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경제사]②포스코 광양제철소, 호남에 대한 배려(?)

조경희 / 기사승인 : 2014-12-03 11: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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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 후 정국 안정화 기조‥사실상 공무원 단속 차원?
이나야마 신일본제철 회장과 환담중인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스페셜경제=조경희 기자]<스페셜경제> 연간기획으로 기획한 ‘그때 그 시절 경제사’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史(사)를 살펴보면서 어떠한 정권에서 어떠한 산업이 전략적으로 육성됐는지, 또 어떠한 정부 정책으로 인해 기업이 후퇴 일로를 겪었는지 살펴보는 코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공중분해 된 기업부터 얼떨결에 원하지 않는 사업을 떠안은 기업까지. 또 오일쇼크, IMF,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어떠한 기업이 살아남고 스러졌는지 등.


특히 우리나라는 6.25 전쟁 후 대부분의 산업이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시작됐고, 1980년대 이후에는 재계 30위권 순위에서 거의 대부분 변동이 없는 굳건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최근 기업 구조조정이 지속되면서 재계 순위가 바뀌고 있지만 최근의 업황 불황으로 인한 것 일뿐 기업 지배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페셜경제>에서는 각 정권 시절 있었던 ‘비사’들을 통해 국내 기업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뒷이야기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방한한 나카소네 통상상과 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10.26 사태가 터지고 난 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國家保衛非常對策委員會)에 접어들게 된다. 1979년 10·26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1980년 5월 31일 전국비상계엄 하에서 설치됐다.

상임위원장 전두환(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서리)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강경세력으로 구성돼 ‘최고군사회의’의 성격을 띠었다.

이러한 국보위 시대에 접어들면서 제2제철소 입지 선정을 두고 이번에는 건설부와 포항제철 간 싸움으로 번지게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인연’

당시 박태준 사장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사장은 육사 교무처장 시절에 전 위원장은 면접을 치른 생도였고, 연대장 당시에는 소대장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이 모두 육군사관학교 11기 후배로 박태준 사장은 정권 시절 ‘박 선배’ 소리를 들으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1년 12월 14일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연세 장례식장을 찾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고 박 명예회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라며 “그런 분들이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데,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마음이 아프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특히 한때 ‘사돈’ 관계를 유지하면서 끈끈함을 유지하기도 했다. 고 박태준 전 명예회장의 막내딸인 박경아씨는 지난 1987년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와 결혼했으나 지난 1991년 이혼했다.


아산→광양 입지 선정


박 사장은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전 대통령)을 당시 만나 다시 한 번 광양과 아산을 비교해달라고 요청했다.

박 사장은 “제2제철소 입지가 아산으로 결정됐습니다만 포항제철 기술진이 조사해보니 문제가 많았습니다. 광양이 더 나은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아산과 비교해 주십시오”라고 재차 요청했다.

당시 아산은 실제로 땅을 파고 들어가 보면 모래지역일 것으로 예상되던 지역은 뻘이고 바위일 것으로 추정되던 지역은 부스러지기 쉬운 편마암으로 드러난 것이다.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은 “그렇습니까? 철강 분야는 박 선배님이 대가가 아니십니까. 그렇게 지시전달하겠습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건설분과위원회가 발칵 뒤집혔다. 1980년 7월 전 위원장 주재로 열린 건설분과위원회에서 아산이 최적지로 재확인된 것이다.

이에 프랑스 르아브르 항만청에 용역을 줘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르아브르 항만청 역시 아산이 유리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는데 누가 봐도 승부가 결정 난 것과 다름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산 vs 광양 입지선정‥결국 ‘비리’로 얽힐 뻔


누가 봐도 ‘아산’으로 제2제철소 입지가 점쳐진 가운데 마지막 반전은 청와대에서 뒤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이장규 전 중앙일보 경제부장이 지난 2008년 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를 통해 보면 막판 뒤집기는 결국 전두환 전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다. 무려 8년을 끌어온 싸움이 해당지역 토지매매 실태를 조사한 결과 드러난 것이다.

전 대통령은 안기부를 통해 해당지역 토지매매 조사를 벌인 결과 광양에서는 포항제철 직원들이 땅을 사들인 경우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아산 지역의 경우 건설부 소속 직원들이 매입한 땅이 드러난 것.

당시 전 대통령은 “제철소 입지는 실수요자인 포철이 잘 알 테니까 포철의 건의대로 광양으로 결정합시다. 건설부 공무원들 아산에 땅을 많이 사두었더구만. 손해가 많겠소”라고 발언해 사실상 광양으로 결정이 난 셈이다.


광양만의 ‘기적’ 퍼지다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포항제철은 지난 1981년 11월 포항에 이어 광양지역에 제2제철소 부지를 정한데 이어 1983년 10월24일 공장 건설 및 제철소 운영에 필요한 조직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공식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4년 후인 1987년 5월 조강연산 270만t의 1기 설비 준공을 시작으로 1988년 7월 2기, 1990년 12월 3기, 1992년 10월 4기, 1999년 3월 5기 설비 종합준공을 마쳤다.

현재 조강연산 2300만t의 생산체제를 구축해 단일제철소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제철소로 성장하게 됐다.

광양제철소는 지난 한 해 동안 생산한 2023만t의 조강량 중 약 760만t 가량을 자동차강판을 생산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 연간 생산량이 약 8700만대라고 볼 때 세계를 누비는 자동차 11대중 1대는 광양제철소의 철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동차강판 전문제철소’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다.

백승관 광양제철소장은 “광양제철소 개소는 ‘제철보국’의 신념으로 광양만의 기적을 이루기 위한 사업을 시작한 뜻 깊은 날”이라며, “21㎢(약 650만평)의 바다를 메워 제철소 건설을 향한 일념으로 전력질주 하던 의지로 앞으로도 ‘포스코 재창조’를 위해 매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건설부에서도 ‘절대 불가’ 하다고 못박은 광양 부지에 특수공법으로 바다를 메워 제철소를 지어낸 포항제철(현 포스코).

한 때 제2제철소 입지를 광양으로 결정한 것은 5공 정부가 광주사태에 대한 ‘부담’ 때문에 ‘배려’ 차원에서 입지를 선정했다는 말도 나왔으나 물 밑에서는 엄청난 일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정록 전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지리학과 교수는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만든 기업도시 광양’이라는 칼럼에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명분과 광양만이 가진 천혜의 항만조건이 입지선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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