미래운명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주차 부터는 전·현직 대통령과 과거 대권잠룡들, 현 대권잠룡들의 생가지 및 마을 선영 등을 풍수적 방법과 그에 연관된 동양학문을 적용하여 그들의 정치적 삶을 분석하고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분들과 관계하여서 가급적 사실적인 내용들을 적용하여 설명할 것이나, 부분적으로는 부득이하게 풍수계에 떠도는 이야기들도 참고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혹시 글 중에서 사실과 다른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의도적인 것은 없다는 점을 밝히며, 독자들께 미리 양해의 부탁을 드린다.


※이승만 대통령의 고향은 이북이라 검증이 불가능하여 생략하며, 현재 현충원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묘지는 잘 쓰인 것으로 보인다.


윤보선 전 대통령


윤보선 전 대통령은 제 2공화국(4.19 혁명이후 탄생된 내각책임제 정부)의 대통령을 지낸 분으로 비교적 축소된 권력을 가졌던 대통령(1960년 8월~ 1962년 3월)이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5.16으로 헌법이 개정된 후 실시된 직선제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두 번 출마하였으나, 두 번 모두 박정희 후보와의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였다.


따라서,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지 및 선영 등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지 및 선영 등을 비교하여 분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선산에 얽힌 이야기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윤 전 대통령의 집안에서 밝힌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풍수계에서 비사처럼 떠돌며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첫 번째 사례는 윤 전 대통령의 집안에 정설로 내려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증조부(통덕랑 벼슬을 지냄)되시는 분은 매일 팥죽을 쑤어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집 앞에 내어놓곤 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병에 걸려 쓰러진 스님을 구제하여 병을 낫게 해 주었는데, 그 스님이 고마움의 표시로 명당(穴)을 일러주어 그곳에 묘를 썼다고 한다.


윤 선비는 40세가 넘도록 자손이 없었는데 묘를 쓴 후 아들 형제를 얻게 되고, 집안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관하여 윤 전 대통령의 집안에서는 묘를 잘 써서 그러한 발복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많은 적선을 하였기에 그것이 가능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적선으로 발복이 가능했다는 말도, 3대에 걸친 음덕(적선)을 해야 명당(穴)을 얻을 수 있다는 풍수계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이전에 소개한 혈토의 주인공도 60세가 되도록 자손이 없다가 그 자리에 부친을 모시고 난 후 아들을 얻은 사례가 있음


두 번째는 풍수계에 떠돌며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윤 전 대통령의 증조부인 윤 선비는 아산현에 근무하였는데, 아산현감이 말을 타고 수시로 가서 머물다 오는 곳으로 수행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현감이 그곳에 갈 때마다 이리저리 살피면서 ‘아깝다. 아깝다’를 연발하며 그 산을 내려오길 수차례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본 윤 선비는 그곳이 큰 명당임을 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윤 선비는 현감이 한양으로 승진하여 올라가자 자신의 부모를 그곳에 이장하였다. 이윽고 윤 선비도 한양으로 올라가 옛 아산현감의 집에서 기숙하게 되었다.


여름이 되고 장마철이 시작되자 윤 선비는 이장한 묘가 걱정이 되어 밤낮을 달려 부모 묘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윤 선비가 물고를 내는 등 묘를 손보던 중에 갑자기 벼락이 내리치는 것이 아닌가. 정신을 잃게 된 윤 선비는 다행히 곧 깨어날 수 있었고, 무사히 한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추석이 되었다. 옛 아산현감의 집에서 기숙하던 다른 선비들은 추석을 맞아 모두 고향으로 떠났으나, 윤 선비는 여러 사정상 고향에 갈 수가 없어 그 집에서 추석을 맞이하게 되었다.


보름달이 밝은 추석날 현감이 윤 선비를 불렀다. 그리고는 “우중에는 고향을 가더니 왜 추석에는 고향에 가지 않느냐”고 물으며, 주안상을 마련하여 술이나 한잔하자고 권했다.


이에 윤 선비는 현감과 술자리를 하게 되었고, 술이 몇 순배 오고간 후에 윤 선비는 그간의 자초지종을 털어놓기에 이른다.


윤 선비는 현감에게, 영감께서 말을 타고 가서 아깝다고 한 그 자리에 묘를 썼다고 이실직고 하였고, 그 말을 들은 현감은 “이 사람아. 그 자리는 쓰면 안 되네. 그 자리는 천하에 둘도 없는 명당이지만, 살(殺)을 받는 자리여서 나도 쓰지를 못한 것이라네. 그 앞에 칼처럼 생긴 바위가 있지 않던가. 그 바위가 무서운 살(殺) 바위라네”라고 말하며 정색을 표했다.


이에 윤 선비는 “그런데, 지난여름 우중에 묘에 가서 물고를 내고 묘를 보던 중 번개가 내리쳐서 정신을 잃었는데, 한참 뒤에 깨어나 보니 그 칼바위가 산산조각이 나서 없어져 버렸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윤 선비의 말을 들은 현감은 탄식하여 말했다. “큰 자리(穴)는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하더니, 자네가 그 자리의 주인일세”


※대혈은 하늘의 천명을 받아야 쓸 수 있는 천장지비 한 것임을 나타내는 사례라고 생각함


그 일이 있은 후, 현감은 윤 선비에게 많은 재물 등을 베풀었다. 그리고 윤 선비의 집안형편은 점차 나아져, 생활의 기반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벼슬길에도 오르게 되었으며, 재물도 늘어나 집 주위 삼십리 안은 윤씨 집안의 땅이 되는 큰 부를 이루게 되었다.


그렇게 윤 전 대통령의 조부되시는 분은 판서벼슬에 오르기도 하였는데, 때가 되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배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 생가지 안내표지판과 외부 솟을대문 - 출처 조수범
▲ 집 측면 모습 - 출처 조수범
▲ 바깥체의 모습과 중간문의 모습 - 출처 조수범
▲ 가제산의 모습 - 출처 조수범
▲ 귀인사와 아미사 - 출처 조수범
▲ 안산의 모습 - 출처 조수범
▲ 둔덕으로 형성된 좌청룡 끝부분 - 출처 조수범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지


윤 대통령의 생가지는 둔포면 신항리에 위치한 명당 터에 자리 잡고 있다. 집은 회룡고조로 산태극 수태극의 형태로 지어진 전형적인 양반가옥으로, 안채와 바깥채로 나뉘고 사랑채는 옆으로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생가지는 풍수에서 논하는 혈명으로 와우형(소가 편안히 누워서 되새김질을 하는 형상)에 속하는데, 집터는 소의 젖꼭지 부분에 위치하였다.


이 곳은 상승하는 기운(氣運)이 모여 있는 대표적 길지(吉地)로 윤보선 대통령이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한다.


집향은 해좌사향(亥坐巳向)인 동남향으로 세웠고, 주변의 물은 창판수(풍수에서 말하는 넓게 퍼져 흘러내리는 물의 종류)가 되어 넓게 퍼져서 흘러들어오고(조래수), 지현굴곡으로 나아가니 많은 부(富)를 만들어내는 귀한 집터이다.


또 나아가는 수구(水口)에는 천기(天氣)를 관쇄하는 일원한문(日月捍門)이 섰고, 마지막 진수구(眞水口)는 계축(癸丑)으로 수구(水口)를 만드니 정고법(正庫法)을 취하였다.


집터 앞의 안산(案山)부근에는 가제가 집을 향해 내려오는 사격(가제골이라 함)과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사격, 어산(임금이 쓰는 우산)의 사격, 어병사의 사격, 대귀인의 사격, 황구(누런 개)가 편안하게 졸고 있는 사격 등이 있고, 집에 올라서면 사위(四衛)가 질서정연하고 편안하게 포회하고 있으며, 국세는 주밀하고 명랑하여 심신이 편안하고 포근하다.


양택(陽宅)은 배산임수, 전저후고, 전착후관, 산, 방위, 물이 중요한데 이 중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것이 없도록 배치하였다.


가상법(家相法)도 동사택(東舍宅)으로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으니, 이 집에서 귀(貴)와 부(富)와 건강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선산


윤대통령의 집안은 선산에서 발복이 먼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선산을 향해 들어오는 용(龍)은 천안 성거산맥이 태조산으로 행룡(금북정맥)하던 중 한 맥이 분지(分枝)하여 진행하다가 노태산, 삼성단지 뒷산을 거쳐 크고 웅장하고 반듯한 장신목성(長身木星)를 만들었으니, 이는 대귀인(大貴人)이고 주성이다.


여기에서 중출맥(中出脈)으로 얼굴을 열고(개면) 내려오다가 과협처에서 힘차게 결인하니 갑묘룡(甲卯龍)으로 혈성(穴星)에 이르러 태양성(太陽星)을 만들고 그 밑에 여러 개의 크고 작은 혈(明堂)을 만들고 낙산 정혈로 작(作)하였다.


혈에 오르면 사위(四衛)가 주밀하고 명당은 명랑하여 과연 큰 보국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백호쪽의 삼태(三台)와 마상귀인은 귀한 인물이 출현됨을 예언하는 듯하다. 안산(案山)쪽의 일월(日月)은 임금을 의미하는데, 조그마한 어병사가 그 자리를 호위하고 있고, 어산(임금이 쓰는 우산)이 혈 앞에 반듯하게 놓여있으며, 멀리 아산 송악의 명산인 설화산이 똑바로 조대하여 그 모습이 가상하다.


또한, 그 너머에 있는 광덕산도 외명당의 기운을 더하여 주는 대길지(大吉地)가 아닐 수 없다. 물은 좌수가 도우하여 고분교에서 천안아산에서 내려오는 곡교천과 만나 유거하다가 바다와 만나는 진수구(眞水口)인 신술방위(辛戌方位)에서 그 교합이 이루어져 생기(生氣)가 일어나니 합법하다.


풍수적으로는 이 수법을 정고법(正고法)이라 한다. 그러나, 이렇듯 군왕의 자리로서의 모든 면을 갖추었지만, 어인사(옥쇄)가 보이지 않으니 하늘에서 권력이 없는 군왕지지로 천명(天命)을 내렸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이 자리의 역량과 그릇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일 것이다.


※이 비슷한 사례가 또 한군데 있으니,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 위치한 반기문 유엔 총장의 생가지와 조상의 음택자리이다. 이곳은 군왕이 나올 자리로서의 조건을 갖추었으나 권력이 없는 군왕지지에 준한 자리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비교적 권력이 없는 유엔 총장으로 10년을 재임한 것은 잘한 것으로 보인다.


▲ 윤보선 전 대통령의 선산 모습(아산시 동천리) - 출처 조수범
▲ 윤 전 대통령의 고조부모 묘소(그 위가 대통령의 묘소) - 출처 조수범
▲ 조산 안산의 모습 - 출처 조수범
▲ 우백호의 모습 - 출처 조수범
▲ 좌청룡의 끝부분 - 출처 조수범
▲ 주성의 모습 - 출처 조수범
▲ 멀리 보이는 조산의 모습(설화산과 광덕산) - 출처 조수범

이상, 윤보선 전 대통령의 양택지와 음택지를 풍수지리적인 측면으로 살펴보았는데, 윤보선 전 대통령이 태어난 생가지는 터와 좌향법 등 풍수를 적용하여 잘 설계된 길지(명당)이고, 조상들이 모셔진 선영은 천하의 명당 길지로서, 정혈(正穴)에 모셔진 자리의 영향으로 윤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아쉽게도, 구미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선산인 금오산의 금오탁시혈에 비해서는 역량이 조금 떨어지는 관계로 박정희 후보와 경쟁하게 되었을 때,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사례는 아무리 좋은 자리라고 할지라도, 항상 상대적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일 것이다.


▲ 영동군 매곡면 수원리의 혈토 사진(2013년)① 이곳의 혈토 덩어리 조금(주먹 반 정도 크기)을 수맥파 있는 곳에 놓고 수맥파 검사를 하면, 혈토가 수맥파를 차단하고 수맥파를 2~3 미터 정도 멀리 주변으로 밀어내는 힘을 보여줌 ② 상세설명 첫 번째 사진 : 3자(약 1m)에서 출토되기 시작하는 혈토의 모습두 번째 사진 : 혈토의 벽면(혈토부분이 시작함)세 번째 사진 : 혈토를 약 30cm 파고 들어간 모습(비석비토로 단단하고 질기고 윤기가 있으며 세밀하게 보면 5색토임 콩고물처럼 비벼짐) - 출처 : 조수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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