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산치(Sanchi)는 보빨(Bhopal)에서 북동쪽으로 46km 이격된 작은 마을이다. 규모는 작지만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다. 바로 마우리아 왕조(B.C. 322~B.C. 185)의 아쇼카 왕(Ashoka·전륜성왕)이 불교로 개종한 후 부처님의 사리탑인 스투파(Stupa)를 세운 것이다. 아마 현장스님(삼장법사)이나 혜초스님도 이곳을 다녀갔을 것이다. 물론 보빨보다 저렴한 숙박비도 큰 장점이다.


진흙속에서 건져낸 텐트를 빨자 마침 햇볕이 난다. 침낭과 눅눅해진 옷가지도 모두 널어놓았다. 간만에 샤워까지 하니 더없이 상쾌하다.


조금 상황이 나아지니 그제서야 도전(盜電)하던 청년들이 떠올랐다. 마댜 프라데시 주에서는 밤마다 도전하는 모습을 수차례 봤다. 군데군데 피복이 벗겨진 전선을 질질 끌고 와서 전신주에 연결하면 멀리 떨어진 마을에 불이 켜진다. 새벽 동이 틀 무렵이면 다시 전선을 걷어간다. 범죄이기에 앞서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21세기에 전기가 안들어와서 몰래 끌어써야 하다니. 그것도 IT강국이라는 인도에서……. 아마 전기 보급이 안되었다기 보다 비싼 전기요금때문이겠지? 비가 내렸는데 전선은 안전하게 철수했을까?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산치의 ‘의미있는’ 이발


야영을 할 때 물을 구할 수 없으면 물티슈를 이용해서라도 대충은 씻는데 머리만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헬멧 속에서 땀 흘리고 방치하면 근질거린다. 결국 짧은 머리가 최고다. 부르한푸르(Burhanpur)에서 이발했지만 쥐 파먹은 듯 들쑥날쑥하다.


이발소를 찾았다. 이발사는 영어를 전혀 못했으나 옆에 지나가던 청년이 통역에 나섰다. 이발비를 30루피(약 600원)로 깎아주는게 믿음직해 보인다.


짧게 잘라달라고 요구하니 “레이저?”라고 반문한다. 레이저는 뭘까? 마침 부르한푸르에서 엉망으로 자른게 떠올랐다. 레이저 절단처럼 정밀하게 자르나보다. 심지어 수술도 레이저로 한다지? 레이저 절단처럼 깔끔하게 잘라달라고 했다.


이발사는 대답없이 분무기로 머리에 물을 뿌릴 뿐이다. 그리고 잠시 후, 날카로운 칼을 가져와 정수리부터 밀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알고보니 레이저(laser)가 아니라 면도칼(razor)이었다. 이럴수가.


다시 붙일수도 없는 노릇이다. 불교의 성지에서 머리를 민 것도 나름대로 의미있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 쳐다본다. 그러고 보니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 스님은 고사하고 머리 민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알고보니 인도에서는 상주(喪酒)만 삭발하는데 뒷머리를 조금 남긴다. ‘에휴, 인도인들 관심 끌 요인만 하나 더 생겼구나’


인도에서 느낀 경주


다음날 드디어 스투파로 향했다. 입장료는 인도인은 10루피(약 200원), 외국인은 250루피(약 5000원). 학생할인 등 기타 할인혜택은 전혀 없다.


스투파는 어딘지 모르게 ‘경주’와 분위기가 흡사하다. 경주 노동리 고분군처럼 둥근 스투파는 동서남북 4개의 또라나(입구)를 갖고 있었다. 각 또라나는 부처님의 일대기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부처님을 ‘말(馬)’이나 ‘보리수나무’ 등 대부분 비유로 표현해 놓아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화려한 북쪽 또라나는 신라 금관 장식이 떠올랐고 가장 오래된 남쪽에는 아쇼카 왕의 문양이었던 4마리의 사자가 조각되어 있었다. 이 아쇼카왕의 사자 문양은 오늘날에도 인도의 상징이고 동전에도 새겨져 있다. 서쪽에는 도깨비 같은 녀석들이 벌서는 듯 한 자세로 문을 받치고 있다. 손오공처럼 부처님한테 대들었나보다.


스투파 뒤에는 ‘짜이따’라고 부르는 기둥만 남은 신전이 있었다. 바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이 떠오른다.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원정을 하면서 남긴 간다라 양식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우 닮아있다. 반면 벽돌을 반듯하게 쌓은 돌무더기는 첨성대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봐도 경주같다.


그린 산치, 클린 산치


이러한 산치도 전력 사정은 좋지 않은지 수시로 정전된다. 머물고 있는 숙소의 주인 딸 자매는 정전이 되면 가스등을 켜놓고 공부한다. 힌디어를 쓰는 모습에 흥미를 보이자 큰딸이 선생을 자처한다. 초등학생정도 되었을까? 선생님이 있지만 굳어버린 머리는 힌디어 앞에서 영락없는 까막눈이다. 그래도 약간의 수확은 있어서 이름 석자(कवॅान दो़यून)는 쓸 수 있게 되었다.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사서 수강료를 대신했다.


스투파를 가진 산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인도에서 찾아보기 힘든 조용함. 처음 생각했던 인도의 이미지와 가장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길가에 굴러다니는 쓰레기가 없고 깨끗하다. 이유는 아침마다 거리를 청소하기 때문이었다.(그동안 경험한 인도에서는 심히 놀라운 일이다) ‘Gleen Sanchi Clean Sanchi’라는 슬로건이 어색하지 않다. 숙소에서 이따금씩 들리는 기차소리도 참 좋다.


그 분위기까지 경주와 흡사하던 아름다운 산치는 여독(旅毒)에 지친 마음까지 달래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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