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권도윤 기자]여행(旅行)의 사전적 정의는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실제 여행이란 ‘언어’라는 수단으로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행동에 옮기기에 앞서 계획하고 준비하는 단계에서의 막연한 설레임, 그리고 매 순간마다 찾아오는 선택의 고통, 그럼에도 ‘항해’를 지속하게 하는 알 수 없는 힘.


그리고 모든 여정을 마친 후 원래 있던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게 만든다. 아련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는 기분. 이 모든 과정이 여행이고, 이를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시 여행을 결심한다. <편집자주>



가네샤 게스트하우스. 인도는 여인숙 수준의 숙박업소도 호텔이고 분식집도 레스토랑이라고 표현하는데 왜 굳이 게스트하우스라는 명칭을 사용했을까?


금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방의 빗장을 제끼니 침대, 선풍기, 문 고정시키는 벽돌 하나가 전부다 ‘편의시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 화장실과 샤워장에는 전구 대신 양초 하나가 놓여 있었다. 물론 공동 사용이다. 온수샤워를 하려면 아궁이에서 끓여낸 물을 양동이에 덜어가야 한다. 여기에 하루에도 수차례 단수·정전이 이어진다.


그래도 100루피(약 2,000원)의 저렴한 가격은 최고의 매력이었고 어쩐지 ‘진짜 인도’같은 느낌이라 마음에 든다. 게다가 영어가 잘 통하는 친절한 주인이 있고 훌륭한 경관에 반해 이 작은 도시에 열흘가량 머물렀다.


물론 급선무는 자전거 정비였다. 이래저래 알아보니 뒷바퀴의 바퀴살 전체를 갈아야 할 듯 하다. 뒷바퀴만 떼 들고 버스에 올랐다.


옴카레슈와르-인도르 구간 버스운임은 70루피(약 1,400원)고 거리는 약 80km다. 그런데 소요시간이 무려 3시간이란다.


출발 전 버스안은 아수라장이었다. 창문틈 사이로 원숭이가 들어와 승객의 포도를 훔쳐가고 한 아저씨는 버스에서 태연히 담배를 피운다.


이동시간 3시간의 의문은 금세 풀렸다. 승객이 보이면 아무데서나 서고 아무데서나 내려준다. 버스는 문을 열고 주행하는데 그대로 올라타는 사람과 뛰어내리는 사람들로 소란하기 그지없다. 차장은 계속 왔다갔다하며 중간에 탄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다. 기차도 그렇지만 인도의 대중교통은 언제나 충격의 연속이다.


버스에서 잠을 청해보지만 도무지 잘 수가 없다. 이유는 경적소리 때문이다. 쉬지 않고 울리는 경적은 차 밖에서 들을때도 고역이었지만 시끄럽기는 차 안에서 더했다.


엄청난 소음공해 속에 도착한 인도르는 신흥 상업도시였다. 전자제품 대신 각종 기계장비, 모터, 철물 등을 취급하는 딱 15년 전의 용산전자상가 느낌의 인도르역 뒤편으로 향했다.


이잡듯이 가게를 뒤져 맞는 바퀴살로 교체하고 근처 상가에서 공구와 예비 부속까지 구입하서야 옴카레슈와르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혹시 문제가 생길까봐 자전거와 씨름했다. 잘 살펴보니 원리는 간단하다. 역시 기계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면 된다’ 그러나 이론은 이론일 뿐 많이 조이면 안굴러가고, 다시 풀어버리니 체인이 빠진다. 괜히 기술자가 아니다.


짐 무게를 줄이고자 안쓰는 물건은 버리고 텐트는 핸들바에 묶어 뒷바퀴에 쏠리는 하중을 분산시켰다.


알 수 없는 인도의 문화


물론 자전거 정비만으로 시간을 보낸것은 아니다. 장기 투숙하던 다른 여행자들과도 친해졌고 4일간 밤낮으로 계속된 결혼식에도 참가했다. 어느날 갑자기 꼬마들이 많아져서 의아했는데 결혼식 때문이다. 일가 친척이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누고 춤을 추고 각종 행사가 이어진다.


옴카레슈와르는 나르마다(Narmada) 강을 끼고 있는 도시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단점은 모기가 많고 제법 쌀쌀하다. 강 사이에는 조그만 섬이 자리잡고 있었다.


힌두교도들은 일년에 한번씩 성지순례를 한다는데 이곳이 바로 그 성지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성지를 안가볼 수 있나? 강 건너편 힌두 사원 시리 옴까르 만다따(Shri Omkar Mandhata)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을 건너는 뱃삯은 10루피(약 200원). 강 폭은 헤엄쳐서도 건널 수 있었지만 도무지 입수하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인도는 어디나 조금 떨어져서 보면 참 괜찮은데 가까이서 보면 쓰레기통이다.


배는 길쭉한 목선으로 모터가 달려 있었다. 특이한건 모터에 축을 길게 내려 프로펠러를 달았다. 멀리서 보면 뱃사공이 삿대를 젓는 것으로 보이지만 비스듬히 설치된 프로펠러는 비효율적이다. 이상한 구조를 한참 생각하고 내린 결론은 기어를 하나 줄이기 위한 듯하다.


섬에 상륙하자 계단을 따라 꽃 파는 사람들이 늘어서있다. 시바 신에게 공양하는 꽃이다. 섬 가운데의 힌두 사원은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아, 기차와 똑같다.


대체 인도는 어떤 나라인가?


처음에 호기심이 많은 인도인들은 삶에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나는 주위 풍경 한 번 여유있게 살펴본 적이 없었다. 길에 낯선 광경이 보여도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히 지나쳤을 것이다.


반면 인도인의 끊임없는 호기심은 여유의 증거가 아닐까? 이 사람들은 정신없이 사는게 아니라 여유를 갖고 주위를 둘러보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삶의 여유? 길을 나서면 달라진다. 도무지 질서를 지킬 줄 모르는 사람들. 뭐가 그리 급한지 쉴새없이 경적을 울리고 밀쳐댄다. 오죽하면 사람이 기차에 매달려 다닐까?


또, 전반적으로 매우 시끄럽다. 고요한 명상같은건 찾아볼 수 없었다. 도로가 시끄러우니 목소리도 크고 모든게 시끄럽다. 심지어 TV광고도 시끄럽다. 광고 방송 소리는 정규 방송보다 1.5배가량 크다. 마치 소리가 크면 매출도 오른다고 생각하나보다.


하지만 그렇게 급하던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은 ‘꾸물꾸물’ 끝도 없다. 대체 뭐가 뭔지 알수없다. 단순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삶의 여유인지, 시끄럽고 급한건지 게으른건지…….


힌두 사원도 역시 시끄럽다. 내가 본 힌두교는 엄숙한 종교가 아니다. 삶으로 즐기는 종교랄까? 신자들은 정성껏 뿌자(예배)를 드리지만 종교시설의 엄숙함과 경건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옴카레슈와르에서의 부끄러움


터널 구조의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섰는데 뒤에서 계속 민다. 뒷사람의 배가 내 등에 붙어있다. 체온때문에 덥고 슬슬 짜증이 난다. 뒤로 나갈수도 없는 상황이다. 터널을 지나는 사람들은 제단마다 종을 울리고 꽃을 바친다. 종소리도 깡통마냥 시끄럽다. 뒤에서는 계속 밀고 한 아이는 울어댄다. 뒷사람과 실갱이를 하면 옆에서 누군가가 끼어든다.


게다가 출구에서 거꾸로 들어오는 놈은 뭐야! 결국 화가나서 럭비하듯 어깨로 밀어부쳤다. 마침내 지겨웠던 사원을 빠져나왔다. 시원한 바람이 좋다. 힌두 사원에서는 짜증만 남았다.


그런데 내 옆사람의 얼굴은 참 온화하다. 그 와중에 시끄럽게 종도 치고 정성껏 꽃도 바치고 성수도 끼얹었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같은 곳에서 기쁨을 얻은 사람과 조금 밀리지 않겠다고 몸싸움만 하고서 더 큰 스트레스만 받고 온 사람의 차이. 난 이렇게 속좁고 옹졸한 녀석이구나 싶어 스스로가 무척 안타깝고 측은했다.


정신없는 힌두사원을 뒤로한채 도망치듯 다리를 건넜다. 강 건너편에서 보는 섬은,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나 고요했다.


그래, 역시 인도는 조금 떨어져서 보는게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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