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윤의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기]산악국가의 진수 네팔 28탄

권도윤 / 기사승인 : 2015-10-11 09:51:45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고생끝에 도착한 카트만두(Kathmandu)의 첫인상은 인도와 다를 바가 없어 보여 많이 실망스러웠다. 그렇다고 숙소에 죽치고만 있을 수는 없다.


타멜(Thamel) 거리를 시작으로 중세 네팔의 모습이 남아있는 두르바르(Durbar) 광장과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 사원, 또 카트만두 시내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카트만두에 며칠 머무르다 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거리가 지저분한데 비해 사람들은 아침마다 집 앞 골목길까지 깨끗하게 청소한다. 이 모순은 뭘까 확인해 보니 시스템의 문제였다. 모아 놓은 쓰레기가 처리되지 않으니 이리 저리 날리고 결국 가장 낮은 강변으로 흘러들어간다. 매일같이 청소하지만 인도와 다를 바 없는 결과라니 조금 허무하다.


예정된 날짜가 되어 시내에서 약 7km가량 떨어진 트리부완(Tribhuwan)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마지막 주행도 끝까지 쉽게 보내주지 않는 오르막길, 역시 네팔이다. 공항 청사 앞에서 자전거를 분해하고 탑승 수속을 밟으며 네팔 여행을 마무리했다.


네팔 여행을 마치며


큰 기대 없없고 스쳐 지나가리라 생각했던 네팔이 남긴 여운은 진했다.


너무나 아름다웠던 안나푸르나에서 나를 다시 돌아볼 기회도 가졌고 좋은 만남으로 여행은 더욱 다채로워졌다. 산길의 진수를 보여준 곳이기도 하다. 8000m가 넘는 산이 즐비한 산들의 고향. 오죽하면 국기조차 산을 닮았다.


네팔인들의 외모는 언뜻 인도인과 분별이 힘들 정도이지만, 평균적으로 뚱뚱한 사람이 더 적다. 인종은 산악지역의 많은 소수민족들로 구성되어있고, 티베트 난민들도 상당수 그들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포카라에 있는 티베트 마을은 주민들이 삶을 일구어 나가고 있는 평범한 마을이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네팔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나와 똑같은 사람들일 뿐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전통 학교와 사원을 운영하는 등 티베트의 문화와 자부심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독립된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재미있게도 티베트는 한국과 비슷한 점도 많다. 칼국수와 흡사한 뗌뚝, 수제비 같은 뚝바, 일종의 물만두인 모모 등 티베트 음식은 인도에서 사용하는 향신료인 마살라 향이 나지 않아 더욱 좋았으며 우리와 외모도 비슷하다.


경전을 기록한 오색 천을 사원 등에 걸어 놓은 다르촉(Darchor) 혹은 룽다(Lungta)는 마치 서낭당을 떠올리게 한다. 언어도 유사성이 있다는데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고무줄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들을 보면 정말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티베트인들이 네팔에 살게 된 이유는 한국전쟁 당시 국제사회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된 틈을 타서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했기 때문이다. 그때 인도와 네팔이 난민들을 받아주었고 종교·정치지도자 달라이라마는 인도 다람샬라에 망명 정부를 세웠다. 많은 티베트인들이 달라이라마를 따라 이주했으나 아직도 대부분은 고향인 티베트에 남아 있으며 독립의지를 알리고자 심지어 분신자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티베트는 중국과 역사·문화·종교·언어 등 전혀 다른 나라이며 중국은 제3세계가 줄줄이 독립한 가운데 티베트를 무력 침공한 20세기 마지막 제국주의 국가라고 성토한다. 마치 상해임시정부가 떠오르는 이야기다. 우리도 36년간의 식민지 시절을 겪지 않았나? 독립을 향한 티베트인들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비슷하면서 다른 인도와 네팔


네팔은 힌두교가 다수이지만 종교가 삶에 미치는 영향은 인도보다 덜한 듯 하다. 인도와 같은 문자를 사용하지만 영어가 훨씬 잘 통했고, 발음 역시 조금 더 친근했다. 아마 관광객을 상대하기 위해서 혹은 외국에 노동력을 제공해온 결과가 아닐까?


반면 인도보다 더 가난한 네팔의 식재료나 공산품은 더 비싼 편이었다. 농지도 부족하고 산업 기반이 취약하여 대부분의 생필품은 인도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전기 사정도 안좋아서 마을마다 아예 정전 시간이 공지되어 있다. 그러나 그곳의 사람들은 구김살 없이 밝고 따뜻했으며 산처럼 넓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갖춰진 조건은 더 부족하지만 네팔은 인도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뭐랄까? 더 인간답게 살려 하는 노력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삶의 모습속에 발전 가능성이 엿보인다. 네팔인들의 가난은 그들의 게으름에 기인한게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내가 본 네팔인들은 매우 부지런했다.


다만 중국의 지원을 받은 마오이스트(모택동주의자)들이 게릴라전을 펼치며 정부를 뒤엎었고 민간인을 약탈하는 등 정치적 혼란이 있었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마오이스트 산적들이 활개치고 다녔다고 한다.


근면하고 성실한, 땀과 노동의 대가를 아는 사람들. 인도와 종교·언어·문화를 공유하고 있지만 넓은 국토와 농경에 좋은 환경에서 빈둥거리는 인도인들과 삶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랐다. 80% 이상인 산지에 계단식 논밭을 일구고 기회가 되면 인도나 더 먼 외국으로 나가 외화를 벌어오는 모습은 부모님 세대의 고생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 인도의 가난은 삶에 대한 무관심과 부족함 없는 자연환경의 부작용이라면 네팔의 가난은 자본·인프라의 부족과 함께 최근까지 이어진 정치적 불안정의 산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삶에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쩌면 인도보다 네팔이 더 빨리 발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네팔 생활을 끝마쳤다.


[저작권자ⓒ 스페셜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오늘의 이슈

뉴스댓글 >

주요기사

+

이슈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