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경제사]⑦기업들, 정치자금이 가장 확실한 투자?

조경희 / 기사승인 : 2015-06-02 10: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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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성완종 리스트 파문‥대한민국 정경유착의 씁쓸한 ‘단면’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정치권이 혼돈을 겪고 있다. 이완구 전 총리, 홍준표 경남지사 등이 불구속 수사를 받기로 결정된 가운데 나머지 6인에 대해 서면조사 또한 이뤄지고 있다. 다만 나머지 6인에 대한 수사가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수사가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사실상 수사가 종결됐다고 보는 시각도 크다.

대선 당시 돈을 건넸기 때문에 사실상 대선자금 수사로 이어질 수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한다고 해도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수사가 얼마나 깊이 있게 이뤄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성완종 전 회장의 이번 파문은 정치권이 어떻게 정치헌금을 받으면서 성장해 왔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기업인들이 ‘보험’이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동원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예로부터 ‘정치자금은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경 유착이 지속돼 왔다. 정치인들이 필요로 하는 돈, 이른바 정치자금의 대부분은 기업으로부터 조달돼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개발독재를 통해 국가를 통치해온 어느 나라에서나 적용되는 공통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정치자금을 둘러싼 정경유착 관계를 부패의 척도만으로 가늠하기에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설사 더 부패더라도 집권세력들이 얼마나 세련되게 정치자금 문제를 해결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 이후 들어선 제5공화국은 장영자 사건 등 역대급 비리 스캔들이 연이어 터져 나온 것을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집권은 했는데


5공화국 집권 초기 전두환 정권은 청렴정치를 시도했다. 박정희 정부와는 다르다는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정경유착을 모두 걷어내고 과거 정부의 부정부패나 정치적 비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됐든 총리실이 됐든 정상적인 경비만으로 그 많은 씀씀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치자금이든 뇌물이든 또는 외상술값이 영수증 처리를 해주는 방식이든 근본적인 경비조달방식은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

개혁 작업의 감시 역할을 맡은 정보기관 자신부터가 부정부패의 한복판에 서있었는데, 근본적인 변화가 사실상 어려웠던 것이다.

전두환 국보위원장이 중앙정보부장과 보안사령관을 겸하고 있을 때 금일봉을 주었던 A기업인은 5000만원을 당시 제공했는데, 당시 전 국보위원장은 “사실 여기저기 돈 들어가는 일이 너무 많아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모두가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오히려 재벌들은 아주 짭니다. 우리나라 재벌들 아주 문제가 많습니다”라고.


굴지의 H 기업, 30억 들고 청와대 내왕

전두환 시대 경제비사를 다룬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저서에는 당시 굴지의 H기업과 D기업이 초대형 로비를 했다고 기록돼 있다.

그리고 당시 기업들의 로비 유형은 H기업과 D기업처럼 단번에 청와대를 구워삶아서 위에서부터 찍어 누르는 스타일이 있다면 지금은 사라진 C기업처럼 실무자급에서부터 시작해 올라가는 두 가지의 유형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D기업은 평상시 씀씀이가 짜기로 소문이 나 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돈을 쓰는 과감한 승부수를 보였다고.

아울러 이 당시 정치자금 채널은 전 대통령이 재벌 오너들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가장 많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보안도 잘 유지될 뿐만 아니라 최고 통치자와 재벌 총수가 만나 경제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모양새가 좋았다는 것이다.


“당신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느냐”


5공화국에서는 철저히 재벌들에 대해 ‘원죄설’을 언급했다. 즉, 일종의 굴레를 쒸어놓고 자금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은 “당신들이 그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 더구나 앞으로도 우리의 도움 없이 돈벌이를 할 수 없는 것 아니냐. 그러니 필요한 돈, 그것도 사회적으로 명분이 서는 사업에 돈을 좀 내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주장했던 것.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거스르기가 사실상 어려웠다. 지금은 공중분해 된 국제그룹 등 정치헌금과 관련 기업이 망하는 것을 모두 지켜본 상황에서 이를 거역할 수 없었던 것. 대신 그에 대한 반대급부만큼은 확실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일종의 ‘보험’을 드는 경우가 많았다.


AS는 철저했던 정부


일단 정치자금을 받기만 하면 전 정권에서는 끝까지 약속을 지켰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부실기업 정리 과정에서 주요 기업을 거의 인수할 뻔했다가 실패한 A모 기업인의 경우 청와대 핫라인에서 연락이 왔으며 정치자금 만큼은 섭섭하지 않게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 기업인은 “실의에 빠져있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이규동씨에게 연락이 왔다. 억울한 사정을 들어서 잘 알고 있다며, 정치헌금 만큼은 섭섭하지 않게 준비하라”라고 했다는 것.

이 기업인의 경우 끝내 일이 제대로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자금 수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같은 식의 거래가 얼마든지 존재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반대급부’가 가장 확실한 투자


이후 6공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면서 5공화국 비리에 관한 청문회가 열리면 증인으로 불려나온 기업인들이 하나같이 정치헌금을 억울하게 빼앗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실 정치헌금은 정치인들에게만 좋은 것이 아닌 사실 기업인들에게도 가장 반대급부가 확실한 투자였다.

특히 정치적으로 불안할수록 정치자금은 가장 믿을 수 있는 보험이었다. 정치자금을 내서 정권에 도움을 준 회사의 경우 꼭 응분의 보상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기업은 돈이 들어서 그렇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치자금만큼 든든한 보험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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