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뜻 거스르자’ 격노…“스스로 거뒀다”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롯데그룹이 ‘후계 논란’에 휩싸이는 분위기다. 이미 롯데그룹은 재계 내에서도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분 승계율이 90%에 달할 정도로 탄탄한 후계구도를 보여 왔다.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롯데를,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한국롯데를 각각 경영해왔던 것.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 같은 후계 구도에 ‘균열’이 일었고 재계에서는 롯데그룹 장차남 간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롯데그룹은 당시에도 ‘경영권 분쟁’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신년부터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롯데그룹의 등기이사직에서 모두 해임되면서 후계구도에 균열이 생기게 됐다.

일각에서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이 정리해놓은 그룹 후계구도를 ‘와병’을 틈타 흐트러트린 것에 대해 격노해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평가다. <스페셜경제>에서 롯데그룹 간 후계구도에 대해 살펴봤다.


와병 틈타 롯데 핵심계열사 장악 시도 정황 ‘포착’
전문경영인 손 들어준 명예회장, ‘괘씸죄’ 지적도

지난 1월 8일 일본 롯데홀딩스는 임시주주총회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을 이사직에서 해임하는 내용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롯데그룹에서 후계구도를 둘러싼 급박한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앞서 신 전 부회장은 지난 12월 26일 린 임시 이사회에서 일본 롯데그룹의 주력 자회사인 롯데상사의 대표이사, 제과회사인 롯데의 이사, 아이스크림 회사인 롯데아이스의 이사에서 해임됐다.

롯데홀딩스 부회장직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은 사실상 신격호 총괄회장 뿐이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28%, 포장자재 판매업체인 광윤사가 22%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신 회장은 또 광윤사의 지분 50%를 갖고 있다.

신격호 회장이 광윤사를 통해 롯데그룹 전체를 거느리고 있는 핵심사이기 때문에 신 총괄회장의 승인 없이 신 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해임’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경영권 분쟁 조짐 보이자 ‘격노’

신 전 부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해임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단순히 일본에 37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지주회사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 양쪽을 다 지배하는 롯데 그룹의 핵심이다.

롯데홀딩스는 한국 호텔롯데의 지분 19%을 가지고 있으며 이 호텔롯데는 한국 롯데그룹의 주력 회사인 롯데쇼핑의 주식을 8.8% 보유한 롯데그룹 순환출자구조의 중심이다.

그런 상황에서 신동주 전 회장을 사임이 아닌 임시이사회를 통한 ‘해임’을 한 것은 아버지 신격호 회장의 심기를 거슬리는 행동을 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일본롯데그룹의 실적이 한국롯데와 비교했을 때 83조와 5조로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 때문에 아니냐는 설이 제기됐으나,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3년 회계연도(3월 결산) 일본 롯데홀딩스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5조7572억 엔으로 전년보다 34.3%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 롯데그룹의 성장률(11%)의 3배에 달한다.

단순히 실적 때문에 해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을 급히 방문하고 돌아온 신동빈 회장이 “형의 해임은 아버지가 하신일이라 잘 모른다”고 짤막하게 언급해 신격호 회장이 모든 일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매출 부진 탓 아냐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는 모두 비상장 법인이다. 한국롯데처럼 계열사 간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비상장법인이기 때문에 정확한 확인이 어려웠다.

하지만 형제 간 후계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일본 롯데홀딩스에 대한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8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작년 3월 말 기준 롯데의 일본 소재 계열사 36개 중에서 주식시장에 상장된 법인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개별 기준 자산과 매출은 원화로 각각 3조2천385억원과 350억원으로 집계됐다. 연결 기준으로 보면 일본 롯데홀딩스는 자산 79조1천995억원, 매출 59조3천20억원 수준으로 국내 재벌그룹 순위로 5위권에 맞먹는 규모라는 평가다.


장남-차남 간 지분경쟁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롯데그룹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장남과 차남 간 미묘한 지분경쟁에 주목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2013년 8월부터 최근까지 롯데제과 지분을 꾸준히 사들여왔다. 현재 신 전 부회장의 롯데제과 지분은 3.96%로 신동빈 회장이 가진 5.34%에 불과 1.38%포인트 모자란다.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은 롯데푸드 1.96%로 같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롯데쇼핑은 각각 13.46%, 13.45%로 거의 차이가 없는 지분을 가지고 있다.

다만 롯데제과는 지분율의 격차는 2013년 6월 1.86%로 가장 큰 격차를 내다가 신 전 부회장이 같은 해 8월부터 1년간 매달 10억원씩 꾸준히 롯데제과 지분을 사들이면서 1.38%로 격차를 줄였다.

신 부회장은 1년간 총 6787주(0.48%)를 매입했고 이는 신동빈 회장이 2013년 6월 매입한 주식보다 고작 0.02% 많은 수준이다.

롯데제과는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알미늄→롯데제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의 핵심 부문이자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롯데쇼핑의 지분 7.9%를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 승계 과정 의미가 큰 계열사다. 특히 롯데그룹의 모기업 이자,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황태자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신격호 회장이 미리 ‘정리’를 해준 한국롯데와 일본롯데 간 지분경쟁 등이 신 총괄회장에게 ‘선을 넘었다’는 평가를 내리게 했다는 것.

일각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도전’ 내지는 ‘반기’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韓-日 사업 ‘침범’


롯데그룹은 한국롯데와 일본롯데로 분리돼 있는 만큼 서로간의 사업영역을 지켜왔다. 특히 해외시장도 지역을 나눠 공략하는 등 서로 간의 영역을 지켜왔지만 신 전 부회장이 한국 롯데제과가 이미 진출해 있는 동남아시아시장 공략에 나서며 해외에서 경쟁 구도를 만든 것에 대해서도 신 총괄회장이 못마땅해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3년 9월 일본 니혼게이자신문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롯데가 6억명의 거대 시장인 동남아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일본 롯데가 2013년 7월부터 태국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11월 인도네시아 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다”며 신 전 부회장의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특히 신 전 부회장은 “일본에서 태어난 과자를 해외로 넓히는 것은 일본 롯데의 역할이다. 과자 브랜드 전략은 일본이 주도한다”고 언급한 것을 인용, 신 전 부회장이 한국에 대한 대항심을 드러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신 전 부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한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는 평가. 신동빈 회장이 지난 2007년 베트남 제과업체 ‘비비카’를 인수하면서 동남아 시장을 공략해온 만큼 신 전 부회장의 ‘일본 주도설’은 형제 간 ‘균열’을 일으킬 정도로 컸다는 것이 한일재계의 공통된 관측이다.


롯데알미늄 ‘회장’ 논란 <왜>


지난 1월 8일 롯데알미늄은 신동주 전 부사장에 대해 기존의 ‘그룹회장’ 직함 대신 ‘자문’으로 변경 공시했다. 지난 2014년 3분기 사업보고서 부분에 대한 정정공시를 낸 것이다. 이어 반기 사업보고서, 1분기 사업보고서 등도 같은 사유로 정정공시를 냈다.

담당업무를 ‘그룹회장’에서 ‘자문’으로 변경 공시한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신동주 전 부사장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3분기에 걸쳐 롯데알미늄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렸다.

롯데알미늄이 한국롯데에서의 역할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미 호텔롯데가 한국롯데 내 사실상 지주사의 성격이 강한데다가 롯데알미늄의 경우 신동빈 회장의 기반이 약하면서 지배구조 상 상위에 있기 때문이다. 롯데알미늄은 ‘호텔롯데→롯데알미늄→롯데제과→롯데쇼핑’으로 이어지는 지분 구조 상단에 위치하고 있어 지배구조 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호텔롯데가 12.99%, 롯데쇼핑이 12.04%, 롯데케미칼이 13.19%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또 사실상 한국-일본롯데 간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광윤사가 22.84%를 가지고 있다.

롯데알미늄은 지난 2012년 처음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통행세’와 관련 과징금 6억4900만원을 부과한 첫 사례로 유명하다. 지난 2008년 당시 신동빈 회장이 “롯데기공(현 롯데알미늄)이 ATM 제작을 맞는 게 어떻겠느냐”는 지시 후 롯데피에스넷이 롯데알루미늄을 끼워 넣는 통행세 사례로 알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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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 사들이고, 서로 영역침범‥‘가이드라인’ 넘어


지분은 여전히 보유


다만 신 전 부회장의 지분 구조는 여전하기 때문에 경영업무에서만 물러나고 지분은 유지할 가능성은 높다.

신동주 부회장이 해임됨에 따라 신동빈 회장이 한국과 롯데를 오가며 신격호 회장처럼 두 그룹을 경영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으나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은 일본롯데홀딩스 경영을 맡지 않는다”고 밝힌 상태다. 당장 일본롯데의 경영을 담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신격호 총괄회장의 경영 판단과 지시가 절대적인 만큼 당분간 일본은 쓰쿠다 사장을 중심으로 한 전문경영인 체제로, 한국은 신동빈 회장 중심의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신 전 부회장의 지분 구조는 여전하기 때문에 경영업무에서만 물러나고 지분은 유지할 가능성은 높다.

재계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이 해임됐지만 아들의 지분을 강제로 팔게 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롯데 그룹의 경영은 자연스레 신동빈 회장으로 무게추가 기울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격호 회장 영향력 다시 드러나


이번 롯데그룹 장남과 차남 간 후계구도 변화와 관련 업계에서는 올해 93살을 맞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입지가 여전히 크고 높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미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분 승계율이 90%에 달할 정도로 탄탄한 후계구도를 보여 온 상태에서도 신동주 전 부회장을 ‘해임’할 정도라는 것. 그리고 이 같은 해임이 가능했던 것 역시 신 총괄회장이 한국과 일본을 넘나드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광윤사’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07년 4월에 설립된 지주회사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28%, 포장자재 판매업체인 광윤사가 22%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또 광윤사의 지분 50%를 갖고 있어 90% 이상 지분을 승계했다고 해도 막강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신 명예회장이 그간 신 명예회장의 동생들과 소송 등을 벌이는 등 실수가 반복될 경우 용서 대신 ‘엄단’하는 냉철한 성격을 보유한 만큼 이번 사태가 신 명예회장의 뜻대로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한국롯데그룹의 경우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지난 2012년 롯데쇼핑 사장에서 물러나면서 사실상 장남과 차남이 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이 기정사실화 됐었는데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롯데와 일본롯데 간 변화는 분명해 보인다는 평가다.

후계구도 간 경쟁이냐 혹은 기업 지배구조 재편이냐를 놓고 봤을 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러 추측에도 불구하고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 이하 후계구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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