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조한 수익률 vs 정부 입김 ‘우려’

▲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김상범 기자]최근 정부는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공단에서 분리시켜 공사화하고 기금운용위원회를 별도의 상설기구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국민연금기금이 500조원을 돌파, 세계 3대 연기금 자리에 올랐지만 투자 전문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이 지속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거둔 5%대 수익률 역시 글로벌 연기금에 비해 크게 미치지 못하는 성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기금운용본부 독립을 두고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돼 공사화 추진의 명분이 된 ‘수익률’이 오히려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기금운용본부 독립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을 짚어봤다.


지난해 5.25%…일본공적연금 등 두 자릿수 실적 절반 수준
“‘비전문가 배제’ 가입자 대표성 훼손”…추진 여부 ‘안갯속’


국민연금기금이 지난 16일 기준 마침내 500조원을 돌파했다. 일본 공적연금(GPIF)과 노르웨이 국부펀드(GPF)에 뒤를 잇는 세계 3대 연기금으로 단숨에 올라선 것이다.


지난 1988년 최초 도입 당시 5300억원에 불과했던 운용자산규모는 2000년대 들어 50조원을 넘어섰다.


이후 2003년 100조원, 2010년 300조원, 2013년 400조원을 넘어서는 등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처럼 거대해진 몸집을 바탕으로 국민연금은 주식시장 ‘큰 손’으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매년 주식투자 비중을 늘리면서 지난 2013년 말 기준 전체 시장의 6.4%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규모에 비해 기금의 관리·운용을 두고 국민들의 이익 증대에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됐다. 또 기금운용본부 내 전문 인력이 글로벌 연기금에 비해 초라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3대 연기금’ 등극


국민연금이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금 운용의 중요성은 실로 중대하다. 지금까지 국민연금기금은 총 607조원이 모아졌는데, 이 가운데 380조원은 국민들이 납부한 보험료이고, 나머지 227억원은 운용 수익금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기금운용 수익률을 계획보다 1%p만 지속적으로 높이더라도 오는 2040년까지 누적되는 초과 수익은 700조원에 달한다. 기금 고갈 시점이 8년 늦춰지고 보험료를 2% 올리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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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p 높일 수 있다면 1600조원을 추가할 수 있다. 2060년으로 예정된 기금 고갈을 11년 연장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글로벌 연기금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운용 자산의 대부분을 채권과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해외 연기금과의 격차가 오히려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5.2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이 2~3%대의 수익률을 기록한 것에 비해서는 양호한 성적표다.


그러나 해외연기금과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같은 기간 일본공적연금(GPIF)과 캐나다연금(CPP),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은 각각 12.3%, 16.5%, 18.4%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일부 연기금의 경우 국민연금과 최대 3배 이상의 격차를 만들어 낸 것.


‘전문성 결여’ 논란


정부는 운용수익률 제고를 통해 기금 안정화를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기금운용본부를 공단 내에서 분리시켜 ‘전문 투자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금운용의 최고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기구로 만든다는 계획을 밝힌 것 역시 비상설기구로는 현실적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쉽지 않다는 지적 때문이다.


현재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하면서도 기금운용에 대한 실질적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비상설기구란 한계에 막혀 연간 4~6회 개최되는 회의에서 불과 두 세시간만에 대부분의 안건을 심의하고 의결한다. 심층적 논의가 이뤄질 시간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또 위원회 구성원들의 전문성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기금운용위는 위원장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각계의 추천 인사 등 총 20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대부분 자산 운용과 전혀 관계가 없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기금운용본부가 공단 산하에 있어 인사·예산 등에 대한 권한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받는다. 우수 인력 영입이나 소신 투자에 나서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운용본부 독립에 찬성하는 한 업계관계자는 “해외 연기금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규모에 맞는 최고의 자산운용 전문가들이 필요하고, 이들이 소신껏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결국 독립된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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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화 논의 ‘난항’


하지만 기금운용본부 독립안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수차례 운용 조직 독립이 시도됐지만 반대 목소리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된 바 있다.


이는 자산 운용 전문성만을 중시해 전문가들로만 기금위를 운영할 경우 가입자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대표자들이 배제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고수익 위주로만 운영하다 자칫 큰 손실을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조선일보’ 등은 한국투자공사의 예를 들어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으로 지난 2007~2013년 누적 수익률(4.02%)이 국민연금(6.33%)보다 낮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국투자공사 역시 정부 개입 등으로 무리한 해외 투자에 참여해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이에 공사화 반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키기 보다는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되 일부 제도를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운용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된 공사화 작업이 오히려 정부 영향력만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논리다.


이들은 국민연금을 특정 사업에 투자하거나 주식 부양의 용도로 사용한 전례가 있었다는 점을 들어 공사화 문제는 섣불리 추진할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가입자 대표가 배제되는 일이 벌어질 경우 국민들의 권익이 심각하게 침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감을 내비치고 있다.


한편 기금운용본부 독립 문제는 각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관련 부처마다 의견이 제각각이고 여야의 입장도 엇갈린다. 기획재정부는 공사화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복지부는 어쩔 수 없이 논의에 참여하는 분위기다. 또 최광 국민연금 이사장은 “기금 누적수익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간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하기도 했다.


한 업계관계자는 “각 부처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 논의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심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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