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김은배 기자] 지난 8월 사상 처음으로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만에 0%대로 올라섰다. 일부 채소류 가격이 급등하면서 물가 하락의 주된 요인으로 꼽혔던 농산물의 가격 하락세가 둔화한 덕분이다.

다만 경기가 위축되면서 소비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유가 하락, 복지 정책 등 요인까지 겹치며 1%를 밑도는 저물가 현상은 역대 최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올해 상승률을 누계치로 보면 0.4%에 불과해 연간으로 역대 최저 물가를 기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1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5.46(2015년=100)으로 1년 전(105.46)과 동일하다.

지난 7월까지 0%대 상승률을 유지하던 지수는 8월 -0.038%를 기록하며 1965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0%를 밑돌았다. 국제 비교를 위한 통계는 공식적으로 소수점 한자리까지를 본다. ‘공식적으로’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지난 9월(-0.4%)이 처음이다.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늘려봐도 10월에는 플러스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다만 세부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로써 소비자물가는 지난 8월 이후 두 달 만에 사실상 0%대를 회복하게 됐다. 다만 1%를 밑도는 저물가 현상은 올해 1월부터 10개월째 계속 중이다. 이는 2015년 2~11월(10개월)과 함께 가장 긴 기간으로, 다음달까지 0%대에 머물면 최장기간마저도 넘어서게 된다.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물가 상승률까지 낮아지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사실상 석 달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되는 상황이었다.

그간 저물가를 이끌었던 농축수산물이 물가를 끌어내리는 데 기여한 정도는 기존 -0.70%p에서 -0.31%p로 축소됐다. 농산물이 전년 대비 7.5% 내렸고, 채소류는 1.6% 하락했다. 세부적으로 농산물의 기여도는 -0.35%p였고, 채소류는 -0.03%p에 그쳤다.

이는 잦은 태풍과 가을장마에 작황이 악화한 탓으로 보인다. 실제 품목별 동향을 보면 열무(88.6%), 배추(66.0%), 상추(30.9%), 오이(25.3%) 등 채솟값의 상승률이 높았다. 다만 채소류 중에서도 감자(-36.2%), 파(-29.5%), 양배추(-28.6%), 당근(-26.8%), 토마토(-26.5%), 마늘(-22.2%) 등 가격은 하락했다.



반면 축산물 가격은 1.3% 상승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소비가 위축된 탓에 돼지고기 가격이 0.6% 내렸지만, 국산(3.0%)과 수입(3.3%) 쇠고기 값이 모두 올랐고, 달걀 가격도 1.8% 상승했다.

공업제품은 -0.3% 하락했다. 이 중 석유류 가격이 -7.8% 내리면서 -0.37%p 기여했다. 국제유가가 안정된 데다 지난해 10월 중 소비자물가가 가장 높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가 지속됐다. 자동차용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이 -16.0% 크게 떨어지고, 휘발유 가격은 8.0%, 경유 가격 6.1%, 등유 가격도 1.3% 내렸다.

서비스 가격은 0.7% 올랐다. 전세(-0.1%)와 월세(-0.4%)가 모두 하락하면서 집세가 –0.2% 내린 가운데 특히 월세는 2017년 12월부터 2년 가까이 하락세를 지속 중이다. 전셋값 역시 지난해 11월부터 0%대로 내려앉은 뒤 올해 9월부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개인 서비스는 1.7% 올랐는데, 외식 물가 상승률이 1.3%였다. 죽(6.0%), 김밥(4.7%), 치킨(4.7%), 자장면(3.5%), 짬뽕(3.5%), 떡볶이(3.4%), 라면(3.3%), 된장찌개백반(3.0%) 등의 상승 폭이 컸다. 무상 급식 정책의 영향에 학교 급식비(-57.7%)는 크게 내렸다.

이 과장은 “최근 저물가 상황에 기후 여건에 따른 기저효과와 정책 요인으로 인한 공공 서비스 가격 하락 등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은 변함없다”며 “수요 부진을 원인으로 단정 지을 순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141개 품목을 중심으로 체감 물가를 나타내는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0.3% 내렸다. 생선, 해산물, 채소, 과일 등 기상 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50개 품목의 물가를 반영하는 신선식품지수 또한 7.8% 하락했다.

계절적·일시적 요인에 의한 충격을 제거하고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는 농산물 및 석유류제외지수(근원물가)는 0.8% 상승했다. 여기에는 무상 복지, 무상 보육, 건강보험 적용 확대 등 복지 정책이 근원물가를 낮추는 주요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으며, 집세의 하락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물가 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역시 그간 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데 크게 작용했던 농산물 가격 하락세가 완화되면서 다시 보합세를 나타낸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에 반영되는 460개 품목 중 가격하락 품목 비중은 지난 9월 34.3%(158개)에서 10월 31.7%(146개)로 감소했다.

기재부는 개인 서비스 등 기타 품목에선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물가를 0.96%p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이 현상이 공급·정책 요인을 상쇄하면서 0.0%로 수렴됐다는 설명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수요 측 물가 압력이 낮아지는 가운데 공급·정책 요인으로 인해 저물가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기저효과 등 특이 요인이 완화되는 연말에는 0%대 중반으로 회복될 것”이라 전망했다.

<사진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은배 기자 silvership@speconomy.com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