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김은배 인턴기자]브렉시트(영국의 유로존 탈퇴) 결정이 마치 탈 자유무역주의 신호탄이라도 된 듯 세계의 경제 가치관을 흔들고 있다.


영국이 EU를 탈퇴한 이후 바톤을 넘겨받듯 사실상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세계 최대 경제통합체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이탈을 주장하면서 지난 20년간 세계 통상 기조를 주관해온 ‘블록경제(bloc economy)’ 체제도 흔들리는 형국이 됐다.


문제는 이렇게 영국 미국 등 선진국이 자유무역주의에서 보호무역주의로 무게 중심을 기울이면 국내 경제에 치명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무역의존도는 90%에 이른다.


블록경제는 역외 국가의 교역 참여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만 기본원리는 자유무역주의다. 브렉시트의 발원지인 영국이 속한 EU처럼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들끼리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역내에서 이루어지는 교역은 관세 없이 자유로이 하자는 것이 근본적인 골자다.


그간 블록경제는 선진국들에게 유리한 점이 많은 것으로 여겨졌다. 자국과 역내 타국의 시장을 동등하게 개방할 경우 앞서는 경쟁력으로 역내 시장을 장악하는 등 획득 가능한 이점들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 ‘자유무역 더 이상 아군 아냐?’


이런 가운데 최근 선진국에서 블록경제가 오히려 손해 보는 일일 수 있다는 역발상이 시작됐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교역량 자체가 줄어들면서 기존의 이점이 감소한 반면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치안문제 및 자국민 일자리 감소 등 이전에는 생각지 못하던 문제점들이 하나 둘 씩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주요외신과 동아일보 등에 따르면 네덜란드 경제정책분석국은 작년 상품 무역액은 달러화 기준으로 지난해 보다 13.8% 하락해 2009년 이후 첫 하락세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일련의 인식변화는 美 대선 주자들의 행보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트럼프는 지난 28일(현지시간) 美 펜실베이니아 주 모네슨의 한 공장에서 한 유세를 통해 “TPP가 미국을 강간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집권하면 아직 비준되지 않은 TPP에서 탈퇴하고, 미국 노동자들을 위해 싸울 가장 강력한 무역협상가를 임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상대국과도 즉각 재협상에 나서고 미국 노동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각종 무역협정 위반 사항들을 상무장관이 확인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트럼프의 대척점에 있는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트럼프와 대립각을 만들지 않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보다 훨씬 보수적인 셈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호 교수는 “브렉시트보다는 트럼프의 당선이 세계 통상 흐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돼 각국이 서로 분쟁을 벌이고 보복을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보호무역주의 성향↑, 동아시아 수출국 심대한 타격


선진국이 자유무역주의에서 보호무역주의의 성향으로 변화하면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수출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 근래 한국은 수출이 17개월 연달아 감소하는 등 경제적 부진을 겪고 있는 중이다. 통상 분쟁이 실체를 드러내게 되면 타격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주요 언론에 따르면 국제무역연구원 류승민 수석전문위원은 “정부가 FTA를 통해 관세 장벽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보호무역주의 색채가 강화되면 관세 장벽이 부활하고 통상 마찰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난색을 표했다.


포스코 권오준 회장도 최근 임직원들에게 글을 통해 “전 세계에 확산되는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수출에 중대한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 통상의 목표는 중국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 철강제품 담합 조사, 상당량의 반덤핑 관세 부과 등으로 중국을 압박하면서 미중 무역 분쟁이 촉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러한 행보가 중국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과 중국은 수출품목이 비슷하다. 산업 연관성도 높다. 이러한 미국의 목표에 한국이 언제든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미국이 행사하는 반덤핑 관세, 상계 관세는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인 철강 및 금속 관련 제품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미국 내에서 한미 FTA 재협상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트럼프도 이날 한미 FTA와 관련 “2012년 클린턴 후보가 국무장관 시절 한미 FTA를 밀어붙였다”며 “그 여파로 대(對)한국 무역적자가 두 배로 늘었고 미국 내 일자리도 10만 개나 사라졌다” 힐러리를 공략함과 동시에 보호무역 색체를 드러냈다.

국제 전문가들은 보호무역에 대한 흐름이 확산되면 한국의 통상정책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간 양자 FTA체결에 힘써왔던 정부는 작년 TPP 타결을 시작으로 다국 간 협약인 ‘메가 FTA’추진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TPP 및 한중일 FTA,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이 동시다발적 진행이 일어나고 있다. 다만 협상이 큰 진전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서진교 무역통상본부장은 “그간 미국, EU 등 선진국들이 블록경제를 주도해 왔는데 이 나라들이 보호무역주의로 기울게 되면 메가 FTA 흐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통상에 미칠 영향을 냉정히 분석해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브렉시트 이후 가속화 되는 보호무역주의 회귀 움직임이 어떤 국면에 다다를지 세계의 관심이 쏠린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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