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재보선에서 참패한 바른미래당의 내홍이 심해지는 가운데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에서 손학규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 참석자들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지난달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불거진 사보임 갈등이 일단락 된 후에도 바른미래당 내홍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고 있다.

김관영 전 원내대표가 사보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음에도 그와 함께했던 손학규 대표를 겨냥한 활시위는 여전히 팽팽한 상태다.

오신환 원내대표 등 바른정당계 의원들을 축으로 손 대표를 향한 압박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데는 꽉 막힌 배수구처럼 일정수준에서 오르내릴 뿐인 당 지지도와 1년도 채 남지 않은 총선에 대한 위기감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명분은 ‘4·3보궐선거 참패’다. 지난달 보선에서 민중당(3.79%)에게 마저 뒤지는 지지율(3.57%)을 얻으며 득표율 4위에 그치자 선거를 진두지휘한 손 대표 책임론이 불거져 나온 것이다.

그러나 손 대표는 꿋꿋하게 ‘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런 때일수록 굳건하게 제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

그는 지난달 5일 “당을 흔들려는 일각의 시도에 단호히 대처 하겠다”며 “당의 통합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환부를 도려내 전진해야 할 때”라 강조했다.

그런 그가 ‘본보기’로 도려낸 환부는 이언주 의원(무소속)이었다.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으로 활동하던 이 의원은 창원·성산에 내려가 4·3보선 지원유세를 펼치던 손 대표를 향해 ‘찌질하다’, ‘벽창호’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1년의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4월초부터 지속된 이러한 갈등이 장기화되며 피로감이 누적됨에 따라 손 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장진영 바른미래당 당 대표 비서실장은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손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쪽의 목소리가 명분이 없다. 누가 봐도 잘 공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바른미래당의 한 관계자 또한 기자와의 통화에서 “시간도 오래 흘렀지만 시간보다 명분이 취약하다”며 “손 대표에게 특별한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선거에서 열심히 했는데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그런 말(사퇴)을 하는 건 대다수 국민 내지 당원들이 볼 때 과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참 어린 후배 정치인들에게 면전에서 사퇴요구를 받는 굴욕을 감내해가면서까지 손학규 대표가 당 대표직을 내려놓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4·3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후 첫 주말인 지난 24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시장 인근 사거리에서 바른미래당 이재환 후보가 손학규 대표와 함께 길거리 유세를 펼치고 있다.

 

그는 왜 버티나, 무엇을 위해

 

한국 정치는 일단 형식적으로는 다당제다. 헌법 제8조는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있고, 현 20대 국회만 해도 원내정당이 7개에 달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양당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128석)과 자유한국당(114석) 만으로 전체 의석의 80.7%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실질적 양당체제의 구도 안에 갇히는 경우 다양한 민의를 수용하기 어려운데다 두 거대정당은 ‘안정적인 울타리’ 속에서 차츰 보수화 될 위험성을 떠안고 있는 것이다.

이미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2월 하태경 최고위원을 향해 “그 사람과 자꾸 엮여서 좋지 않은 게 저는 1당의 수석대변인”이라 발언하는가 하면, 바른미래당을 “미니(mini)정당이고 영향력도 없는 정당”이라 폄하하는 등 선민의식까지 여과 없이 드러낸 바 있다.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낙선한 뒤 전남 강진 만덕산에서 칩거에 들어갔던 손 대표가 2016년 하산하며 결심한 정치개혁 방안은 ‘제3의길’이었다. 거대 양당제로 점철된 패권정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손 대표가 계속되는 사퇴요구를 일축하는 데는 이러한 ‘제3의길’, 즉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벌이는 정쟁뿐인 양당제로부터 이반된 민심을 확보해 3정당으로 우뚝 서 다당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장진영 실장은 “지금 사퇴하면 유승민 의원을 중심으로 한 바른정당계가 집권해 당을 잡을 것이 누가 봐도 명확하다”며 “(바른정당계가)개혁보수를 표방하고 있어 중심이 흔들리고 당이 급속도로 보수화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손 대표 또한 이날 임시 최고위원회의에서 “제겐 대통령과 패권세력이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고, 국회와 내각이 정치의 중심이 되도록 만들겠다는 욕심이 있다”며 거대 양당의 극한 대결정치가 아닌 다당제, 합의제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호남과 영남이 화합하고 보수와 진보가 결합한 중도개혁의 통합정당, 낡은 진보가 아닌 미래형 진보, 수구 보수가 아닌 개혁적 보수 모두를 아우르는 정당”

바른미래당이 공식적으로 내세운 기치다. 과거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바른정당계와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온 국민의당계의 합당으로 탄생한 바른미래당은 늘 ‘중도’의 이념을 공식적으로 내세웠다.

 

선결조건은 당내 혼란 수습


이러한 ‘제3의길’ 실현을 위해 손학규 대표가 당장 거쳐야 할 관문은 당내 혼란의 수습, 즉 현재 사퇴를 주장하는 당내세력의 화합조성이라 할 수 있다.

바른정당계 최고위원들은 ‘지명직 최고위원 및 주요 당직자 임명철회’ 등 손 대표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안건을 최고위원회의에 상정할 것을 요구하며 이를 거부하는 손 대표의 운영을 ‘반민주적’이라 규정, 계속해서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들은 24일 임시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의원 정수 확대 금지 △이준석 최고위원 기자회견 방해 당직자 △당헌·당규 유권해석 등에 대한 안건 상정을 요구하기도 했으나 모두 거부됐다.

주승호·문병호 의원 등 손 대표가 임명한 지명직 최고위원에 대해 서울남부지법에 낸 ‘지명직 최고위원 무효확인 소송 효력정지 가처분신청’도 모두 기각됐다.

손 대표는 지난 달 15일 중도개혁세력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추석 전 지지율 10% 미달 시 사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오신환 원내대표가 출마 선언 당시 지도부 쇄신을 내건 바 있어 손 대표의 공언이 계속해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비록 복귀시키긴 했으나 지난 3일 손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13명의 정무직 당직자 해촉까지 강행하며 내부에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었다.


▲ 바른미래당 해촉 대변인단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지도부 총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해촉대변인단은 지도부 총사퇴를 촉구 했다는 이유로 대변인단에서 해촉 되었다.

당내 마찰은 불가피…일각에선 ‘새로운 전략’ 요구


한편 바른정당계 인사들은 사퇴요구를 일축하고 완강히 버티는 손 대표에 다소 절제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신환 원내대표는 24일 회의에서 손 대표의 운영방식을 지적하며 “용퇴를 거부하셨다면 당 운영이라도 민주적으로 해 더 이상 잡음이 나지 않도록 해달라”며 “최고위원들이 제출한 안건들에 대해 더 이상 논의를 거부하지 마시고 합리적 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안건을 상정해줄 것을 당부 드린다”고 말했다.

기존처럼 손 대표의 면전에서 ‘사퇴하라’는 목소리 대신 ‘협치’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하태경 최고위원 또한 이날 회의에서 손 대표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자신의 발언에 대해 거듭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22일 손 대표를 향해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한다”고 발언하며 물의를 빚었다.

회의를 진행하면서도 상대측에 대한 지적과 설전 등은 있었지만 고성이나 막말은 없었다.

다만 이날의 진정된 모습은 하태경 의원의 ‘정신퇴락’ 발언에 대한 파장을 우려해 자중한 모습을 보인 것이란 평가 또한 있다.

바른미래당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하 최고위원의 노인비하 발언으로 큰 파장이 있었는데, 오늘도 나와서 지난번처럼 조롱과 비난을 했다면 더 파급력이 있어 일시적으로 톤 다운(tone down)을 시킨 것 같다”고 전했다.

애초에 성향이 달랐던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합당으로 탄생한 정당이 바른미래당 이었던 만큼, 좁혀지지 않는 계파 간 이견이 남아있어 당내 갈등은 언제든 다시 부상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임시최고위원회의에서 23일 손학규 대표를 향해 퇴진 관련 노인 폄하성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하태경 최고위원이 사과 발언을 한 뒤 손 대표에게 허리숙여 사과하고 있다.

손 대표는 자신의 정치신념인 ‘제3의길’ 수립을 위해 사퇴가 없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당내 혼란수습이 최우선 과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보임 문제로 인해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의원들까지 돌아서며 상대적으로 더욱 위세가 약화됐지만 이들이 손 대표에게 요구하는 것이 마냥 ‘사퇴하라’는 것만은 아니다. 비전과 전략의 제시일 수도 있다.

이미 이준석 최고위원은 지난달 “관리형 지도자가 아닌 이슈 주도형 지도자가 돼야 한다”며 “진지하게 판단했다면 (새로운)비전이 나와야 한다”고 언급했다.

오 원내대표 또한 지난 9일 “손 대표 체제로 계속 지속하더라도 지금상태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며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가져야 하고 그 비전을 당원들과 국민들께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국회 정상화 문제를 두고 여야가 파행을 빚고 있는 가운데 20대 국회에서 늘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던 바른미래당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는 손학규 대표의 미래를 향한 새로운 전략 제시가 급선무일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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