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대망론, 평가는 국민 몫...분위기로만 대통령 되는 것 아니다”

▲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


[스페셜경제=김영일 기자]새누리당 홍문표 의원은 4·13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의 꽃이라 불리는 3선 고지에 올랐다. 홍 의원은 재선을 하는 동안 상임위원회를 바꾸지 않았다. 3선을 달성한 20대 국회에서도 그동안 고집해왔던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펼칠 것으로 관측된다.


홍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한 켠에는 ‘농어촌·농어민이 잘 살아야 대한민국 강한 선진국 된다’라는 표어가 적혀 있을 뿐 아니라 명함에도 같은 문구가 명시돼 있다. 이는 홍 의원이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 농어촌 지킴이임을 잘 보여주는 증거이며, 어떻게 하면 농어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국회 대표적 농어촌 지킴이이자 20대 총선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이었던 홍 의원을 만나 각종 현안과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공천에 대해 들어봤다.


정의화 국회의장과의 인과관계
자의적·정무적 판단‥‘외부압력’


“아침·저녁으로 생각이 바뀌는 건 자기 생각이 아니라고 본다. 저녁 때 결정해서 내일 아침에 (공천결과를)발표하자고 하면, 아침에 또 정무적으로 판단을 해야겠다고 했다”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공천 당시 이한구 공관위원장에게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나?’라는 물음에 이와 같이 언급했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나흘간 이어졌던 연휴를 뒤로하고 한낮 서울 기온 24도를 기록했던 지난 9일 <본지>는 홍문표 의원과의 인터뷰를 위해 국회 의원회관을 찾았다.


홍 의원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홍 의원은 누군가와의 통화 도중 본지를 반갑게 맞으며 다시 통화를 이어 갔다. 그리고 나서는 곧 통화를 끊고, 차 한 잔 마시고 인터뷰를 시작하자며 본지에게 숨 돌릴 틈을 주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홍 의원은 점잖게 인터뷰에 임했다. 그러나 점잖은 분위기와는 달리 홍 의원의 어투와 억양에는 자신만의 소신과 철학이 명확하게 배어 있었다.


다음은 새누리당 홍문표 의원과의 일문일답이다.


Q : 4·13총선에서 더민주 강희권 후보와 국민의당 명원식 후보를 꺾고 당선되신 것 축하드린다. 일단 홍 의원을 뽑아주신 지역민들에게 한 말씀 하셔야 할 것 같은데.


- 지난해 예결위원장을 하면서 지역에 자주 못 내려가 갔고 올해도 공천관리위원을 맡으면서 지역에 자주 못 내려갔는데, 지역민들께서 큰 표차로 당선시켜주신데 대해 지역민들에게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지역민들에게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 다만, 이번 총선 선거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특히, 그 과정도 좀 아쉽다. 이런 선거를 또 치르면 안 되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다.


Q : 총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김무성 전 대표는 물론 정의화 국회의장이 깜짝 방문해 지원 유세를 펼친 것으로 안다. 정 의장은 자신이 보증하는 후보가 홍 의원이라며 지역민들에게 지지를 부탁했다. 정 의장이 유일하게 지원유세에 나선 인물이 홍 의원인데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나하고 의장님은 정치적인 것보다는 17대부터 인간적으로 신뢰를 하는 그런 인과관계가 있다. 내가 의장님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소위 말해 국회의장이 권력에 좌우되지 않는 그런 소신을 봤기 때문이다.


- 국회의장이라도 정치의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의 소신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서 소임을 다하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애정이나 존경심에 우러나오는 말을 가끔 (의장께)드리곤 했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 생각이 같은 걸 느끼고 신뢰가 쌓였던 게 아닌가 한다.


▲ 인터뷰 중인 홍문표 의원과 스페셜경제 김영덕 편집국장
- 또 하나는 국회 예결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할 당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18조 가량의 세금이 덜 걷혔는데, 그러다 보니 국가 예산을 편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 당시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도 우선순위의 힘의 논리가 작용됐다. 그 때마다 나는 그걸 거부하고 의장께 찾아가서 논의도하고 어려운 점을 얘기했는데, 의장도 국가 예산을 편성함에 있어 힘의 논리가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 마음과 같았다.


- 그런 어려움 속에서 결과는 12년 만에 처음으로 제 날짜(12월 2일)에 예산이 통과됐다. 저로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그 부분을 의장께서도 높이 평가했다. 당시 ‘작품(제 날짜 예산통과)’이 이뤄진데 대해서 서로의 인과관계가 더 깊어졌다.


- 그런 인과관계 때문인지 선거운동 중에 생각지도 않게 충남 예산군 광신면이라는 작은 마을에 나타나셔서 선거운동을 해주시는데 깜짝 놀랐다. 정말 깜짝 방문이었다.


Q : 새누리당 제1사무부총장으로서 20대 총선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때문에 공천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가 잘못된 공천 때문이라 지적하고 있다. 공천 과정을 모두 지켜본 홍 의원의 생각은 어떤가?


- 먼저 국민과 당원들에게 참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국민에게 집권당의 당당한 공천을 하지 못한데 대해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누구를 탓하기 전 공천관리위원 일원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죄송할 따름이다.


- 우리가 이번에 새로 발견하고 보완해야 할 점은 공천의 기본바탕인 당헌당규에 공천관리위원장이 자의적 또는 정무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아주 섬세하게 매뉴얼(당헌당규)을 짜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있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게 아닌가 한다.


- 당헌당규를 충실히 이행하면 누구든 승복을 하고 이해를 하는데, 소위 공관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자의적·정무적 판단을 한다그러면, 자의적·정무적 판단은 외부압력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 자의적·정무적 판단에 따라 갈등이 생기고 시비가 붙을 수밖에 없다. 이런 갈등과 시비는 국민들이 싫어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다.


▲ 홍문표 의원이 20대 총선 공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다 아는 얘기지만 황진하 사무총장하고 나하고 당헌당규를 지키자는 주의였다. 공관위에서 3일이고 일주일이고 계속 공천을 놓고 논쟁을 펼치다가 마지막에는 투표하자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 투표 결과는 11명 중 9대 2나 8대 3으로 나왔다. 이런 과정에서 트러블이 나왔고, 국민들은 그런 트러블을 싫어했다.


- 당헌당규를 지켜야 함과 트러블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괴리 속에서, 두 달간 엄청남 시달과 고뇌가 있었다.


Q : 당시 이한구 공관위원장에게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나?


- 아침·저녁으로 생각이 바뀌는 건 자기 생각이 아니라고 본다. 저녁 때 결정해서 낼 아침에 (공천결과를)발표하자고 하면, 아침에 또 정무적으로 판단을 해야겠다고 했다.


- 그럼 그게 자기 생각인지 남의 생각인지는 감으로 식별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 외부 공관위원들도 당의 깊은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위원장이 결정하면 대부분 따라갔다.


Q : 지난 18일 충청 맹주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충청권 당선인들과의 만남에서 ‘이제 충청에서도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충청 역할론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원내대표도 충청 인사인 정진석 원내대표가 당선됐는데, 나아가 전당대회와 대선정국까지 충청권 인사들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 단순논리로의 충청권 역할이라기보다는 복합적인 역사적 배경이 있다. 첫째로 충청권이 인구가 많다는 것을 대세로 봐야 하고, 둘째로는 충청권이 생산하고 있는 경제적·생산적 효과와 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 인구와 경제적 효과, 이 두 가지는 호남보다 충청이 많다. 그렇다면 충청이 이제는 국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논리가 맞다. 뒤집어 얘기하면 영호남이 55년 동안 대한민국 정치를 좌우해 왔다. 충청은 곁불이나 쬐고 따라다니다 끝났다.


- 일례로 장애인 편의시설 같은 것도 영호남이나 강원, 충청이 다 똑같아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러나 장애인들이 전국대회를 하는 것을 보면 충청은 목발 짚고 오고, 영호남은 전동차 타고 온다면 화합이 되겠느냐.


- 그런 경우를 많이 봤다. 이명박 전 대통령 경제2팀 인수위원회 하면서 봤고, 예결위원장 돼서 그걸 바로 잡느라 많이 노력 했다.


▲ 충청 역할론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홍문표 의원
- 국가균형발전은 곧 국민 화합이라 생각한다. 충청권이 인구가 많아지면서 그런 기회(국민화합)가 자연스럽게 온 것이다.


- 국민화합으로 인한 국가균형발전 능력을 우리 충청인이 발휘해야 한다. 충청인이 인정받으려면 국민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충청이라 해서 이제 때가 됐다는 논리보다 국민에게 인정받으려는 능력을 발휘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반기문 대망론, 평가는 국민이
‘농·어민 사각지대’ 해결해야…


Q : 충청 인사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망론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나?


- 현재 분위기로 봐서는 대통령이 될 것만 같은 분위기이나, 대망론이라는 것은 분위기로만 될 수는 없다.


▲ 홍문표 의원이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국민이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것은 시대적 영웅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충청의 역할이 커지는 현재 분위기에서 반기문 대망론은 호재라고 생각하나, 과연 반 총장이 국민에게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그동안의 노력이 보였는가 하는 것은 별개라고 본다. 반 총장에 대한 평가는 국민이 할 것이다. 분위기로만 대통령을 해서는 안 된다.


Q : 홍 의원은 재선을 하면서 한 번도 상임위원회를 바꾸지 않은 것으로 안다. 20대 총선을 통해 국회의 꽃이라 불리는 3선으로 거듭났다. 20대 국회에서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농어민들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데 집중할 계획인가?


- ‘농어촌 농어민이 잘 살아야 대한민국 강한 선진국 된다’는 게 나의 소신이자 철학이다. 우리 5000만 국민의 먹거리는 농어민들이 생산한다. 그들이 병들고, 나이 먹고, 빚져 있으면 대한민국의 희망이 없는 거다. 그런데 지금 그런 지경에 와 있는 것이 현실이다.


- 다국적 FTA가 오고 있으며 기후변화가 오고 있는 상황인데, 이걸 농어민보고 해결하라고 하면 그들이 해결할 수 있겠나.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걸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하고 다각적 방안이 나와야 한다.


- 그래서 사무실에 ‘농어촌 농어민이 잘 살아야 대한민국 강한 선진국 된다’는 표어를 써 붙이고 명함에도 명시하고 있다. 누굴 만나더라도 명함을 주면서 그 표어를 꼭 보라고 강조하고 있다.


▲ 홍문표 의원의 소신이자 철학이 담긴 표어가 사무실과 명함에 적혀 있다
- 이렇게 하지 않으면 32년 전 멕시코 같이 된다. 당시 멕시코는 주변국 농산물이 싸서, 계속 사먹다 보니 멕시코의 씨종자가 없어졌다. 나중에는 그 씨종자가 금값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멕시코가 국가 부도로 이어지지 않았나.


- 지금 우리나라 제사상에 10개 중 8개가 외국 농산물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싼 걸 사먹다 보면 우리나라 씨종자도 없어질 판이다. 나중에는 씨종자 속국이 될 수도 있다.


- 대한민국이 양 적으로 팽창한 만큼 질적으로 팽창해야 할 시기에, 농어민·축산인이 지금처럼 사각지대로 몰리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


- 남북통일 역시 농업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에는 퍼주기, 햇볕정책 등 아무리 많이 퍼주어도 결국에는 폭탄으로, 미사일로 돌아왔다. 이제 그런 것(퍼주기)은 그만하고 정말 배고픈 북한 주민을 인간애로 감싸기 위해서는 농업기술로 통일의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


- 예를 들면 북한에 농기계를 빌려주어 논을 바둑판처럼 가꿀 수 있는 기반 조성을 해주거나, 물 관리 하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작물을 심고 재배하는 방법, 추수해서 보관하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 이런 기술 전수는 결국 물고기를 잡아 먹여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자는 것이다. 북한 동포에게 식량을 퍼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농어업은 우리 국민에게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기에, 통일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이 때문에 계속 농해수위를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 농해수위는 항상 미달이다. 이게 바로 우리 농어민들의 현 주소가 아닌가 한다.


Q : 지난 18일 총선 직후 고생한 당직자들을 위해 당선인 중 제일 먼저 당직자들의 노고를 격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 의원 역시 청년시절 당직자로 정치에 입문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치에 입문한 계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


▲ 질문에 귀 기울이고 있는 홍문표 의원
-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던 유진오 박사와의 인연으로 과거 안국동 로타리에 있는 신민당에 입당했다. 그 때부터 당직자 생활을 하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정치 입문을 당직자로 시작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당직자들의 고충을 잘 안다.


- 이재오 선배와 김문수 등과 함께 조직 담당이나 부총장 역할을 했고, 이회창 총재를 대통령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 당시 이 총재는 내가 전국구라도 달라고 하면 국가를 경영하자는데 국회의원이 전부냐 해서 국회에 입성할 수 있는 기회를 몇 번 놓쳤다. 그래가지고 그 뒤부터는 자력으로, 무소속으로 출마해 지금껏 생존해 있다.


- 현재 당이 총선에 참패 했어도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당직자 회의를 하고 있다. 당은 국회의원을 만드는 공장 같은 곳이다. 당직자들에게 당의 긍지를 가지고, 앞으로 당을 잘 맡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3~4차례 식사를 함께 하며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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