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재도 무력…ARF 다자회의서 설전까지 오간 일본發 무역전쟁

김수영 기자 / 기사승인 : 2019-08-04 10: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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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긴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19.08.02.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지난 2일 오전 일본이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며 양국 무역갈등이 본궤도에 오르자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일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 일본 각의 결정이 있은 후 문 대통령은 임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일본에 대한 경고와 함께 우리 정부의 맞대응 카드를 예고하며 범국민적 단합을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전략물자 수출 우대국 목록에서 한국을 제외한 일본의 부당성을 외교적·국제법적으로 지적했다. 국제 여론을 의식해 정당성이 우리 측에 있음을 알려 향후 협상에서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일본이 우리 정부의 제안 뿐 아니라 미국의 중재안마저 거부한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문제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자는 우리 제안을 일본 정부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시한을 정해 현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협상할 시간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미국의 제안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이번 조치가 양국 관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을 무너뜨려 세계경제에 큰 피해를 끼치는 이기적 민폐 행위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경고했다.

또 문 대통령은 이번 일본의 조처를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명백한 무역 보복’, ‘우리 경제의 미래성장 방해 의도’라 규정하며 국민적 단합을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떤 어려움도 충분히 극복할 저력을 가지고 있다”며 “당장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도전에 굴복하면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된다. 지금의 도전을 기회로 여기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으면 일본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역사에 지름길은 있어도 생략은 없다는 말이 있다.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라며 “국민의 위대한 힘을 믿고 정부가 앞장서겠다. 정부 각 부처도 기업의 어려움과 함께 한다는 비상한 각오로 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 정부의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간소화 우대국 명단) 한국 배제 조치에 따른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브리핑에는 노영욱 국무조정실장


한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연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일본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한 정부 관계부처의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홍 부총리가 발표한 정부대책에는 단기적·중장기적 대책들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정부는 먼저 지난 2일 100일 만에 국회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포함된 대일 경제보복 대응 예산을 즉각 현장에 투입하는 한편, 세제 및 금융지원책 등을 적극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추경에 경제보복 대응으로 편성된 예산은 2,732억 원으로 정부는 이 예산을 소재·부품·장비분야 기술개발, 설비투자, 실증 및 테스트 장비 구축 등에 사용한다.

내년도 예산안부터는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소요예산을 적극 반영하고, 연구개발(R&D) 및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적용 대상을 확대한다. 신성장동력과 원천기술 R&D 세액공제 대상에 고순도 불화수소를 비롯해 일본 수출 규제에 타격을 받는 품목들을 추가할 방침이다.

대체국에서 물품이나 원자재를 수입하면 기존 관세를 40%p까지 경감해주는 할당관세도 적용해 부담을 던다.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의 자금애로 해소를 목적으로 대출·보증 만기 연장을 추진하고 최대 6조 원 규모의 추가 공급 여력도 확보할 예정이다.

일본 수출규제 영향을 받는 159개 관리품목의 경우 보세구역 내 저장기간을 연장하는 동시에 수입 신고지연에 따른 가산세도 면제된다. 새로운 해외 대체 공급처 발굴을 위해 조사 비용 중 자부담을 50%이상 경감하고 대체수입처 확보를 도와줄 거점 무역관도 지역별로 배정된다.

주력산업 공급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100여 개의 전략 핵심 품목을 중심으로 R&D 등에 매년 1조 원 이상의 대규모 지원이 이뤄지고, 자립화가 시급한 핵심 R&D는 예타 면제 및 세액공제 추진 방안 등이 담길 방침이다.

홍 부총리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브리핑을 발표하며 “이번 기회에 우리 산업의 대일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항구적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일 오후(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회담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기념촬영 후 강경화 장관과 고노 다로 외무상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다. 2019.08.02.

한편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양자회담(1일)에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까지 참여한 한미일 3자회담(2일)은 모두 성과 없이 끝났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후 자신의 SNS에 “미국·한국·일본의 관계는 강하고 북한의 비핵화와 아세안의 중요성,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에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일본 각의 결정을 앞두고 ARF기간 내내 여러 중재를 시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2일 오후 다자회의 일정이 예정보다 길어지며 폼페이오 장관은 당초 계획했던 미일, 한미 회담을 취소하고 한미일 회담만 진행했다.

분쟁중지 합의가 2일 일본의 결정으로 물 건너간 만큼, 미국은 차후 수습 과정에서 한미일 공조를 촉구하며 다른 방안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미국은 한국 정부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유지를 촉구하며 맞대응 자제를 요청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이미 일본의 각의 결정이 내려진 만큼, 미국이 일본에 새로운 중재안으로 어떤 제안을 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한편 ARF 다자회의가 집중됐던 2일 회의장에서의 주된 이슈는 단연 ‘한일 무역전쟁’이었다.

이날 오전에 열린 한중일 회의 모두발언에서 강 장관은 일본의 조치에 대해 “엄중히 우려한다”고 전했다. 외교 관례상 특정 국가를 겨냥한 표현으로는 수위가 높다는 평가다.

비공개 회의에서는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비언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 장관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 아세안 지역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며 한국을 뺄 게 아니라 아세안을 추가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발단이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발라크리슈난 장관의 발언을 두둔하며 일본 비판대열에 합류했고,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은 서너 차례 말을 주고받으며 강제동원 배상판결,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문제 등을 거론했지만 통상 한 번씩 돌아가며 발언하는 ARF다자회의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사진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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