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산, 실익 챙기고 경영 불확실성 털어
금호, 그룹 재건 무위로…자산 매각 불가피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으로 HDC현대산업개발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현산은 체면을 구겼지만 경영 불확실성을 털어내고 실익을 챙겼다. 

 

현산의 아시아나 항공 등판은 의외였다. 전염병이나 전쟁,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추락사고, 유가 변동 등 변수가 많은 항공업은 긴급 자금이 수시로 필요한데, 부동산 정책과 정부 규제, 경기 등에 영향을 받는 건설업은 자금 흐름이 안정적이지 않고 재무구조도 취약하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위한 입찰에서 경쟁사인 애경그룹보다 1조 가량 높은 금액을 과감하게 배팅하고, 대상자로 선정되자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도 자청했을 만큼 강한 의지를 보엿었다. 

 

정 회장은 건설업의 한계를 극복하는 포트폴리오를 짜는데 주력해왔다. 해외 플랜트와 국내 건축·토목사업을 병행하는 여타 건설사와 다르게 국내 주택건설 위주로 꾸려나가는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사업자)를 지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건설업 외부로 영역도 넓혔다. 2015년 신라호텔과 손잡고 면세사업에 뛰어들며 유통분야에 진출했고, 지난해엔 한솔오크밸리 운영사인 한솔개발 경영권을 인수하며 리조트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부동산114를 인수하며 프롭테크와 빅데이터 역량을 강화하기도 했다. 부동산부터 유통·레저까지 아우르는 현산의 포트폴리오에 아시아나항공이 더해지면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는 게 정 회장의 판단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계의 불황은 인수 의지보다 강했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808%에서 올 2분기엔 2291%로 재무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나마도 무려 6280%까지 치솟았던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해 관리비용을 줄이고 채권단으로부터 영구채 인수방식으로 3000억원을 긴급 수혈받은 덕이었다. 자본짐식률도 지난해 말 18.62%에서 49.8%로 급격히 증가했다.

 

현 상태에선 현산이 2조1772억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한다 해도 부채비율이 500%를 넘어간다. 상반기 영업이익(2846억원)의 7배에 달하는 1조7000억원을 더 투입해야 부채비율을 간신히 300%대로 떨어뜨릴 수 있다. 

 

▲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사진=뉴시스)

 

그러나 정몽규 현산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현산을 모빌리티 그룹으로 재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산업이 그룹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부합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인수”라면서 “경제가 좋지 않은데 인수를 추진하는 것을 걱정하지만 오히려 경제가 어려울 때 좋은 기업을 인수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현산의 자금력이 탄탄하다면 긴 불황을 견디고 ‘좋은 물건’을 선점할 수도 있다. 항공업계는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여객 수요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3~4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산의 자금 사정은 좋은 편이 아니다. 상반기 매출액 1조9635억원, 영업이익 2846억원, 당기순이익 2060억원을 기록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 매출은 15.73%, 영업이익은 4.27%, 당기순이익은 12.82% 줄어들었다. 반면 차입금은 지난해 말 586억원에서 상반기 1조5963억원으로 172.27% 급증했다. 부채비율도 112.4%로 뛰었다.

 

이 때문에 현산의 주가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밝힌 이후 하락세였다. 결국 현산은 늘어난 부채와 차입금 등을 들어 12주 재실사를 줄곤 요구해왔다. 그러나 KDB산업은행 등 재권단과 금호산업은 ‘M&A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과도한 요구’라며 재실사를 거부했다. 

 

매각 계약은 어그러졌지만 현산은 ‘실익’을 챙겼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 부담하게 될 막대한 채무를 떠안지 않게 됐다. 동반 부실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털어냈다. 

 

하반기 수주 확대의 가능성 역시 높다. 지난달 기준으로 지난해 주택공급을 이미 초과했으며 연간 목표 달성 가능성이 높아, 향후 2년 이상 주택 매출 증가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현산은 지난 11일 롯데건설과 함께 부산광역시 대연8구역 재개발사업 사업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대연8구역 재개발사업은 부산 남구 대연동 1173번지 일원에 아파트 3516세대를 짓는 대규모 사업으로서 올해 하반기 최대 정비사업 격전지 중 하나로 꼽힌다. 

 

매각 무산 이후 현산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오히려 우호적이다. 14일 오전 주가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실적 변동성 높은 항공 산업 진출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완화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자금 조달 노력에 기반해 지난 1분기 말 기준 현금 보유량은 약 2조2000억원에 이르는데 부동선 디벨로퍼 역량 표출에 필요한 자본력이 어느정도 확보돼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밝혔다.

 

라진성 KTB투자증권 연구원도 “아시아나항공 인수 관련 불확실성 해소를 반영해 기업가치 할인율을 축소한다”며 “보수적으로 계약금 2500억원을 포기한다고 해도 멀티플 개선에 따른 적정가치 상향 요인이 있다. 최근 청약 열기와 목표 달성 시 자체 물량이 전년대비 53.5% 증가하는 점을 감안하면 양호한 수익성도 유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2500억원의 이행보증금 반환은 현산으로서 아쉬운 부분이지만,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업 독점권을 이용해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금호고속에 조직적으로 지원한 혐의로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을 검찰에 고발하고 3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금호산업의 회계상 문제를 거론해 온 현산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는 셈이다. 

▲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표정은 어둡다. 금호산업이 계약 무산 이후 ‘기업의 본질 가치에는 이상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금호고속과 아시아나항공이 채권단 관리 아래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일각에서는 그룹의 해체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 등 무리한 인수합병의 후유증을 겪다가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대한통운과 대우건설을 다시 내놨고, 금호산업 등 계열사들은 워크아웃과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15년 워크아웃에서 졸업하며 재기하는 듯 했지만, 박삼구 회장이 금호고속과 금호산업을 무리하게 인수하며 그룹 재건을 추진하다가 다시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으로 지배구조가 형성돼 있다.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매각해야 금호고속의 숨통도 틔인다. 

 

지주사격인 금호고속의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219억원에 불과한 반면, 부채는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매출은 4330억원, 영업이익은 270억원을 거뒀으나, 부채에 따른 이자비용(280억원)과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위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고려하면 순손실만 792억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금호고속은 지난해엔 금호산업 지분 45%를 모두 담보로 잡혀 산은으로부터 1300억원을 빌렸다. 1300억원의 만기를 내년 1월로 연기할 정도로 상환 능력이 떨어졌다. 더군다나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할 돈만 4000억원이다. 더욱이 광주 유·스퀘어(광주종합터미널)와 목포터미널 등 주요 자산은 이미 담보로 잡혀 있다. 금호고속은 자회사를 매각해 채권단으로부터 빌린 차입금을 갚고 자본을 확충하는 데 사용할 작정이었지만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채권단은 일단 금호고속도 채권단 관리체제 아래에 두고 자금 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최대현 산은 부행장은 “실사를 해보니 9월 말까지 1100억원의 자금이 부족하고 연말까지 4000억원이 모자란다”며 “대주주와 회사 종업원 등 이해 관계자의 공통분담을 전제로 유동성을 지원, 동시에 정상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아시아나항공처럼 특별약정을 통해 사실상 채권단 관리체제로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내부적으로 자구안 마련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금호고속의 고속버스 운영 사업부를 분할해 금호익스프레스를 신설했다. 산은은 이 회사의 주식을 담보로 금호고속에 12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나머지 2800억원은 정밀 실사를 통해 검증한 후에 관리 및 처리방안을 결정키로 했다. 또 박삼구 전 회장이 채권단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 지원을 받기 위해 보유 중이던 금호고속 지분 3만2400주를 담보로 제공했다. 

 

이와 함께 자회사나 자산 매각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 금호고속이 금호리조트, 광주 광천동의 고속버스 터미널을 겸한 복합 쇼핑몰 유스퀘어, 목포·여수·순천·해남 등 터미널 부지와 건물 등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금호리조트가 가장 유력한 매각 대상으로 점쳐진다. 

 

금호리조트는 박 전 회장의 딸 박세진씨가 상무로 재직 중이며, 골프장 아시아나CC 등을 보유하고 있는 알짜 계열사다. 최 부행장이 골프장을 비롯해 리조트 등의 매각은 1순위로 꼽았다. 

 

다만 금호리조의 복잡한 지분 구조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금호리조트는 금호티앤아이,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세이버 등이 지분을 갖고 있다. 금호리조트가 매각을 추진하더라도 금호고속까지 자금이 유입되기는 힘든 것이다. 업계에서는 금호리조트의 지분구조를 정리한 뒤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 유스퀘어를 매각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용도변경이 어려워 매각이나 개발이 쉽지 않아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 전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포기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만큼, 금호고속에 대한 애착이 크다. 이에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되 자회사 매각 등을 통해 지배력을 되찾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금호산업의 감자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통상 채권단의 출자 전환 이후 최대주주의 경영책임에 대한 감자가 이어진다. 더욱이 아시아나항공은 감자를 통해 회계상 누적 적자를 털어내야 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감자를 할 경우 타격은 불가피하다. 이에 금호산업은 반발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위기는 코로나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M&A 무산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경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감자를 행할 경우, 계약 무산의 책임이 아시아나항공에 있다는 현산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격이 된다. 이미 박 전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추진과 동시에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손을 떼기도 했다. 이와 관련, 최 부행장은 “기존 주주 감자는 연말 재무상태, 영구채 전환을 통한 채권단의 경영권 확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현 단계에서는 언급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했다. 

 

한편, 시장의 동요를 우려해 금호산업은 발빠르게 대응했다. 지난 11일 계약 무산 발표가 나자마자 보도자료를 통해 이사아나항공 매각 대금으로 중장기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규 사업 등 투자 계획을 세운 바 있다면서 당장 아시아나항공 딜이 무산되면서 금호산업의 투자 계획은 다소 늦춰질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현금흐름, 영업 상황 등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금호산업은 아파트 분양물량 확대와 공항공사 발주 확대 등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이 예상되며, 금호고속 역시 코로나19로 탑승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운송업 등에 대한 정부 지원으로 상황이 호전될 것이는 설명이다. 

 

금호산업 관계자는 이사아나항공 인수 합병이 무산되면서 금호산업이나 금호고속에 대한 우려가 생겨나고 있는데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엇다면서 금호산업의 분질 가치는 전혀 변한 게 없으며 금호고속 역시 코로나19로 잠시 어렵기는 하지만 곧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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