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룸비니에서 푹 쉬면서 향후 일정을 정했다. 무엇보다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인 안나푸르나(Annapurna) 트레킹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 약 200km가량 떨어진 포카라(Pokhara)로 발걸음을 옮긴다.


네팔은 산악 국가로 유명하지만 룸비니 부근은 의외로 평지였다. 도로 상태는 썩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주 나쁜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파손 즉시 수리한 흔적도 종종 보인다. 역시 인도에서는 기대할 수 없던 일이다. 주위에 보이는 주택은 자극적이지 않은 파스텔톤으로 산뜻하게 칠해져 있다. 사람들도 귀찮게 하지 않아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편안한 주행기은 얼마 가지않아 끝났다. 룸비니에서 약 35km 떨어진 부트왈(Butwal)이 마지막 평지였다. 지도를 봐도 인도는 거대한 평원인데 비해 부트왈을 필두로 네팔 중북부 지방부터는 거대한 산맥이 병풍처럼 이어져 있다. 산자락은 동쪽으로 에베레스트(8,848m)를 지나 부탄 으로 이어지며 북서쪽으로는 세계 제2고봉인 파키스탄의 K2(8,613m)를 지나 고선지 장군이 넘었던 파미르 고원으로 이어진다.


입은 화의 근원


부트왈 시내를 벗어나자 산악도로인 싯다르타 도로(Siddartha Rajmarg·H10)가 나타났다. 지도를 볼 필요도 없이 도로만 따라가면 포카라다. 사람 살고 차 다니는 길이니 이동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도로를 채 1km도 달리기 전에 후회가 밀려왔다. 엄청난 오르막길의 연속으로 여기에 비하면 첫날 나를 괴롭힌 데칸고원은 뒷동산일 뿐이다. 구겨놓은 종이처럼 구불구불한 도로는 해발 400m~1,000m를 넘나든다. ‘대체 무슨생각으로 이 길을 자전거로 가려고 했을까? 다시 룸비니로 돌아가서 버스로 이동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스님과 다른 여행자들에게 포카라에 가겠다고 호언장담한게 떠올랐다. 말이나 하지 말걸. 역시 입은 화의 근원이다.


금새 체력이 고갈되어 더는 못가겠다 싶었는데 마침 바퀴살까지 부러졌다. 이제 이런 작업은 금방이다. 인도에서처럼 구름같이 몰려들어 방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다행이지만 이 길을 대체 언제 갈꼬.


다시 출발하려는데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게다가 해도 지고 있다. 혹시 모를 위험한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마을에서 적당히 떨어져야 하며 산중이니 야생동물 습격을 고려해 마을과 인접한 숙영지를 찾아야 한다. 산사태가 나도 안전하도록 산과도 떨어져야 하며 차가 전복되거나 강풍에 대비하여 벼랑쪽도 위험하다. 도무지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케라바리(Kerabari)라는 마을에서 한 식당에 숙소를 문의하니 300루피(약 3,900원)에 방을 내 주겠다고 한다. 이런 길을 며칠이나 더 가야할지 모르니 제대로 쉬는게 낫겠다 싶어 투숙을 결정했다.


호텔이라는 간판조차 없었지만 방은 매우 깨끗했다. 특히 남동생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주인 아주머니는 이 마을에서 한국인을 본 것이 처음이라면서 매우 반겨주셨다. 하긴 굳이 찾아올 이유가 없는 마을이다.


침대에 눕자 “아이고”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종일 달린 거리는 59km뿐이다. 그것도 룸비니-부트왈의 평지를 제외하면 반나절 동안 고작 25km를 달린 셈이다. 걷는것과 비슷한 속도다.
다음날 무제한 리필되는 달밧(네팔식 정식)을 두 접시나 비우고 길을 나섰다. 산길의 경사와 난이도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단지 힘들다는 생각 뿐이다. 지쳐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경치가 기가 막히다. 가만, 여기도 안나푸르나 산자락이잖아? 굳이 포카라에 가서 트레킹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 절경을 즐기는것도 괜찮겠다. 욕심내지 말고 과정과 이 경치를 즐기기로 했다.


중간중간 산사태의 흔적이 보인다. 산기슭 마을은 항상 위험을 안고 사는구나. 애써 고개에 오르면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와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내리막 끝자락에는 옥빛 계곡이 자리잡고 있다. 석회가 녹아들어서일까? 물 색이 이럴 수 있다는게 신기할 뿐이다.


하루종일 산과 씨름한 끝에 50km를 달렸다. 반은 내리막이었으니 사실상 하루종일 25km 오른 셈이다. 25km는 길만 좋으면 한 시간에도 달릴 수 있는 거리지만 이 길을 감당하니 탈진상태다. 나라얀 빠르사드(Narayan Parsad) 라는 마을에서 300루피에 방을 구했다.


다시 반갑지 않은 해가 떠오른다.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지만 길을 나서야만 한다. 길에서 자전거 탄 서양인들을 만났다. 잠시 이야기를 나눠 보니 앤과 스티브, 다이애나라는 호주인으로 투어 프로그램 참가중이었다. 짐은 차에 싣고 평탄한 구간만 자전거로 즐긴다. 40kg에 달하는 짐을 얹은 나는 영락없이 ‘Crazy Guy’ 소리를 들어야 했다.


주화입마(走火入魔) 정체는 근육통?


동행이 생겨 즐거운 것도 잠시, 얼마 후 가파른 오르막이 나오자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다시 혼자 남겨졌다. 의욕마저 떨어져 길가에서 쉬고 있는데 이번에는 산악자전거 한 대가 나타났다. 네팔에 거주하는 독일인인데 포카라에 가는 길이다. 짐은 아내가 그 전날 다 실어갔다고 한다. 짐이 없는 그는 바람처럼 달렸고 나 역시 그에게 안지겠다는 오기 하나로 뒤따라갔다.


달리기도 그렇듯이 앞에 한 명이 있으면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다. 약 두 시간 동안 혼자서는 생각도 못할 구간과 거리를 달려냈다. 주행거리는 벌써 60km를 넘겼다.


그러나 무협지에 따르면 무리한 내공 사용은 항상 주화입마를 부르는 법이다. 이제 포카라를 불과 30km가량 남았으나 더 이상은 못 가겠다. 심장은 터질 듯 뛰고 펌핑이 가득 된 다리는 제대로 접히지도 않아 걷기도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걸렀구나.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다. 길가에 자리잡고 식사를 준비한다. 산길에서 먹는 라면은 꿀맛이다. 쉬는 김에 좀 누워있고 싶었으나 빗방울이 떨어진다. 에휴, 어쩌겠나. 갈 수 있는데 까지 가봐야지.


해발 1,200m 고지를 넘어서면서 비가 그쳤고 길은 내리막이다. 포카라는 해발 800m니 이제 고생 끝인가?


그러나 조금 내려가는가 싶더니 이내 오르막이 나타났다. 끝도 없는 산길이고 이미 주위는 깜깜해져 있었다. 더 가는건 무리다 싶었으나 길가에 쉴 곳도 없다. 끝까지 가 보자.


한참 후 멀리 불빛이 보인다. 저게 포카라구나. “우어, 포카라! 포카라!”를 외치며 마지막 힘을 다했다.


시내 공터에 서자 다리가 풀려 드러누워버렸다. 2박3일간의 사투끝에 포카라에 도착했다. 다시 하라면 절대 안할 것이다. 고생 좀 하면 정신을 차릴 줄 알았는데 미련함만 남은 걸 보니 육체적 고생과 철드는 것은 별개인가 보다. 하긴 힘들어서 정신 차린다면 군대 등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도로 중간의 절경과 네팔사람들의 환대, 그리고 네팔의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차를 탔으면 절대로 보지 못하고, 느낄 수 없었던 것들. 해 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로 주린 배를 채우며 포카라의 일정을 시작했다.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