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이 함축적인 단어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대한 서사로는 부족하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설렘과 막연함, 새로운 환경과 문화의 접촉, 낯선 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매번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에 남는 아련함까지…….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 권도윤 기자가 경험한 여행의 순간을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편집자주>


잠자리가 해결되니 두바이도 지낼만한 곳이었다. 두바이의 첫 일주일은 그동안의 고생스럽던 여행이 아닌 휴양처럼 보내면서 이 나라를 알아갔다.


첫날에는 크게 못느꼈는데 머물러 있다 보니 햇볕이 여간 강렬한게 아니다. 15분이 채 안되는 시간 웃통벗고 있다가 가벼운 화상을 입을 정도다.


무료인 공공샤워장에 온수가 나와 놀랐는데 알고보니 태양열에 수도관까지 달궈져서 그런 것이었다. 공공시설은 어딜 가나 미지근한 물 뿐이다.


이 더운 나라의 버스정류장은 사방이 유리로 막혀 있고 사람들은 태연히 그 안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대체 덥지도 않나? 시내버스는 나와 상관없지만 호기심에 버스정류장에 들어가 보니 에어컨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육교도 튜브처럼 생긴게 좀 특이하다. 가보니 역시 육교에도 에어컨이 나온다. 이게 산유국의 힘이구나.


이렇게 더워서인지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워지기 시작하면 박물관이나 쇼핑몰, 까페, 패스트푸드점 등 에어컨이 나오는 곳을 찾아다니는게 낫다.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는 12디르함(약 3,600원)정도. 한국과 비슷한 정도다. 중동의 한 낮 더위는 자전거여행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러운 휴식시간을 선사한다. 좋은 점은 빨래가 금방 마른다는 것.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다시 움직일 시간이다. 주로 저녁에 주행하다 보니 야경이 더 익숙하다. 인도의 야간주행은 매우 위험했지만 여기는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 오히려 저녁이 더 상쾌하게 달릴 수 있다.


그래도 고가도로는 항상 골칫거리다.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한 번에 목적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버즈 칼리파에 갈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앞 버즈 칼리파를 두고 도로 출구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수차례 시도 끝에 도착한 입구는 거주자 전용이라 경비원이 제제한다. 이 빌딩은 주상복합이었다. 흠. 주거용이라, 엘리베이터 고장이라도 나면 난감하겠다.


자전거 여행의 장점은 현지인들과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시와 도시 간을 이동하면서 차량으로는 놓칠 작은 마을들. 또 자전거 여행 자체를 신기하게 보면서 환대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배낭여행보다 훨씬 더 가깝게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외국인이 90%인 나라


그런데 이곳, 두바이에서는 이런 공식은 안통한다. 현지인(Emirati)들과 가까워 지기는 쉽지 않았다. 이 나라 자체가 외국인이 88%이며 두바이는 90%가 넘어간다고 한다. 현지인은 소수이지만 전통복장을 입고 있어서 인식하기는 쉬운데 대체 어디서 뭘 하는지 눈에띄지 않는다. 저녁에는 까페 등지에서 시간을 때우는데 전통복장이 주는 위화감에다 여러명이 몰려다녀 말 한마디 붙일 기회도 없었다.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상당수 진출해 있다고 하는데 낮에 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친구가 되어주는건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온 육체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건설현장, 환경미화원, 운전기사, 시설 관리요원, 마트 계산원, 식당 종업원 등 곳곳에 포진해 있으며 가게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오픈 비치의 인명구조원도 필리핀 친구였다.


특히 인도인들은 인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항상 호기심이 많다. 인도에서는 정말 귀찮기 그지없었지만 여기에서는 늘 말벗이 되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한화 60~100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으며 비자 문제가 이상하게 되어 있어서 퇴사 즉시 쫒겨난다고 한다. 이는 운전기사 등 개인에게 고용되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항상 고용주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주거는 열악한 공동숙소에서 하지만 개인고용일 경우 고용주가 방 한칸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불법체류를 막기 위해서인지 육체노동자의 경우 가족 초청도 불가능하다.


처음 UAE에서 질서정연한 차량에 놀란 적이 있었다.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 인도에서 와서 더욱 그런것일 수도 있지만 과할 정도였다. 사람이 없더라도 횡단보도가 보이면 정지선 1m 앞에서 정차하지만 신호가 바뀌면 바로 튀어나가니 느긋한 운전은 아니다.


놀랍게도 개인 기사는 인도출신이 많다. 인도의 교통문화를 알면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알고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법이 엄격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속도위반 벌금 600디르함(약 180,000원) 표지판을 본 적이 있다. 이건 약과고 속도에 따라 벌금은 더 올라가며 신호위반 벌금은 2,000디르함이 넘는다고 한다. 신호 한 번 어기면 이들 한달 월급이 사라지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두바이 생활은 생각보다 안전했다. 비싼 숙박비 때문에 짐을 보관할 곳이 없었는데 자전거에 전 재산을 실어놓고 여기저기 구경하고 나와도 그대로 있다.


알고보니 GDP가 50,000달러가 넘는 UAE 국민들은 자전거의 짐 따위는 관심도 없으며 외국인 노동자들도 추방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의 물건을 건드릴 이유가 없다. 또한 이런 강력한 법의 기반에는 절도시 손목을 절단했다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Sharia)가 자리잡고 있다.


다만 노동자들이 UAE를 보는 눈빛은 곱지 않은 듯 했다. 오픈 비치의 인명구조원은 UAE 국민이면 태어날때부터 모든게 무료고 결혼을 하면 나라에서 지원금까지 나온다고 한다. 두바이 사람들은 프라이드가 강하다는 말에서 어딘가 모를 반감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